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2.11 14:42
옛 서울 한강의 포구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지금의 영등포는 '늘 찾아드는 풍년'의 염원이 담긴 포구의 하나였다.

 

서울시가 여의도 권역을 개발하면서 함께 번창의 흐름을 탔던 곳이다. 값싸고 맛있는 음식이 많았고, 이곳을 거쳐 가는 인구가 많아 서울 서남 권역에서 가장 유명해진 지역이다. 한강에 붙어 있어 포구를 의미하는 포(浦)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는 점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앞의 ‘영등(永登)’이 문제다. 지명을 풀어놓은 사전을 들여다봐도 이 글자의 조합을 자신 있게 설명하는 곳은 없다. 그러나 지명만으로 볼 때 이 ‘永登(영등)’이라는 글자의 조합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먼저 경남 거제도에도 있었다. 임진왜란 또는 그 전의 기록 등을 봐도 거제도의 ‘永登浦(영등포)’라는 지명은 자주 등장한다. 중국에도 서북부 간쑤(甘肅)라는 성에는 아예 이 이름을 단 현(縣)이 존재한다. 지명은 현지의 풍물적인 특성이나 많이 자라나는 식생(植生), 또는 그런 지리와 인문적 특성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사람들의 희구(希求)와 원망(願望)을 담아 지어지기도 한다.

지명이자 역명 永登(영등)에서 앞의 글자 永(영)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글자다. 붓글씨를 처음 배울 때 이 ‘길 永(영)’이라는 글자를 골백번 넘게 써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길다’의 의미에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어떤 형태와 모습을 가리키는 한자다. “우리의 우정 영원(永遠)히 변치 않기를…”로 이어지는 친구와의 우정 맹세에 자주 등장하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이라며 시작하는 옛 결혼 서약에도 자주 나온다.

그러니 그 글자를 여기서 자세히 풀어갈 필요는 없겠다. 다음 글자 ‘登(등)’이 문제다. 이 역시 우리에게 낯선 글자는 아니다. 서울 외곽의 북한산과 도봉산 등을 오르는 ‘등산(登山)’을 생각하면 좋다. 어딘가 오른다는 뜻의 ‘오를 登(등)’이라는 글자다. 그러나 그 처음은 그저 오르는 무언가를 말하지는 않았다.

이 登(등)이라는 글자 밑을 받치고 있는 부분에 주목하시라. 豆(두)라는 글자 말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콩 豆(두)’로 알고 있는 글자다. 그러나 원래의 출발점은 ‘콩’에 앞서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일종의 제기(祭器)다. 글자 모양 자체가 위에 무엇을 올리게끔 평평한 상태고, 그 밑은 위에 올린 무언가를 받치는 그릇의 꼴이다.

이 豆(두)라는 제기 위에 여러 가지 물건을 올려놓은 모습이 바로 登(등)이다. 따라서 이 登(등)은 豆(두)와 비슷한 모습의 제기라는 뜻, 나아가 그런 그릇에 무엇인가를 올려 남에게 바친다는 의미를 함께 지닌 글자다. 이로써 ‘올린다’ ‘진상(進上)한다’ ‘진헌(進獻)한다’의 의미를 얻었고, 더 나아가서는 ‘오르다’의 뜻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주목해야 할 의미가 ‘풍년’이다. 豆(두)라는 제기에 많은 물건을 담아 올리는 행위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농작물을 거둔 해 또는 그런 상황을 뜻한다. 그래서 풍년을 뜻하는 豊(豐 풍)이라는 글자와 이 登(등)을 조합한 단어가 풍등(豐登)인데, 이는 곧 ‘오곡(五穀)을 풍성하게 거둠’이라는 뜻이다. 곧 풍년을 가리킨다.

따라서 영등포의 永登(영등)은 ‘영원히 풍성한’ ‘길이길이 번창하는’의 뜻이다. 영등포는 그래서 ‘영원히 번창하는 (한강 유역의) 포구’라는 의미의 글자 조합이다. 그 유래는 자세히 고증할 길이 별로 없는 듯하다. 조선시대 내내 이 지명이 쓰였다가, 구한말 또는 일제강점기 때 행정구역으로 번듯하게 자리를 잡았던 모양이다.

등산하는 사람들이야 이 登(등)이라는 글자의 의미가 아주 친숙할 것이다. 이 글자의 쓰임새는 매우 풍부하다. 학교를 가는 일이 등교(登校)다. 법원 등에 가는 일이 등원(登院)이다. 공무원이 관청에 나가는 일은 등청(登廳)이다. 호적 등 장부에 이름이나 기록을 올리는 일이 등기(登記)다. 제 이름을 명부에 적어 출석 등을 알리면 등록(登錄)이다. 서류 등에 이름이나 내용물을 적는 일이 등재(登載)다.

임금과 군왕(君王) 등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極)에 오르는 일이 등극(登極)인데, 요즘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챔피언 먹는 일’이다. 중국에서는 그런 최고의 경계에 오르는 사람을 ‘登峰造極(등봉조극)’이라고 적는다. ‘가장 높은 봉우리(峯)에 오르고(登), 최고의 자리(極)로 나아갔다(造)’는 식의 조합이다.

과거에 급제하는 일을 등과(登科)라고 적었고, 때로는 등제(登第)라고도 했다. 남의 집을 직접 방문해 찾아가는 일은 등문(登門), 어떤 상황에 모습을 드러내면 등장(登場)이다. 아무리 높이 올라도 하늘까지 오르는 일은 삼가는 게 좋다. 이를 등천(登天)이라고 적는데,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가는 일이다. 등선(登仙)이라고도 하는데, 돌아가시는 분을 ‘신선세계로 가셨다’는 의미로 적은 것이다.

그나저나 인재를 쓰는 일이 등용(登用)이다. 적재적소(適材適所), 좋은 인재를 마땅한 곳에 등용하는 일이 국가와 사회의 운용에는 가장 중요한데, 우리는 그를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영등포를 지날 때면 건너편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늘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 국민들이 인재를 잘 뽑아 그곳 의사당에 제대로 등용을 하고 있는지…. 그런 생각에 늘 우려스러운 감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일은 아니리라.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