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02.26 18:36

"시민들에게 발포 지시한 홍진기를 기리는 것은 헌법정신 부정하는 것"
민복기의 '자랑스런 서울대 법대인 수상 취소'도 요청

서울대민주동문회를 비롯해 '정의연대' 및 '개혁연대민생행동'은 2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3·15부정선거와 4·19 발포 원흉 홍진기를 기념하는 서울대 법대 유민홀을 폐쇄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원성훈 기자)
서울대민주동문회를 비롯해 '정의연대'와 '개혁연대민생행동' 및 '공무원 교육과 공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모임(공공모)'은 2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3·15부정선거와 4·19 발포 원흉 홍진기를 기념하는 서울대 법대 유민홀을 폐쇄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서울대민주동문회를 비롯해 '정의연대' 및 '개혁연대민생행동'은 2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정문 앞에서 "3·15부정선거와 4·19 발포 원흉 홍진기를 기념하는 서울대 법대 유민홀을 폐쇄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또한 "인혁당 사법살인 주범 경성제대 출신 민복기의 '자랑스런 서울대 법대인'도 취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날 "경성제국대학을 나와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경성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면서 숱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데 이어, 3·15부정선거와 4·19 발포명령으로 꽃다운 젊은 학생들을 학살한 홍진기를 기념하는 '유민홀'을 폐쇄하라"며 "대신 서울대 출신 독립운동가와 민주열사들을 기리는 기념관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홍진기는 3.15부정선거를 지휘한 후 이에 저항하는 4.19시위대에 발포하라고 명령해 꽃다운 젊은 학생들을 학살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더해 "지난 2000년도에 '자랑스러운 서울대 법조인'으로 선출된 민복기는 그가 대법원장으로 있던 1975년 4월 8일 죄 없는 사람 여덟 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미처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이 집행돼, 당시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로 하여금 '세계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하게 한 장본인으로서 결코 '자랑스러운 서울대 법조인'이 될 수 없다"고 규탄했다.

이들 단체는 "홍진기와 민복기는 일본제국주의 강점시대 각각 토쿠야마 신이치(德山進一)와  이와모토 후쿠키(岩本復基)로 창씨개명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친일행각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사람은 유별하게 친일파를 선호했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발탁돼 독재에 적극 부역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삼성가'에 대해서도 비난의 날을 세웠다.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은 3대에 걸쳐 중대범죄를 저질렀음에도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며 "통탄할 일이지만 더욱 더 황당한 일도 있다. 이건희의 장인이자 이재용의 외할아버지인 홍진기를 기념하는 '유민홀'이 국립대학교에 버금가는 특수교육법인인 서울대학교 법대 건물 로비에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라고 적시했다. 계속해서 "유민홀은 유민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 한국 법조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2003년 만들어진 법대 건물 출입구인 1층 로비에 붙여진 이름"이라며 "그에게는 서울대 후배들이 또 우리 국민이 배워야만 하는 공로보다는 다음과 같이 경계하고 멀리해야할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즉, 홍진기는 1960년 3월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재직 중 4·19 혁명을 맞았으며, 3·15 부정선거 및 4·19 발포명령의 책임자로 체포됐다"고 지적했다. 연이어 "1961년 12월 혁명재판소 상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63년 8월 석방됐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3·15 부정선거 직후의 홍진기의 행적도 비판했다.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군의 시체가 떠오른 그 다음 날인 4월 12일 국무회의에서 홍진기는 '사건의 배후는 다음과 같이 추측되고 있다. 첫째 민주당이 타 지역의 데모는 선동하고 있으나 이번 마산 사건의 직접 배후라는 확증은 잡지 못하고 있으며, 둘째 6.25 사변 당시 좌익분자가 노출 되지 않은 지역인 만큼 공산계열의 책동가능성이 많다고 보아 군경검의 합동수사반을 파견해두려고 한다'고 말했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이에 대해 이들 단체는 "부정선거를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공산당의 책동에 넘어간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들의 과거사에 대한 회고는 계속 이어졌다. "이후 4·19 혁명이 일어났다. 이승만 정권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 학생들에게 무차별 발포를 명령하여 많은 사상자를 냈다"며 "이러한 살인행위 책임자로 홍진기는 체포되었다. 1961년 9월 30일 홍진기는 사형에 처하는 판결을 선고받았다. 위 판결에서 경무대 앞 발포명령자는 곽영주이고, 서울시내 일원의 발포명령자는 홍진기라고 판시했다"고 꼬집었다.

당시 삼성가 창업주 이병철이 "당신(홍진기)은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 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론 나의 사돈이었다"고 말했듯이 주위의 도움으로 박정희 쿠데타 정권에 의해 1961년 12월 19일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며 다시 1963년 8·15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처럼 홍진기는 3·15 부정선거 당시에는 법무장관이었고 4. 19. 당시에는 내무장관이었다. 단체들은 "홍진기는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의 배후에는 공산세력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헛소리하고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민 학생들에게 발포를 명령한 자"라며 "따라서, 비무장한 맨손의 나이어린 학생들을 무차별 총격으로 살상한 홍진기는 광주학살 원흉이자 수괴인 전두환의 전신이라고 말할 수 있고, 전두환이 광주시민을 학살한 것도 홍진기가 엄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맹공격했다.

이들은 우리 헌법의 정신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부정선거에 항의한 시민들에게 발포를 할 것을 지시한 홍진기는 4·19민주이념을 정면으로 부인한 자인데, 이런 홍진기를 기념하는 것은 헌법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홍진기의 이런 행위를 앞에 두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대학교에서 유민홀이라고 이름붙인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헌정질서를 유린한 중대범죄자를 찬양하여 우리나라 국격만 실추시키는 것"이라며 "무슨 짓을 하더라도 출세만 하면 된다는 출세주의를 유포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은 공부만 잘하고 인성은 형편없는 법조인을 양성하는 곳이라는 오명을 듣게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면 용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홍진기는 과거를 반성하지도 않았고 합당한 죄과를 받지도 않았다"고 방점을 찍었다.

한편, '자랑스러운 서울대 법조인'으로 선정됐던 민복기는 이완용과 처남매부 사이인 골수 친일파 민병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937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해 경성지법에서 검사 판사 노릇을 하면서 독립지사를 기소하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 후 이승만 대통령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검찰총장, 최장수 대법원장을 거쳐 전두환 정권 때 국정 자문 위원까지 되었고 국민훈장 무궁화장까지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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