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2.11 17:40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다. 일반 저자 거리의 주막집 풍경을 그렸다. '심상'이라는 낱말은 원래 길이를 재는 척도의 단위였다. 작고 짧은 단위다. 그로부터 "심상치 않다"는 말이 나왔다.

우선 고전의 명시 한 구절 감상하자.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시다. 제목은 ‘오의항(烏衣巷)’이다. 유비와 관우가 등장하는 삼국시대 때 검은색 옷(烏衣)을 입은 군대가 주둔했던 거리(巷), 나중에는 고관대작들이 살았던 고급 주택가가 시의 배경이다. 이곳에서 시인은 세월이 수 백 년 지난 뒤인 당나라 시절 마치 서울의 ‘강남 청담동’ 같았던 고급 주택가가 평범한 거리로 변한 모습을 읊는다.

“옛적 왕사 대인의 처마에 들던 제비, 이제는 평범한 백성의 집에 날아온다(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시인은 옛날 고관의 멋진 집에 머물던 제비가 이제는 ‘심상’한 백성의 집에 살고 있다는 회고(懷古)의 감회를 시에 담았다. 세월이 덧없이 흘러 무상함을 더한다는 것이 시의 정조다.

심상은 여기서 ‘평범함’이다. 그러나 이 글자 둘, 심(尋)과 상(常)은 원래 길이를 나타내는 척도의 단위였다. 작은 면적, 짧은 거리를 가리키는 글자이기도 했다. 중국 고대의 길이 단위에서 ‘심’은 대략 1.2~1.6m, 상은 2.4~3.2m 정도다. 면적으로 따져도 심상은 약 11~13㎡다.

따라서 두 글자를 합칠 경우의 ‘심상’은 크지 않은 면적, 또는 그리 길지 않은 길이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나중에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그저 그렇고 그런 것’ ‘귀하지 않은 것’ ‘하찮은 것’ 등의 의미를 획득한다.

‘상’은 우리의 용례도 적지 않다. 우선 조선시대다. 문무(文武) 양반(兩班)의 자리에 올라야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았던 시절이 조선 때다. 그런 양반을 뜻하는 ‘반(班)’과 상민, 나아가 상놈의 뜻으로 쓰는 ‘상’이 대립적으로 쓰인 사례가 ‘반상(班常)’이다. TV 사극에서 “네 이놈, 너는 반상도 제대로 구별할 줄 모르느냐”고 호통 치는 조선 양반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이런 심상의 반대어는 ‘수상(殊常)’이다. 정상적인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뜻이다. 사람과 사물 또는 현상이 일반적인 수준을 떠난 상태다. 고국산천과 헤어지는 장면을 읊은 김상헌(1570~1652)의 시조 속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 동 말 동 하여라”는 구절이 그 예다. “수상한 사람은 간첩이니 신고하라”던 1960~1970년대 반공 포스터에도 자주 등장했던 단어다.

요즘 모든 일, 모든 현상에서 드러나는 조짐이 여간 심상치가 않다. 세계경제의 전반적인 하락세, 그를 뒷받침했던 중국 경제의 우려스러운 모습, 북한의 도발, 개성공단 폐쇄, 우리 경제의 위축 등이 다 그렇다. 심상치도 않으려니와 수상해도 보이니 이를 어떻게 풀어야 좋을까.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심상치 않은 무엇인가가 곧 닥칠 듯한 분위기다.

 

<한자 풀이>

尋(찾을 심): 찾다, 캐묻다, 탐구하다, 연구하다. 쓰다, 사용하다. 치다, 토벌하다. 잇다, 계승하다. 첨가하다, 거듭하다. 생각하다. 길, 발(길이의 단위). 자(길이 재는 기구). 여덟 자. 보

常(떳떳할 상, 항상 상): 떳떳하다. 항구하다, 영원하다. 일정하다. 범상하다, 예사롭다, 평범하다. 숭상하다. 항상.

 

<중국어&성어>

寻(尋)常 xún cháng: 우리의 ‘심상하다’와 같다. 앞에 부정을 뜻하는 ‘不’을 붙이면 ‘심상치 않다’ ‘보통 이상의 무엇이다’라는 의미, 역시 우리말 용례와 같다. 혹은 不同寻常   tóng xún cháng 으로도 쓴다.

不同凡响(響) bù tóng fán xiǎng: 일반적인 소리가 凡响(響)이다. 그와 다르다는 의미의 不同이 앞에 붙었다. 역시 평범치 않다, 매우 뛰어나다는 뜻이다. 자주 쓰는 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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