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원수 기자
  • 입력 2019.03.04 11:45

[뉴스웍스=장원수 기자] 이모(여·32세)씨는 최근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 사이트에 유포됐단 사실을 동료직원을 통해 알게 됐다. 영상을 확인한 결과 전 남자친구와 성관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이씨는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설마 했는데 정말 내가 영상 속 주인공이었다”며 “지금 이 동영상이 얼마나 많은 곳에 퍼졌을 지 감도 잡히지 않고 예비 남편과 시댁이 보게 될까 봐 너무 두렵고 잠도 오지 않는다”며 걱정을 토로했다.

보통 이런 일을 겪은 동영상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많다. 개인 사생활 부분이 들어있기에 함부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다 소문이 더욱 확산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생활이 담긴 게시물일수록 확산 속도는 매우 빠르다. 인터넷은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워낙 잘 갖춰져 있어 누구나 쉽게 게시물을 다운받고 퍼뜨릴 수 있다. 외국 사이트의 경우 디지털상의 법이 달라 국내 사이트보다 삭제 절차가 까다롭고 합당한 근거 제시 없이는 무조건적으로 삭제 요청을 할 수도 없다. 

이에 인터넷 여기저기 퍼져 있는 과거 기록물을 세탁해주는 ‘디지털 장의사’가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장의사는 원래 죽은 사람들이 미리 의뢰한 유언에 따라 개인 이메일, 게시글, 인터넷 거래 내역 등의 디지털 유산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들의 유산을 정리하는 이유는 디지털 유산이란 것이 글이나 이미지를 넘어 고인의 카드번호, 공인인증서, 보안카드 등의 계정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전적으로 전환이 가능한 금융 관련 자산들이 남아 있을 경우 금융범죄에 악용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정리하거나 지워야 한다. 

고인들의 디지털 유산 정리를 위해 탄생한 디지털 장의사가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현재는 ‘죽은 사람’ 보다 ‘살아있는 사람’의 디지털 흔적을 지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삭제 절차는 먼저 고객들의 상담 전화를 시작으로 삭제하고 싶은 항목들을 충분히 파악 후 진행한다. 삭제 대상들을 정리하고 나면 가지고 있는 전문 삭제 시스템을 가동해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의 이메일, 게시글 등을 하나씩 삭제해 나간다.

작업 과정만 보면 디지털 장의사들의 일이 간단한 것 같지만 생각보다 복잡하다. 완벽한 삭제를 위해선 데이터를 일일이 검색해 찾아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때문에 밤낮이 바뀐 채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삭제 작업 중 가장 어려운 일은 삭제하려는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료를 삭제해야 하는 이유를 사이트 관계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게시물 삭제가 가능하기에 디지털 장의사는 고객과 사이트 관계자 사이에서 조율도 잘할 줄 알아야 한다.

인터넷 기록물 삭제를 전문으로 하는 디지털 장의 업체 탑로직 박용선 대표는 “디지털 범죄는 사회적으로 관심은 높아졌지만 피해자들의 처우가 나아지진 않았다”며 “산 사람을 죽이고 죽은 사람들을 다시 무덤에서 꺼내 괴롭히고 있는 디지털 범죄 악행을 하루빨리 끝내고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전달해주는 것이 디지털 장의사의 사명”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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