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2.12 10:18

지난 7일 오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까지만 해도, 기존의 ‘삼분천하지계’는 유효한 듯싶었다. 여야 모두 가릴 것 없이 북한을 규탄하고 나섰기에 유권자들은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새누리당만큼이나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산이자 남북화해론자들의 상징과 같은 개성공단 이슈가 터지면서 정치판의 세력 판도는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공천룰, 저성과 현역의원 물갈이 등으로 내부 갈등에 빠졌던 새누리당은 일제히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박 의원으로 소위 ‘진박’의 맹공 대상인 유승민 의원도 북한에 대한 초강력 제재를 요구하고 나서고 있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모두가 함께 개성공단 폐쇄를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물론 여권 내 공천 갈등이 여전히 잠재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같은 환경에서 갈등이 표면화되기에는 쉽지 않다. 

김무성 대표의 이른바 ‘권력자 발언’으로 촉발된 당청 갈등도 당분간은 휴전이다. 지금은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새누리당의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면서 4월 총선에서 이 이슈로 여론을 선점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은 물론 경제활성화법, 노동개혁법 등은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다. 

한편 야권은 더불어민주당·정의당으로 대표되는 한 축과, 국민의당으로 대표되는 한 축 간의 차별성이 현저히 흐려졌다. 사실상 친노(親盧)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개성공단 폐쇄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는 것은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현상이다. 문제는 더민주와 같은 목소리를 내며 개성공단 중단 반대 대열에 합류한 국민의당이다.

당초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를 내걸고 나온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색깔에 비춰봤을 때는 국민의당이 새누리와 더민주의 중간 정도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안철수 의원과 국민의당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바로 ‘호남 민심’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적통임을 내세우며 호남을 본거지로 제3정당을 꿈꾸고 있는 국민의당 입장에서 개성공단 폐쇄는 민감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사태가 장기화되고 찬반논쟁이 4월 총선까지 이어질 경우, 선거판은 또 다시 양대 구도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 경제 이슈 다음으로 중도층에 미치는 파장이 큰 안보 이슈에 대해 목소리가 정확히 두 방향으로 갈라지면,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 표 결집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상대적으로 국민의당과 같은 제3세력이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아직 누구에게 더 유리할 것인지 예측을 내놓기는 어렵다. 다만, 야권이 개성공단 이슈에 스스로 좁혀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국정원 댓글, 세월호 등에 집중했던 야권은 모든 선거에서 패배했다. 개성공단 폐쇄를 두고 ‘북풍’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데에는 그러한 불안감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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