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지훈 기자
  • 입력 2019.03.09 05:55

[뉴스웍스=박지훈 기자] 정부와 서울시가 소상공인의 결제 수수료 부담 ‘제로(0)%대’라는 목표로 야심차게 추진 중인 제로페이가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수수료율 0%가 아닌 결제율 0%라는 조롱까지 듣는 상황이다. 

지난해 20일 시범사업에 들어간 제로페이는 올해 1월 결제건수 8633건, 결제액 약 2억원뿐이라는 참담한 실적을 냈다.

서울 일부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적은 가맹점수, 이용 유인책 및 편의성 부족으로 흥행 부진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지만,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1월 성적표를 지난 6일 공개하며 부진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제로페이 사업에 부정적인 대부분의 여론이 성적 부진이 국가가 시장질서에 무리하게 개입한 관치의 결과라며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기자는 정부와 서울시가 제로페이 활성화 사업에서 처참한 성적표를 내고 있는 이유를 이모저모 짚어봤다.

◆카카오페이 성장 분석 실패...성적 부진으로 연결

제로페이의 롤모델은 의심의 여지없이 카카오페이다.

카카오페이는 온라인 결제에 집중하는 네이버, 스마트폰 갤럭시에 탑재된 삼성페이와 함께 간편결제 삼국시대를 열었다.

제로페이는 이중 카카오페이의 카피캣(성공한 1위를 모방하는 것)이 되기로 한다.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시장에 먼저 진출해야 하고 자체 개발한 스마트폰도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제로페이의 첫 번째 실책이었다.

정부와 서울시는 카카오페이가 현재 QR·바코드 결제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해 회사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거친 수많은 과정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2014년 국내 최초로 온라인 간편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송금, 더치페이, 오프라인페이카드 등의 서비스를 연이어 출시하며 사용자의 플랫폼 이용 즐거움과 편의성을 높여왔다. 이러한 사업적 기초로 카카오페이의 월간 거래액(온·오프라인·송금 포함)은 지난해 3월 1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해 5월 QR·바코드 방식의 결제를 도입하며 월간 거래액이 급증, 9월에 2조원을 기록하더니 12월에는 3조원을 돌파했다. 2018년 한해 거래액은 20조원을 넘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IT업계 전문가는 “사람들이 매장에서 카카오페이로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은 복잡한 인증 없는 간편송금, 편리한 더치페이, QR·바코드 결제 출시를 앞둔 실험적인 실물페이카드 등의 서비스 도입으로 브랜드 가치를 올린 결과”라며 “카카오페이가 이 같은 사전 사업 없이 다짜고짜 소상공인 매장을 찾아 간편결제 서비스를 도입하자고 영업했다면 상인들은 외면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업성공 사례를 하나씩 축적해 온 카카오페이, 성공한 카카오페이의 최근 모습만 보고 뛰어든 서울시의 제로페이는 가맹점 확대 방식부터 달랐다. 

카카오페이는 앞서 언급한 사업들의 성공에 힘입어 QR·바코드 결제 서비스를 출시할 때도 기대를 모으며 프랜차이즈 업체와 소상공인의 자발적인 가맹 신청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시는 가맹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결국 지역 자치회를 통해 가맹점 영업인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며 ‘예산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랜 경력의 맛집에는 손님이 몰린 반면, 자신이 뭘 잘하는지 모르는 신참내기는 전단지만 돌린 셈이다.

◆자체 플랫폼 없는 신세...편의성 높이기도 어려워

제로페이를 이용한 결제방식은 다음과 같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에 설치된 간편결제 앱을 켜고 가맹점에 부착된 QR코드를 촬영한 뒤 결제금액을 직접 입력하거나, 가맹점이 소비자의 간편결제 앱에 있는 QR코드를 스캐너로 찍는 두 가지 방식이다. 

제로페이의 불편함을 지적하는 대부분의 여론은 소비자가 직접 결제금액을 입력해야 하는 점을 최대 단점으로 꼽는다. 때문에 결제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런 불편함은 카카오페이의 가맹점 일부에서도 겪을 수 있다.

사실 제로페이의 가장 큰 단점은 자체 플랫폼이 없다는 것이다.

제로페이 참여 사업자는 20개 은행, 네이버 등 9개 핀테크 업체다.

은행권의 간편결제 앱은 대체로 용량이 많고 구동시간이 오래 걸린다.

게다가 잘 사용하지 않는 탓에 업데이트가 돼 있지 않으면 결제까지 시간은 더 지체되거나 도로 카드를 내기 십상이다.

그나마 금융권 공동 계좌이체 앱인 뱅크페이는 앱 수동속도가 빠르고 제로페이 메뉴가 메인 화면에 배치돼 있지만 결제와 입력 오류가 빈번하다는 문제를 노출하기도 했다.

지난달 14일 문재인 대통령과 소상공인 간 청와대 간담회, 이달 5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서울 신원시장을 찾았을 때도 뱅크페이에 대한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나왔다.

카카오페이는 국민 앱 카카오톡과 연동돼 있고 대부분 항상 켜져 있는 경우가 많아 결제 단계까지 진행이 빠른 편이다. 이 같은 플랫폼의 차이를 제로페이가 극복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해법은 서울 인프라 활용

제로페이의 소비자 유인책은 속속 강화되고 있는 편이다.

지난 4일 서울시는 조례 개성을 통해 서울대공원, 공유 자전거 ‘따릉이’, 공영주차장, 문화시설 등 시 관할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소비자 유인책은 서울시가 가진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안일 뿐만 아니라 다른 간편결제 서비스에겐 없는 강점이다.

이것 저것 찾아보면 훌륭한 인프라가 많을 것이다.

사실 이런 대책들은 제로페이가 시범서비스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고려됐어야 한다. 카카오페이가 카카오톡과 연계해 간편송금, 더치페이, QR·바코드 결제, 페이투자 순으로 사업을 진화시켜왔던 역사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 더 명심할 점이 있다. 소상공인의 결제 수수료율 부담을 낮춰주겠다고 해서 그들에게만 초점을 맞춘 정책이나 홍보는 소비자에겐 아무런 이득도, 매력도 없다. 영업인을 통해 가맹점 수만 늘려도 수요가 없으면 그 산업은 결국 몰락한다.

서울시가 가진 힘이나 박원순 시장이 지닌 정치적 권력은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이보다는 서울의 독보적인 인프라를 충분하고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심폐소생의 기회를 노려볼 수 있다는 평가가 적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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