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03.24 14:38
4월 3일 경남 창원성산에서 열리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더불어민주당 권민호 후보(왼쪽)와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창원 성산구를 누비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 원성훈 기자)
4월 3일 경남 창원성산에서 열리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더불어민주당 권민호(왼쪽) 후보와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창원 성산구를 누비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선거 등에서 우리가 심심찮게 겪게되는 '후보단일화'는 과연 바람직한 현상일까.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오는 4월 3일 경남 창원성산에서 열리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에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지난 23일 논평을 통해 "창원 성산구 선관위는 4·3보궐선거 국회의원 후보토론회 일정을 즉각 조정하기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후보가 합의한 대로 25일 단일화가 된다면 두 후보 중 한명은 최종 투표에 나서지 못한다"며 "최종 투표용지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할 후보가 24일로 예정된 토론회에 참석해 유권자의 눈과 귀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 자명함에도 창원 성산구 선관위가 이를 방치한다면 유권자의 공정한 선택을 방해하는 행위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언급은 유권자의 표심에 반(反)하는 표심왜곡 행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혀진다.

한마디로 말해 유력후보를 낙선시키려 2, 3위 후보들이 연합하는 후보단일화는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된다.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라고도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정치적 지향도 다르고 품성, 정치경력 등 후보자의 개별적 특성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오로지 유력한 1위 후보자를 낙선시키기 위해 '후보 단일화'를 하는 것은 최대한 관대하게 봐주더라도 최소한 민주주의의 본령에 대한 몰이해라고 여겨진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행위로 이해된다.

일각에서는 '후보단일화'는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론(論)'이나 '결선투표제 부재(不在)하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애초에 왜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되었던가를 생각해보자.

◆ '기울어진 운동장' 자체가 당시의 민심

다수의 국민들이 A라는 정당을 지지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소수의 국민들이 B정당을 지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A정당이 B정당에 비해 민심을 더 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그런 정치지형 자체가 당시 민심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일 수 있다.

선거에서 부유층, 학력높은 사람, 특정 종교인 등에게 2표를 행사하게 한다든지 특정인들을 여타의 이유로 선거에서 원천배제시키는 것이 현대 민주정치의 기본원리인 '평등선거'에 전면적으로 위반되는 반(反)민주적 행위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그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1인 1표를 행사해서 얻어진 결과에 모든 사람들이 승복해서 만들어진 정치지형이라면 그것은 그 자체가 민주적인 것이라고 봐야한다. 이런 측면에서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므로 이것을 억지로라도 수평으로 만들어놓고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논리는 오히려 반(反)민주적 사고방식이라고 봐야한다.

◆ '전략적 타협·역선택 방지책'이 없는 후보단일화
 
그렇다면 '결선투표제 부재(不在)하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일견 타당해보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결정적인 맹점이 있다. 결선투표제는 사표(死票) 방지심리에 이끌린 '전략적 투표'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되고 적지않은 국가에서 이를 도입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후보자가 총 3명일 경우에만 무리없이 시행이 가능한 제도라는 맹점이 있다. 후보자가 4명 이상일 경우에는 오히려 2차 투표 진출자를 고르기 위한 '전략적 타협'이 이뤄진다. 투표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행태를 보이기보다는 1차 투표에서 가장 유력한 세 후보 중 한명을 골라서 투표하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략적 역선택'의 문제도 심각하다. 일부러 상대적으로 약한 후보를 1차투표에서 지지했는데 운좋게 이런 후보가 1차 투표에 통과하게되면 이 후보가 탄력을 받아서 의외로 결선투표에서도 이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후보가 자신이 지지하는 다른 후보가 2차 투표에 올라갈 수 있도록 1차 투표 전에 지지를 표명하고 사퇴하는 '전술적 출마'가 가능하다. 이것은 일정정도 표 분산을 막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이 자체가 당초의 표심을 왜곡하는 행위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강력한 1위 후보를 낙선시키기위해 2,3위 후보들이 후보단일화를 한다는 것은 마치 1대1로 겨루는 바둑에서 자신의 능력이 떨어지니 바둑 잘 두는 자신의 친구와 상의해서 그 친구의 힘을 빌어서 착수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또 모의시험을 치러서 석차가 결정됐는데 1등이라는 성적을 부정하고 2등, 3등한 학생들이 모여서 자신의 과목별 성적중에서 가장 잘 나온 성적을 조합한 결과를 들고 '1등보다 우리들의 성적이 더 우수하다고 우기는 행위'에도 비유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런 행위들은 반(反) 민주적인 폭거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백보를 양보해 민주주의 제도하에서는 '후보사퇴를 할 자유'도 기본적인 자유권에 포함되는 행위라고 쳐준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럴 경우에는 반드시 전제돼야 할 몇가지 사안이 있다. 표심을 왜곡하지 않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하기위해서는 최소한 '후보로 등록하기 전에 사퇴해야만 할 것'이고, 후보를 사퇴한 후에는 특정후보를 지지한다면서 노골적으로 그 후보 지지를 위한 선거활동을 해서는 안될 일이다.

어떤 후보자를 보고 그를 지지하기에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던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보면 그 후보자를 평가해 주권을 행사한 것일 뿐이지, 해당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그 후보자의 판단으로 지정한 다른 후보자를 지지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퇴하는 후보자가 자신을 지지했던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지정하는 다른 후보자에게 표를 주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해당 후보자의 자신만의 선택일 뿐이지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들 전체의 표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거 판세분석 상 불리한 위치에 있던 2, 3위 후보가 단일화를 합의할 때 내부적으로 합의한 선거 승리 이후의 과실(果實) 나눠먹기 합의 따위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곁가지적인 측면이라고 치부하더라도 후보단일화는 정치발전의 한 요소인 '예측가능한 정치'를 무너뜨리는 측면조차 갖고 있다고 본다.

선거에서는 단 1표라도 많이 득표한 사람이 선출되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이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한 '가칭, 후보단일화 금지법안'이 조속히 입법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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