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2.15 11:49

총선이 다가오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공약이 있다. 바로 ‘법인세 인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법인세 인상을 4월 총선을 겨냥한 대표 공약으로 내건 반면, 국민의당은 실효 세율 인상으로 차별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 등 당 지도부가 법인세 인상 불가론을 내걸고 있지만, 유승민 의원 등 당내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여전히 법인세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법인세 인상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법인세율’의 인상이다.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받고 있지만, 그보다 법인세를 ‘부자세금’으로 보는 시각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즉 법인세 인상을 ‘부자증세’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법인세는 부자 증세가 아니고 오히려 법인세 인상이 일반 서민들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경제학자들의 진단이다. 게다가 세수 확대를 위해 법인세 인상을 택할 경우, 오히려 법인세수는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전세계 주요 국가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펼치며 외국 기업의 투자와 해외 진출 기업의 유턴(U-turn)을 장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법인세 인상이 부자증세?...법인세에 대한 잘못된 오해

법인세 인상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흔히 따라 붙는 표현이 있다. 바로 ‘부자증세’다.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을 소득 상위계층, 재벌가, 기득권자들에 대한 과세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각이 오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은 한 칼럼에서 “법인의 주인은 전체 주주이며, 재벌가계의 지분은 전체 주식에서 차지하는 일부분일 뿐이므로, ‘법인=재벌가계’란 등식은 성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인과 부자증세는 서로 무관하다는 것이다. 

법인세는 말 그대로 법인이 내는 세금이다. 하지만 그 세금 부담은 결국 법인의 주인인 주주들이 공동으로 부담하고 있다. 예컨대 법인세 납부 부담이 줄어들 경우 주주들의 배당금이 더 많아지거나 기업의 자산이 많아져 주식의 가치가 높아지며, 반대로 법인세 납부 부담이 늘어나면 주주의 배당금과 주식가치가 떨어진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LG와 같은 주요 대기업들에 대해 법인세율을 높이면, 그 부담이 일반 주주들에게도 전가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기업의 주주들 중에는 일반 서민, 저소득층도 포함될 수 있다. 그것이 주주 자본주의 시장의 기본 질서이기도 하다. 

게다가 법인세율 인상은 소비자들에게도 부담을 전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법인세율을 인상해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게 되면, 기업은 기존의 이윤율을 유지하거나 재무 구조를 건전화하기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올리거나 혹은 가격대비 품질을 낮출 수 있다. 혹은 고용 규모를 줄여 노동강도를 높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2%포인트 높일 경우 소비자, 근로자, 기업(투자자)이 각각 32.8%(2조 9000억 원), 16.0%(1조 4000억 원), 51.2%(4조 5000억 원)의 비율로 세금을 분담해야한다.”며 “소비자와 근로자가 절반가량의 세부담을 떠안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법인세율, 지금도 결코 낮지 않아...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져

한편 법인세 논쟁과 관련해 자주 나오는 주장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낮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인세율 현황은 과세표준, 즉 법인세를 부과하는 기업의 소득 구간에 따라서 차등 적용하고 있다. 2억원 이하의 이윤을 벌어들이는 경우는 10%를, 2억~200억인 경우는 20%, 그리고 200억을 초과하는 경우는 22%를 부과하고 있다. 지방세까지 포함하면 최고 세율은 24.2%다. 

여기서 주로 논쟁이 되는 부분은 재벌·대기업들이 주로 대상이 되는 법정 최고 법인세율의 국제적 비교다. 즉,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법인세 관련해 혜택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법정최고 법인세율의 국제적 비교 <자료=한국경제연구원>

하지만 실제 OECD 국가들의 평균 법정최고 법인세율(지방세 포함)은 25%로 우리가 크게 낮지 않은 상황이며, 우리의 수출 경쟁국가인 중국·홍콩·싱가포르·대만 등을 포함시킬 경우에는 평균 24.3%까지 떨어져 사실상 우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실효세율, 즉 각종 감면 등의 혜택을 받은 후 실제로 납부하는 법인세 부담액의 비율을 문제 삼기도 한다. 국민의당의 안철수 의원이 명목 법인세율 인상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면, 실효세율 인상을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조세정책 운용계획에 따르면 대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8.9%로 일본(35%), 독일(29.55%), 영국(28%), 미국(26%)에 비해서는 낮은 편에 속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규 설비 및 R&D(연구개발)투자, 고용 증대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면인만큼, 이 같은 혜택을 줄이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 전 세계는 법인세 인하 경쟁 중...우리만 '인상론' 머물러 있어

한때 30%에 육박했던 영국의 법인세율은 지난해 20%로 대폭 떨어졌다. 하지만 오히려 법인세수는 늘어났다. 2000년 당시 345억 파운드(60조6000억원)였던 법인세수는 2013년 23%의 법인세율에서 436억 파운드(76조6000억원)까지 올랐다. 세율을 낮춰서 세수를 확보한 전형적인 사례다. 영국은 2017년 19%, 2018년 18%까지 법인세율을 낮출 방침이다. 

2011년도 당시만 해도 39.54%의 법인세 실효세율을 부과하던 일본은 지난 5년간 10% 가까이 법인세율을 인하해, 올해부터 29.97%의 실효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미국은 해외 생산기지를 국내로 이전하는 기업에 대해서 7%의 법인세율 인하 혜택을 부여하고 있으며 북유럽 복지국가인 핀란드(26%→20%), 스웨덴(26.3%→22%), 덴마크(25%→23.5%) 등도 모두 법인세 인하를 단행했다. 아시아 주요 수출국가 중 하나인 태국 역시 30%에서 20%로 법인세율을 낮췄다. 

이처럼 전세계가 법인세 인하 경쟁에 뛰어드는 모습은 법인세 인상 찬반논쟁에 머물러 있는 우리 정치권과 사뭇 다른 광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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