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03.25 23:30
지난 22일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지난 14일 '반민특위'관련 발언을 규탄했다. (사진= 원성훈 기자)
지난 22일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지난 14일 '반민특위'관련 발언을 규탄했다. (사진=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지난 22일 국회 기자회견장인 '정론관'에서는 국회 운영규칙을 지키려는 국회 직원을 곤혹스럽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앞서 지난 14일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라고 한 발언을 규탄하기 위해 모인 임우철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기자회견에서 '구호 제창'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국회 기자회견장 운영지침'에는 제6조에 금지행위를 규정해놨다. 조항은 다음과 같다.
① 기자회견장 안에서는 누구든지 구호·시위·농성 등의 소란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개정 2010.6.10>
② 제2조의 사용권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기자회견 중 단상 위로 올라가거나 단상 앞에 서 있어서는 아니 된다.<신설 2009.5.20>
③ 기자회견장의 질서 유지를 위하여 이 운영지침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기자회견장 내 마이크 차단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신설2013.3.18.>

제1항에 명백히 "구호·시위·농성 등의 소란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문화 돼 있다.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구호를 제창하는 통에 기자회견장 내에서 조용히 기사를 작성하던 기자들이 상당히 업무에 지장을 받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기자회견장을 관리하는 국회 직원의 입장에선 규정을 준수케 할 의무가 있기에 구호를 제창하려는 단체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정중히 규정을 안내하고 제지하는 장면도 그동안 숱하게 연출됐다. 그럼에도 구호 제창 금지 규정을 어기는 적잖은 사람들 때문에 부득이 국회 기자회견장을 관리하는 국회 직원은 기자회견장의 입구와 게시판에 "기자회견장 안에서는 구호가 금지되어 있습니다"라고 써붙여 놨다.

이런 상태에서 또 다시 이날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구호를 외치자 국회 직원은 제지를 했고, 결국 임우철 선생을 비롯한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작은 소리로 "친일 청산"을 세차례 외치고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일각에선 "여타 기자회견장에서는 주먹을 불끈 쥔 채로 구호를 외쳐도 되는데 왜 국회 기자회견장에서는 그게 안되느냐"며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았는데, 국회 공간은 의원들만을 위한 공간이냐"고 따져 묻기도 한다. 국회는 광장이나 시장이 아닌 입법부가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점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발언으로 생각된다. 광장이나 시장 혹은 시민사회단체 자신들이 마련한 사적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구호를 외쳐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그것조차도 법률이 정한 소정의 조건을 넘어서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공공기관인 국회에서는 국회의 특성에 맞게 규정된 규칙을 당연히 준수해야 한다.

더군다나 국회정론관은 기본적으로 국회의장, 국회의원, 정당 대변인 등 '사용권자'의 의정활동을 홍보하거나 정당의 공식 입장을 기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곳이기에 그렇다. 다만, 시민사회단체가 국회 기자회견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사용권자'인 국회의원이 반드시 기자회견 현장에 동행한다는 전제하에 약간의 편의를 봐주는 활동일 뿐이기에 더더욱 규칙 준수가 필수적이다.

제기됐던 또 다른 의문은 아무래도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발언으로 이해된다. 물론,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선출했지만, '국회의원 그 자신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그렇고, 지방자치 단체장의 경우도 모두 마찬가지다. 국민들 각자가 나서서 국정을 운영할 수 없기에 국민의 대표자로서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선출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10명 내외의 소모임에서조차 대표자를 선출해 모임운영의 활성화를 기하는 까닭조차도 모두 이런 연유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의무'와 '책임'도 부여되지만 '권한'도 주어지는 것이다. 이게 바로 '대의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이런 '대의 민주주의'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너도 나도 '국민이 주인'이라면서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된 자들과 똑같은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나서도 된다는 말은 '논리'가 아닌 어처구니 없는 '떼쓰기'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일각에서는 '구호 제창 금지'를 두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행위'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라는 것도 공공선에 위배되거나 특수장소에서의 규칙에 반(反)하는 행위라면 마땅히 제약돼야 한다. 일례로,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법정에서 구호를 외치는 것을 제지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이를 구호로 외쳤다면 현행법은 그런 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법정에서 퇴장시키거나 심하면 인신구속까지 시킨다. 어떤 행위가 됐건간에 그것이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관련 법과 규칙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이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이런 상식이 폭넓게 받아들여져 체계화된 것이 '규칙'이고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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