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3.27 00:05

27일 주총 출석한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던져야만 이사직 유지

조양호 회장. (사진제공=대한항공)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국민연금이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재선임에 반대하기로 확정했다. 이에따라 27일 주주총회에서 지분 33.35%를 보유한 오너 일가와의 표대결이 불가피하게 됐다. 국민연금이 지난주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기권한 것과는 달리 조 회장 연임을 막기로 한 것은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 논란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너무 악화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는 26일 "대한항공 주주총회 안건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대해 심의한 결과 조양호 사내이사 후보자 선임의 건에 대해 반대 결정을 내렸다"며 "해당 후보자는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의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수탁위는 이날 4시간 반에 걸친 격론 끝에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로 한뒤 오너 일가 재선임에 반대한 첫번째 사례이다. 조 회장은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수탁위원 중 조 회장 연임 의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힌 위원은 6명, 중립·기권 의견을 밝힌 위원은 4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주주권 행사분과 위원(8명)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책임투자분과위원(2명)이 참석하는 전체회의를 소집해 표결에 부쳤다. 주주권 행사분과 위원 중 1명은 이해관계 상충 문제로, 나머지 책임투자분과위원 3명은 갑작스럽게 소집된 회의로 표결에 참석하지 못했다.

국민연금의 이같은 결정은 조 회장에겐 엄청난 타격이다. 대한항공 정관에 따르면 이사 재선임을 받으려면 주총에 출석한 주주 중 3분의 2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총 참석률이 통상 70∼80%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지분 중 23.31~26.64%가 반대하면 조 회장의 재선임은 무산된다. 달리말해 조 회장은 출석한 주주들로부터 3분의 2 이상이 찬성표를 얻어야만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다. 약 20%를 차지하는 외국인 주주 상당수가 반대 의사를 밝힌 데 이어 국민연금까지 반대 결정을 내린만큼 조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박탈당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연임을 저지하는데 성공한다면 국민연금이 오너 일가의 회장 연임을 저지하는 첫 사례가 된다. 그간 갑질 행태를 보여왔던 재벌 2,3세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되겠지만 거꾸로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비난 여론도 덩달아 커질 전망이다. 

그동안 시민단체 등은 조 회장이 횡령, 배임,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 자체가 주주 가치 훼손이라며 이사 선임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반해 재계는 유죄 확정 전 혐의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이었다.

조 회장에게 우호적인 지분은 1대 주주인 한진칼(29.96%)을 포함해 33.34% 수준이다. 만약 주총 출석률이 80%에 달할 경우 조 회장 연임에 필요한 지분은 53.28%다. 20% 가량의 추가 지지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분 11.56%를 갖고 있는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입장을 정한 것이다. 

더구나 이같은 흐름은 다른 기관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해외 연기금 중 캐나다연기금투자위원회(CPPIB)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투자공사(BCI) 등이 조 회장 연임에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국민연금의 입장이 나오자 대한항공은 “장기적 주주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며 “국민연금의 사전 의결권 표명은 위탁운용사, 기관투자자, 일반주주들에게 암묵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고 반발했다. 이어 대한항공은 "사법부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법적 가치마저 무시하고 내려진 결정"이라고 항변했다. 

결국 56%에 달하는 소액주주들의 향배가 조 회장이 연임 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조 회장이 연임에 실패할 경우 1999년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 취임한 이후 20년 만에 이사직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한편 수탁위는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주) 사내이사 선임 안건과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서도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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