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상근기자
  • 입력 2016.02.16 06:00

지난해 타결된 한·중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정에서 정치권과 정부가 조성하기로 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대표적 준조세’ 논란을 불렀다.

국가간 협정으로 생길 지도 모르는 특정 계층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 규모의 상생기금을 기부금 형식으로 걷는다는 내용이다.

돈을 내야 하는 당사자인 기업의 의견청취는 아예 생략된 채 정치권과 정부가 입을 맞춰 진행한 이 결정에 대해 ‘위헌성’ 논란까지 일었다. 명확한 법적 근거없이 시행하려는 자체가 ‘사회주의적 발상’이란 비판도 나왔다.

한중FTA의 피해 대상이나 내용을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없으며 반대로 개별 기업들이 한중FTA의 수혜를 언제, 얼마나 받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목표금액을 정해놓고 기부를 사실상 강요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기업은 일방적 여론과 정치논리, 권력의 서슬에 항변조차 못한 채 올해부터 펀드조성에 동참해야 한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기업의 기부행위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자발적으로 진행한다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기업은 ‘자발적’이란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 '자발적'을 내세운 반강제 기부

농어촌상생협력기금같은 유형의 준조세형 기부금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더욱 논란이 심했다.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공익신탁을 받겠다며 만든 ‘청년희망펀드’도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정부는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을 뜻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취지를 살려 개인명의로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상은 달랐다. 기업규모나 재계 서열에 따른 오래된 기부관행은 그대로 재연됐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50억원을 내자 현대차, LG, SK그룹의 오너 명의로 200억, 100억, 100억원씩 기탁이 이뤄졌다. 그룹사와 대기업, 은행 등 금융기관 등은 줄줄이 기부금 모금에 나섰지만 실상 덩치큰 돈의 출처가 어떻게 되는 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한류확산을 위해 지난해 10월 설립된 재단법인 미르에도 삼성, 현대차 등 16개 기업이 486억원을 출연했다. 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전국에 설치하면서 10여개 기업이 수백억원을 부담해야 했고 평창동계올림픽에도 주요 기업들이 수백억원을 내야 할 판이다. 2014년에는 세월호 사고로 재계가 1000억원이 넘는 성금을 냈고 연말이면 어김없이 관례에 따른 비율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놓는다. 또 태풍,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생기면 그때마다 기부금이 필요하다.

♦ 세금보다 많은 준조세...근거와 용처, 투명화 절실

준조세는 경영활동 전반에 걸쳐 부과되고 있다고 기업들은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환경, 고용, 교통 등과 관련한 각종 원인자 부담금과 부과금, 예치금과 보증금, 분담금, 출연금, 기부금, 사회보장부담금 등 외에도 ‘비공식 준조세’도 내야 한다.

지방곳곳에 영업장을 둬야 하는 유통업체의 경우 교통유발부담금을 내는데도 지역발전기금 형태로 적지 않은 금액을 요구받기 일쑤라고 토로한다.

<자료=대한상공회의소>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준조세규모는 법정부담금 18조7300억원에 4대 사회보험료 42조원 등 60조7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전년도 58조6000억원 대비 2조원 이상 늘었다.

반면 최근 기획재정부가 밝힌 지난해 법인세수는 45조원이다. 특히 금융업을 제외한 연구개발(R&D)을 수행하는 6200여개 전체기업의 투자비는 43조6000억원(2014년) 선이다. 이처럼 법인세와 R&D 비용을 훨씬 뛰어넘는 기업들의 준조세 부담은 원가상승 요인이 돼 경영압박 요인이자 서민경제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규정상 준조세는 95개 부담금관리기본법 상의 부담금 95개와 사회보험료가 포함되지만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준조세가 100여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부금 등 일부는 비용 처리가 가능하다지만 경영에는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말 대한상의가 내놓은 ‘2015년 기업부담지수(BBI)' 조사에서도 준조세의 폐해는 나타난다. 조세, 준조세, 규제, 기타 기업부담 등 4개 항목을 총괄한 전체 BBI지수가 100을 보통으로 했을 때 107인데 준조세는 116으로 나왔다. 조세가 117로 거의 비슷했고 규제는 86, 기타 기업부담은 107이었다. 특히 규제가 전년도 93에서 급락하는 등 3개 지표는 1년만에 개선됐는데도 준조세지수만 전년도 115에서 상승했다.

 민간연구소 한 관계자는 "현재 기업의 준조세 부담은 조세 수준을 뛰어넘는 경영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며 "특히 규정상 부담금이 아닌 준조세의 경우 조성근거를 명문화하고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한다면 기업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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