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2.17 06:00
1856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스웨덴의 가장 대표적인 100년기업 '발렌베리' 그룹의 계열사

1300여개의 히든 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을 보유한 독일은 그야말로 ‘가족 기업’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총 300만여개의 가족 기업이 있으며 중견·중소기업 중 90% 이상이 가족 경영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대를 이어 전해지는 기술력과 경영 노하우, 그리고 기업에 대한 책임감이 독일의 히든 챔피언 성공 신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른바 ‘가족 기업’, 즉 기업에 대한 소유 및 경영이 친족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기업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편에 속한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기업을 소유하는 일가가 전문경영인 대신 직접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전문성 부족 등을 이유로 비판적인 학자들이 많았다. 소위 말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등이 한 때는 경영학계에서 힘을 받았었다. 

하지만 지난 2008년 미국과 전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사태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한계를 부각시켰고, 다시 가족기업의 힘을 재조명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포츈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 중 가족경영 기업이 2005년 15%에서 2013년 19%로 늘어나는 등 가족 기업이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족 기업의 성과는 눈부시다. 오늘날 한국 경제의 주력 엔진인 대기업들 중 가족 경영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가족 기업, 가업승계 등에 대해서 ‘특권’이라는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다. 게다가 가업 승계가 원활하지 못하 폐업하거나 사업이 쪼개지는 중견·중소기업도 부지기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세계적으로도 가혹한 수준의 ‘상속세’가 자리잡고 있다. 

◆ 가업승계, 장려는 하지만...범위·기준 모두 미흡해

한국에서도 가업승계를 장려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과세 특례 제도와 상속세 납부 유예 등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가업승계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세액 공제 제도를 확대하기 시작했으며 점차 매출액이나 승계 자산 등의 기준을 상향 조정해 범위를 늘려오고 있는 추세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이른바 ‘가업상속공제’는 10년 이상 가업을 영위한 피상속인이 사망했을 시, 해당 기업에서 근무한지 2년 이상 된 상속인(배우자 포함)이 최대 500억원까지 가업 상속재산에 대해서 상속세를 면제 받을 수 있다. 

또한 사망 이전에 원활한 가업 승계를 위해 60세 이상의 증여자가 자녀에게 가업주식을 증여할 경우 증여재산가액에서 5억원까지 공제해주고 10%의 낮은 세율로 증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 밖에도 중소기업에 한해 최대주주의 주식 상속·증여에 대해서 주식평가액을 할증평가하는 것을 면제해주고 있으며 납부를 미뤄주는 등의 ‘납세부담완화제도’ 등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제도로는 여전히 가업승계 장려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기업규모, 업종, 피상속인 및 상속인에 대한 별도의 요건이나 제한이 없이 대부분의 가족 기업에 대한 승계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주로 중소기업에 한하여 상속인의 해당 기업 근무 기간, 피상속인의 기업 경영 기간 등을 규정하는 우리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 높은 세율도 조정해야...복지국가 스웨덴은 2004년 상속세 ‘폐지’

가업 승계에 대한 지원책과 별도로 한국의 상속세율 자체가 절대적으로 높은 것 또한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 상증여액이 30억원 이상일 경우 최고세율 50%가 적용된다. 독일의 경우 최고세율이 30%로 우리보다 훨씬 낮을 뿐만 아니라 최고 과세구간이 300억원 이상이다. 한국의 최고구간 금액보다 10배나 많은 셈이다. 

전세계적으로 한국보다 높은 최고 상속세율을 가진 나라는 일본뿐이다. 비교적 높은 상속세를 매기는 프랑스와 미국이 각각 45%, 40%이며 최고세율 기준으로 상속세율이 소득세율보다 높은 국가는 일본·한국·헝가리 세 곳 뿐이다. 헝가리는 최고 소득세율이 16%여서 비교가 부적합하므로 사실상 일본과 한국만이 높은 상속세율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네덜란드(20%), 벨기에(30%), 핀란드(19%), 덴마크(15%), 노르웨이(10%), 스위스(13% 이하) 등 유럽의 복지국가들 역시 한국보다 훨씬 낮은 최고 상속세율을 갖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 상속세율이 소득세율보다 낮게 책정돼 있기도 하다. 

상속세 제도가 아예 없는 나라도 상당수다. 우리에게 대표적인 복지 국가 모델로 알려져 있는 스웨덴은 지난 2004년 상속세를 폐지한 점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가족경영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와 경영권 보호를 위해 상속세를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멕시코·오스트리아 등도 상속세를 모두 폐지했다. 

금수저·흙수저 논란 등 부의 대물림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요즘, 상속세 폐지 혹은 부담 완화를 주장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주요 대기업의 경우 승계 문제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통과를 지연시켰을만큼 민감한 이슈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속세제 내에서는 결코 백년기업, 천년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재계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물론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모두 상속세 완화를 통한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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