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병도 기자
  • 입력 2019.04.03 10:10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 프로그램 참여자가 자기방어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동행복권>

[뉴스웍스=문병도 기자] “펀치와 킥을 날리면서 마음속에 쌓였던 분노가 하나씩 사라졌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 프로그램실에서 20-40대의 여성 10여명이 모여 몸싸움이 한창이다.

상대방이 어깨를 잡아채면 몸을 돌려서 상대를 가격하고, 몸을 밀치면 한 걸음 물러서 안전거리를 확보하기도 한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공격을 저지해 봄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들은 복권기금이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기방어훈련’에 참여중인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다.

짧게는 5개월에서 길게는 30년 전에 피해를 입었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찾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자기방어훈련’을 비롯해, 전문 인력을 통해 정서적, 심리적 치료를 지원하는 ‘집단상담’과 ‘개별심리상담’, 안전한 공동체에서 공감과 지지를 받으면서 자신을 털어놓는 ‘작은 말하기’, 자연 속에서 심신을 치유하고 소통하는 ‘심신회복캠프’ 등 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모두 로또복권·연금복권·즉석복권·전자복권의 판매액으로 조성된 복권기금이 지원한다.

조은희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최근 성폭력 피해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대처를 하는 생존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복권기금의 지원은 가뭄의 단비처럼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는 지난해 복권 판매를 통해 조성된 복권기금으로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성폭력 재발방지 사업’에 지난해 약 15억원을 지원했다.

올해는 신규 사업인 ‘성희롱 · 성폭력 방지 및 지원 사업’을 위해 복권기금 11억원을 추가로 편성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성폭력범죄 접수 및 처리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성폭력범죄 사건 접수 건수는 4만1089건으로 5년만에 1만건 이상 증가했다.

이부선(가명. 27) 씨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생각에 항상 고통스러웠는데 이곳에 와서 성폭력이 가해자와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했다”라며 “복권기금과 같은 사회적 지원이 더 많아져 나 같은 피해자가 힘을 얻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김경난(가명. 43) 씨는 “내가 처한 상황을 말할 수 없어서 우울감과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으로 힘들었는데 아픈 상처를 꺼낼 수 있는 모임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라며 “성폭력 피해자 치료프로그램 덕분에 따뜻하게 위로 받았다”라고 말했다.

김정은 동행복권 건전마케팅팀 팀장은 “복권을 사면 당첨에 대한 작은 기대를 할 수 있고, 낙첨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라며 “복권판매액의 42%가 복권기금으로 조성돼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 뿐만 아니라 성폭력 · 일자리 · 문화재 등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분야에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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