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효영기자
  • 입력 2016.02.16 14:17

드라기총재 “테러 범죄조직 악용 막아야”...일각선 “마이너스금리 때문” 주장

500유로(약 68만원)짜리 지폐가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는데 반해 테러·범죄조직의 자금 보관, 돈 세탁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는 비난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고액권 지폐가 범죄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 여론이 높아 이러한 관점에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16일 보도했다.

드라기 총재는 15일 유럽의회 연설에서 500유로짜리 지폐가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도 지난 주 500유로 지폐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ECB에 요청했다.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은 “500유로 지폐가 무엇을 사는데 사용되기보다 어떤 활동을 감추는 데 더 많이 사용되고 사람들이 무엇을 먹으려고 할 때 쓰여지기보다 부정직한 행동을 구축하는 데 이용된다”고 지적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의 폐지 요청에 드라기 총재는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간단한 언급에 그쳤지만 ECB 내부에서는 비공식적으로 화폐 퇴출 결정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폐 발행과 폐지는 ECB의 독점적 권한이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EU)은 이달 초 500유로 추적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EU 경찰기구인 유로폴과 공조해 유로존 안에서 500유로 지폐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유통되는 곳을 중심으로 테러 등 범죄와의 연관성을 살펴보겠다는 것. 이는 정책 결정자들 사이에서 500유로 화폐가 정작 유로존 내에는 없고 주로 러시아에 가 있다는 불평이 나온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500유로 지폐 퇴출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유로폴의 롭 웨인라이트 국장은 “고액권 지폐가 범죄 및 테러리스트 집단에 의해 선택받은 화폐”라고 말해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500유로 지폐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큰 거래를 할 때 고액권 화폐를 사용하는 전통이 있는 독일에서는 정치적인 논란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독일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대중지 빌트는 500유로권 폐지를 저지하기 위해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내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실제 유통되는 지폐를 단시간내 없애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찮다. 지난 2002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해 현재 유로존 19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500유로 지폐는 전체 유로화 유통량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500유로 지폐는 2013년 875억 유로(약 119조원)어치가 발행됐는데 이는 룩셈부르크 GDP(국내총생산)의 2배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ECB가 마이너스금리 인하를 위해 500유로 지폐를 폐지하려 한다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고액권 현찰화폐 폐지가 마이너스 금리 제도를 보편화하는 수단이라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이다. 마이너스금리로 인해 은행 예금 이자까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초고액권을 없앨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최근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심화되는데다 초저금리 현상까지 겹치자 미국이나 유로존에서 고액권을 개인적으로 쟁여두면서 고액권 환수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지난해가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앤드루 홀데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현찰 화폐를 없애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보편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중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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