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재갑기자
  • 입력 2015.08.28 10:09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인이자 표절 논란이 된 소설집을 낸 창비의 대주주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27일 신경숙 표절 논란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백 교수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창비의 입장표명 이후'라는 글을 올리고, 계간지 '창작과 비평' 가을호(169호)에 백영서 편집주간의 이름으로 나간 글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앞서 백영서 편집주간은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신경숙의 해당 작품(전설)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랜 기간 창비가 침묵한 이유에 대해 "작가가 '의식적인 도둑질'을 했고 출판사는 돈 때문에 그런 도둑질을 비호한다고 단죄하는 분위기가 압도하는 판에서 창비가 어떤 언명을 하든 결국은 한 작가를 매도하는 분위기에 합류하거나 '상업주의로 타락한 문학권력'이란 비난을 키우는 딜레마를 피할 길이 없었기에 저희는 그동안 묵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다음은 백낙청 교수가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예고해드린 대로 “창작과비평" 가을호가 주초에 나왔고 ‘책머리에'를 통해 그동안의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에 대한 창비의 입장표명이 있었습니다. 잡지를 안 보시는 분들도 더 많이 읽으실 수 있도록 어제 발송된 “창비주간논평”에도 해당 대목이 게재되었습니다. 여기 링크합니다. http://weekly.changbi.com/?p=6412&c...

백영서 편집주간의 명의로 나간 이 글은 비록 제가 쓴 것은 아니지만 저도 논의과정에 참여했고 거기 표명된 입장을 지지한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표절시비 자체에 대해서는 신경숙 단편의 문제된 대목이 표절혐의를 받을 만한 유사성을 지닌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이것이 의도적인 베껴쓰기, 곧 작가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단정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애초에 표절혐의를 제기하면서 그것이 의식적인 절도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했던 일부 언론인과 상당수 문인들에게 창비의 이런 입장표명은 불만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불쾌한 도전행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그분들과 각을 세우기보다, 드러난 유사성에서 파렴치행위를 추정하는 분들이 그들 나름의 이유와 권리가 있듯이 우리 나름의 오랜 성찰과 토론 끝에 그러한 추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십사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게다가 이 사태가 처음 불거졌을 때와 달리 지금은 꽤 다양한 의견과 자료가 나와 있는 만큼, 모두가 좀더 차분하게 이 문제를 검토하고 검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반성과 성찰은 규탄받는 사람에게만 요구할 일은 아닐 테니까요.

이번호의 ‘긴급기획'은 그야말로 긴급하게 마련한 것에 불과하고 창비가 섭외했던 필자들 중 이미 다른 지면에 약속이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록된 석 점의 글만 보더라도 예의 현안들이 결코 단순치 않으며 한층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성격임을 짐작하기에 충분합니다. 세분 필자도 언급한 문학권력 및 문화권력 문제도 당연히 그중 하나입니다. 이는 엄격한 이론작업과 공들인 자료조사를 요하는 작업이기도 하지요. 또한 문학 및 예술의 창조과정에서 표절과 모방이 갖는 의미, 그리고 지적 재산권을 둘러싼 여러 문제 등, 그 어느 하나도 단기간에 쉽게 척결될 수 없는 성질입니다.

창비는 이들 문제를 힘닿는대로 끈질기게 다뤄나갈 것입니다. 편집위원들도 당연히 적극적으로 발언할 것이고요.

담론 차원과 별도로 창비가 내부 시스템을 점검하고 혁신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안 지킨다는 질타도 들립니다. 정작 저희는 내년의 계간지 창간 50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쇄신을 위한 준비를 일찍부터 해왔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하루 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염려하시는 외부인사들에게 내부에서 취한 조치를 일일이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저희가 아무것도 안했다고 단정하실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로 창비 또한 끊임없는 자기쇄신 없이는 오래 견디기 힘들다는 이치를 저희인들 아주 모르기야 하겠습니까.

끝으로 오랫동안 창비사업을 주도해온 사람으로서 그동안 창비를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희가 도저히 수용 못하는 주문도 있다고 해서 성찰과 발전을 다그치는 말씀의 무게를 저희가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8월 27일 백낙청 드림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