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왕진화 기자
  • 입력 2019.04.16 11:57

1991년 증여세 자진납부로 다른 기업인들로부터 핀잔 듣고 세무조사까지 받아

[뉴스웍스=왕진화 기자]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 16일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김 회장이 지난 50년 동안 걸어왔던 발자취를 더듬자, 성실과 정도의 길에 그의 잔향이 남아있었다.

우리나라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유일한 실습항해사였던 청년은 약 3년 만에 우리나라 최연소 선장이 됐다. 그리고 30대 중반에 창업한 회사는 어느덧 창립 50주년을 맞았고, 그를 포함해 3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활기업(동원그룹)과 증권기업(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1969년 8월, 동원의 최초 어선인 '제31동원호' 출어식에 참석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사진제공=동원그룹)
1969년 8월, 동원의 최초 어선인 '제31동원호' 출어식에 참석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사진제공=동원그룹)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원칙을 철저히 하며 정도경영을 추구한 기업인으로, '재계의 신사'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창업 후 50년의 세월 동안 성실하고 치열하게 기업경영에만 몰두했으며 정도경영의 길을 고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재철 회장의 50년 전 창업 당시 직접 만든 사시를 보면 그의 경영철학을 쉽게 알 수 있다. '성실한 기업활동으로 사회정의의 실현'. 그는 50년 동안 자신이 직접 만든 사시를 실현하기 위해 엄격하게 살아왔다. 또한 김 회장은 평소 '기업인이라면 흑자경영을 통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고용창출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기업인의 성실과 책임을 강조해왔다.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던 해에는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일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경영에만 전념했던 일화도 있다. 또한 1998년 IMF외환위기를 비롯해, 공채제도를 도입한 1984년 이후 한 해도 쉬지 않고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김재철 회장의 정도경영 원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바로 거액의 증여세 자진납부다. 김 회장은 1991년 장남 김남구 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62억 3800만원의 증여세를 자진 납부한 바 있다. 당시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추징하지 않고 자진 신고한 증여세로는 김재철의 62억 원이 사상 처음"이라고 언론에 밝혔고, 이 같은 소식은 주요 신문들에서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김 회장은 당시 증여세 자진납부로 인해 다른 기업인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고, 심지어 세무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국세청조차 차명 계좌를 통해 훨씬 많은 지분을 위장분산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세무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탈세사실이 전혀 없다는 것이 드러나 의심한 것 자체를 부끄럽게 했다고 한다. 

김 회장의 정도경영과 원칙은 본인의 자녀교육에도 마찬가지였다. 김 회장은 두 아들이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1주일에 적어도 한 권의 책을 읽고 A4 4~5장 분량의 독후감을 쓰도록 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통찰력이 생기고, 잘못된 정보에 속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어릴적부터 경영수업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이 대학을 마치자, 김 회장은 그를 북태평양 명태잡이 어선에 약 6개월 정도 태웠다. 또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은 입사 후 창원의 참치캔 제조공장에서 생산직과 청량리지역 영업사원 등 가장 바쁜 현장부터 경험시켰다. 두 아들은 모두 현장을 두루 경험한 후 11년이 넘어 임원으로 승진했다. 경영자가 현장을 모르면 안되며, 경험을 해봐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마음과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사진제공=동원그룹)
(사진제공=동원그룹)

회장에서 물러난 후 김 회장은 그룹 경영과 관련해 필요한 경우에만 그간 쌓아온 경륜을 살려 조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재계 원로로서 한국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방안도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 회장은 "그간 하지 못했던 일과 더불어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일도 해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 퇴진 이후 동원그룹 경영은 큰 틀에서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지주회사인 엔터프라이즈가 그룹의 전략과 방향을 잡을 것이며, 각 계열사는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독립경영을 하는 기존 경영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도체제와 관련해서도 차남인 김남정 부회장이 중심이 돼 경영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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