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19.04.17 09:23

A라인 쉬어도 노조 '허락'없인 B라인에 인력 투입 못해
생산성 무시한 고비용 유지로 90년이후 공장 신설 전무

생산절벽에 직면하는 국내 자동차 생태계는 활력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진=손진석 기자)
국내 자동차 생태계는 생산절벽에 직면한 상태다. (사진=손진석 기자)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작년 하반기에 이어 글로벌 자동차 수요는 2019년 1분기를 지나는 시점에도 여전히 2% 이하의 저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자동차 수요가 위축되는 가운데 중국 자동차 공급 확대, 전기차 등 미래차 위주로의 시장 재편 확산과 투자 확대, 4차 산업혁명 확산, 보호무역주의 대두 등으로 우리 자동차 업계의 위기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은 패러다임 변화에도 도무지 개선될 여지가 없는 '노조 리스크’ 때문에 새로운 성장동력 모색은 커녕 존립 기반마저 위협받는 처지다. 

자동차 수요의 '역성장'에서 탈출하고 점유율을 회복하려면 전동화, 친환경, 자율주행, 플랫폼 단순화 등 발 빠른 변화를 위해 집중적인 노력과 함께 연구개발비를 늘려야만한다.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일하는 노조와 회사의 일치단결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노조는 팔짱만 낀 채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5대 생산국은 옛 말

한국산 자동차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2013년 9.8%, 2014년 9.9%를 달성한뒤 2017년 8.3%, 작년 8.1%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1955년 국산차 최초 생산 후 2000년부터 세계 5대 생산국으로 도약했으나 2016년 이후 6위, 작년에는 7위 생산국으로 떨어졌다.

반면, 국내시장 수입차 점유율은 2014년 13.2%, 2016년 15.5%, 지난해는 16%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중국에 이어 인도, 멕시코 등 신흥국이 우리를 앞서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처럼 국내 자동차산업이 위축된 것은 고급차 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력 격차가 줄어들지 않은 가운데 우리의 주력 차종인 저부가가치 중소형차 시장에서 생산비용 증가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부가가치 신차와 함께 친환경차 등 미래차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규모가 작은데다 기술수준도 여전히 취약하다. 현대·기아차의 2017년 R&D 투자액은 4조1000여억원(37억 달러)로 독일 폭스바겐의 1/4, 일본 도요타의 2/5 수준에 그친다. 

매출액 대비 R&D 비중도 현대·기아차는 2.8% 수준으로 일본 도요타 3.6%, 독일 폭스바겐 5.7%, 미국 GM 5%보다 낮은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 차원의 R&D 지원정책이 약화되고 있으며 특히 대기업에 대한 R&D 지원 축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고임금, 저생산성, 노동경직성, 최고수준의 환경과 안전규제 등에 의해 우리 기업들이 경쟁사 대비 높은 비용을 부담하게 된 점에 기인하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유연성 결여한 국내 노동시장

2017년 국내 완성차 업계의 1인당 평균 연봉은 9072만원으로 일본 도요타 8390만원, 독일 폭스바겐 8303만원을 앞지른다. 매출액 대비 임금 비중도 현재 12.3%로 일본 도요타 5.9%, 독일 폭스바겐 10%에 비해 높다.

인건비가 높은데도 경쟁 업체 대비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이 큰 문제다. 현대차 국내공장 기준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일본 도요타, 미국 포드 보다 각각 11.2%, 25.8% 더 걸린다.

우리나라는 임금제도, 임금 교섭주기, 시간외 근로 임금 등 제도와 실제 측면에서 외국 경쟁국 대비 불리한 면이 상당히 많다.

그 중에서 우선 손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임금 교섭주기다. 우리는 1년인데 비해 외국 경쟁사는 노사교섭 관련 비용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3년에서 4년 주기로 교섭한다. 시간외 근로의 경우 한국은 초과, 야간, 휴일 각각 50%의 임금 가산금을 중복 적용하는데 반해 외국 경쟁사들은 할증률이 15~50%에 불과하고 중복 할증이 없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외국 경쟁업체들은 임금이 생산성을 반영토록 하고 있고 이를 통해 소비자의 계약 시기에 맞춰 최적기에 생산이 되도록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노동시장에서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노동유연성이다. 우리는 생산 공정 파견 근로가 사내 하도급 불법 파견으로 간주돼 불가능한데, 외국 경쟁업체는 외부 인력만 아니면 모두 허용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A라는 생산라인에서 필요한 인력보다 많은 인력 투입으로 유휴 인력이 있어도, 인력이 부족한 B 공정에서 일하라고 할 수 없다. 유휴인력을 인력이 부족한 곳에 투입하려면 사측이 노조에게 사정을 설명해 이해시켜야한다. 더욱이 노조가 동의하지 않으면 신차 배정에서 증산 혹은 감산도 할 수 없다.

이 부분이 최근 르노삼성차 노조가 임단협 협상을 미루면서까지 요구하고 있는 경영권 참여부분이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전환배치 및 교대제 변경, 신차 투입, 설비 투자, 공장 라인 간 생산 조정 등의 일반적 경영 의사 결정에 노조의 동의나 협의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회사의 신차 투입 시기, 물량 조정 등 유연한 생산 대응을 어렵게 해 경쟁력을 감소시키는 부분으로 외국 경쟁사들은 이러한 제약이 없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파업에 취약한 일괄공정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수인원만 파업해도 전체 공장 가동이 중단된다.

이러한 시스템 내에서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파업으로 이어지고 파업으로 회사의 손해가 발생한다. 이때 노조의 요구조건이 회사의 손해 발생 금액보다 작으면 회사가 양보해 노조의 조건을 수용하던 비합리적 관행이 반복되어 왔다. 일부 강성 노조는 회사와 협상이 안되면 정부와 협상을 시도하는 경향도 생겨나고 있다. 

파업 요건도 국내 기업은 노동조합원 1/2만 찬성하면 파업이 가능하다. 최근 ‘친구따라 장에 간다’ 대신 ‘동료따라 파업한다’고 할 만큼 노조는 파업을 글로벌 경쟁업체에 비해 쉽게 진행할 수 있다. 외국 업체의 경우 폭스바겐은 3/4, GM은 2/3 찬성 시 가능하며, 파업 시 대체 근로가 우리는 금지되어 있지만, 외국 경쟁사들은 대체 근로가 가능하다. 경쟁국 대비 가장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 맞춤형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임금수준과 구조, 노동 유연성이 요구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게다가 노동편향적 입법과 판결까지 증가하면서 그나마 갖고 있는 경쟁력마저 잃을 상황이다.

노조의 부분파업으로 멈춰선 르노삼성 부산공장 (사진=르노삼성자동차)
노조의 부분파업으로 멈춰선 르노삼성 부산공장 (사진=르노삼성자동차)

◆ 커지는 노조리스크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관련 파업이 7개월째 이어져 오며 지속적인 매출 손실을 보고 있다. 최근 ‘노조 리스크’에 빠져 있는 르노삼성차는 지난해 10월부터 54차례 218시간 노조의  파업으로 회사 측 집계 매출 손실이 2430억원이다. 노조는 17일과 19일에도 부분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 GM 노사도 장기 갈등을 이어오고 있으며, 중노위에 쟁의조정을 한 상태다. 노사는 신설 연구개발(R&D) 법인의 단체협약을 놓고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 GM 노조는 지난 3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고,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중지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GM은 지난해 12월 연구개발(R&D) 신설법인을 떼어내는 법인 분리안에 반발해 불법 파업을 진행한 이후 4개월여만에 파업 수순을 밟고 있다. 한국 GM은 군산공장 폐쇄 이후 반 토막 수준이던 내수 판매가 올해 1분기에 겨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노조 파업이 이어지면 겨우 살아난 불씨마저도 죽어버릴 위기에 놓이게 됐다.

현대차는 1974년 유가증권시장 상장 이후 처음으로 지난 해 별도 재무제표 기준 593억원의 영업손실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는 기아자동차 노사가 지난달 합의한 통상임금 미지급분 지급액인 1인당 평균 1900만원만큼 더 내놓으라는 요구 등을 내세워 임단협을 진행하겠다고 소식지에 발표했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1·2심 모두 노조가 승소한 기아차와 달리 현대차 노조는 패소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현대차 노조측은 기아차와 똑같이 통상임금 미지급금을 지급 해줄 것을 요구하며 ‘차별은 참을 수 없다’고 떼쓰고 있다. 또한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법적대응과 여론전 등 및 파업을 강행하자고 밝히고 있다.

기아차도 일부 노조 대의원이 미국전용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텔루라이드를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대립적 노사관계,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등에 따른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의 고착화로 인해 외국 경쟁업체에 비해 갈수록 생산경쟁력이 상실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자동차 생산업체 노조들은 조속한 타결보다는 장기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가뜩이나 ‘생산절벽’에 직면하고 있는 실정에서 대부분의 완성차업체 노조는 각종 이유를 내세우며 투쟁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올해 1분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 95만4908대에 그쳤다. 오랜 판매 부진과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 노조 리스크 등의 이유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비상상황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산업 종사자들은 1990년대 이후 국내에 자동차 공장이 지어지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봐야한다. 외국에 비해 경직화된 노사관계 지속으로 경쟁력을 잃어 국내에서는 더 이상 공장 가동으로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동차 산업은 지속적으로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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