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효영기자
  • 입력 2016.02.18 07:00

국내 대형마트들은 지난 2012년 4월 개정된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매월 공휴일 중 이틀 의무휴업을 해야 하고 오전 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받는다. 대형마트측은 “영업시간 제한 등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중소유통업과의 상생발전 등 규제로 달성하려는 공익은 중대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며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둘러싼 실효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법의 도입 취지는 대형마트에 비해 영업이 부진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서였지만 소비자들이 문 닫은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에 가기보다는 오히려 소비를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주차공간 부족, 카드 구매 어려움, 교환·환불 불편 등의 이유로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에서 물건 사기를 꺼리면서 실제로 전통 시장 매출은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했다.

◆전체 소비규모 줄고 납품업체·농어민 피해 입는 부작용 속출

무엇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규제’라는 비판이 높다.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주말에 가족단위로 쇼핑을 즐기는 인구가 많아졌는데도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 일변도로 접근했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효과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인해 1인당 연평균 소비지출액이 6만8000원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4년 추계가구(1845만8000가구) 기준으로 환산하면 1조2551억원의 소비지출이 줄어들었다. 반면 대형마트 규제로 인해 전통시장·소형 슈퍼마켓으로 전환된 소비는 월평균 448억~515억원에 그쳤다.

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납품업체와 농어민들, 대형마트내 입점 중소상인까지 피해를 입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지난해 대법원의 대형마트 의무휴업 소송을 담당했던 법무법인(김종필 변호사)에 따르면 마트 규제로 납품업자의 매출감소 피해액이 연간 1조6891억원에 달하고 이 중 농어민이나 중소협력업체의 손해액이 8700억원을 차지한다.

안승호 한국유통학회장은 올초 소비자단체 ‘컨슈머워치’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대형마트 영업규제로 소비자들은 아예 소비를 포기하게 됐고 이로인한 순 소비 감소액은 연간 2조원이 넘는다”고 지적했다. 대형마트 영업규제로 인한 소비 감소는 분기별 경제성장률이 전기보다 2% 이상 하락한 메르스사태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라는 설명이다.

이미 온라인이나 모바일 쇼핑 규모가 대형마트 시장 규모를 넘어선 마당에 대형마트 규제만으로 전통상권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판단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도 높다. 중국 광군제나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서 보듯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한 소비 시장에서는 국경이 사라졌다. 국내에서도 오프라인에 적용되는 강제휴업이나 거리제한 등의 규제로부터 사실상 ‘무풍지대’인 소셜커머스업체 쿠팡은 휴일 상관없이 24시간 내에 주문한 물품을 고객에게 배달하는 ‘로켓배송’ 서비스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정치권의 ‘표심’ 작용...총선 앞두고 추가 유통규제 움직임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된 때가 지난 2012년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면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추가적인 유통 규제 움직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안승호 유통학회장이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는 세수와 협력업체 매출이 감소하는 등 농어민과 다른 영세업자의 더 큰 피해를 유발하는데도 정치적으로 표를 얻기 위해 정부 정치권이 규제를 택했다”고 주장한 대로 골목상권 및 전통시장 보호는 ‘민심’, ‘표심’과 직결되는 만큼 총선을 앞둔 시점에 유통 규제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지난 11일 경제민주화 특별시를 선언하면서 ‘경제민주화 정책’이라는 초법적 규제안을 내놓았다. 이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서울에서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을 지으려는 사업자는 출점 계획을 세우는 시점부터 상생특별전담기구(TF)를 구성해 주변 지역 상인들과 상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시는 실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건축 허가 단계에서 직접 주변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착공 전에 규모조정 등을 요구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골목상권과 합의 없는 대형마트는 불허한다’는 요지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지역에서 공론화 시점을 앞당겨 상생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지자체의 조치에 민간업자가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과도한 권한 행사라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벌써부터 유통업계에서는 “골목상권 상인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요구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계에서도 골목상권 보호 명목으로 아울렛과 복합쇼핑몰도 대형마트처럼 영업시간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달초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이 사실상 대형마트와 유사한 영업형태를 보이고 있어 이를 제한하기 위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대형유통업계는 “복합쇼핑몰이나 아울렛에 입점해 영업중인 상인들도 중소 상인들인데 영업 시간을 제한할 경우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소 상인들은 “아울렛 인근 상인들 중에서는 식당, 카페 등 아울렛 자체와 겹치지 않는 업종만 ‘낙수효과’를 볼뿐 대부분 업종의 중소 상인들은 피해를 상쇄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중소기업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대형마트 영업제한으로 나타났던 전체 소비 감소, 입점 중소상인 역차별 등의 논란이 똑같이 불거지게 된다. 정치가 각 경제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대립각을 세우도록 부추긴다는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진국 규제완화에서 배워야

대형마트 규제 찬성파들은 프랑스 등 선진국의 출점 규제를 표본으로 삼는다. 그러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말 ‘프랑스 유통업규제 변화 및 국내유통정책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출점규제를 실시하는 프랑스조차도 최근 출점허가기준을 완화하고 일요일 영업을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는 1973년 소규모 점포 보호를 위해 매장면적 3000㎡ 이상인 점포를 열 때 정부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하고 출점가능지역도 제한했다. 1996년에는 300㎡이상 모든 점포를 대상으로 규제를 더 강화했다. 그러나 300㎡ 이하 초소형할인점이 독일계 체인점을 중심으로 급증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더욱이 독일계 유통업체인 ALDI는 2003년 프랑스의 규제가 불합리하다며 유럽연합(EU)위원회에 제소했다. 결국 프랑스는 지난 2008년 출점 시 허가가 필요한 매장면적을 인구 2만명이 넘는 지자체에서 1000㎡로 상향조정했다.

프랑스는 또 지난 1906년부터 근로자의 과잉노동 금지 등을 이유로 100여년동안 실시해온 일요일 영업제한 조치도 지난해 5월 풀어버렸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일요일 영업을 하지 않는 프랑스 대신 영국 등으로 쇼핑장소를 옮기자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경연은 “프랑스 유통업의 규제완화 사례는 소비자 니즈가 있다면 신업태의 등장을 막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우리나라도 무조건적인 규제보다 소매유통업자를 보호하는 대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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