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기념일 역사는?… '불의에 항거한' 민중의 목소리
4·19 혁명 기념일 역사는?… '불의에 항거한' 민중의 목소리
  • 남빛하늘 기자
  • 승인 2019.04.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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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캡처)
(사진=KBS 캡처)

[뉴스웍스=남빛하늘 기자] 오늘(19일)은 제59주년 4·19 혁명 기념일이다.

4·19 혁명은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으로 불의에 정면으로 도전했던 우리 민중의 역사다. '불의에 항거한'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4·19 혁명의 정의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1948년부터 발췌개헌 및 사사오입 개헌 등 각종 꼼수로 12년간 독재 장기집권 해왔다. 이승만은 6·25 전쟁 이후 미국이 주는 잉여 생산물에만 의존해 농촌 경제를 파탄냈다. 도시로 몰린 실업자는 130만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런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이 이미 고조돼 있던 상태에서 여당인 자유당은 1959년 3월부터 부정선거를 치를 계획을 세운다.

4·19혁명의 불씨는 같은 해 2월 28일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자유당은 애초 계획했던 부정선거를 성공시키기 위해 일요일에 학생들을 학교에 출석하게 했다. 이는 민주당 후보 장면의 선거연설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 이에 경북·대구·경북여고 학생들은 "신성한 학원을 정치 도구화 하지 말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 20여 명이 다치고, 200여 명이 연행됐다.

이후 '제4대 정·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던 3월 15일, 자유당은 결국 부정선거를 자행한다. 이들은 야당참관인 축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등으로 자유당 이승만 정후보와 이기붕 부후보를 당선시켰다.

이에 분노한 마산 시민과 학생들은 선거 당일 저녁부터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승만 정권은 총칼을 앞세우며 강제 진압에 나섰다. 이때 많은 시민이 정부에 의해 폭력을 당했다.

특히 시위 당시 사라졌던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학생이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떠오르며 끓어 오르던 민중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와 함께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3000명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돌아가던 중 '반공청년당'이라는 정치깡패 조직에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불씨는 더욱 커졌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국민들은 다음날인 4월 19일 이른 아침부터 전국적인 시위를 펼쳤다. 시위대는 이승만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 앞까지 진격했고, 경찰은 이곳에서 총을 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21명이 죽고 172명이 다쳤다.

당시 이승만 정권은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독재타도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졌다.

결국 이승만은 4월 26일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그해 5월 미국으로 망명을 떠난다. 이후 1960년 의원내각제 장면 내각이 출범했고 이승만은 1965년 하와이 망명생활 중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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