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05.02 16:20

한국당 끝내 반대하면 국회선진화법으로 추경안 국회 처리 사실상 불가능
여야, 민생외면 비판 감안해 8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이후 본격 협의할듯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반(反)헌법 패스트트랙 7일간 저지투쟁'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반(反)헌법 패스트트랙 7일간 저지투쟁' 기자회견에서 "미세먼지·산불·포항지진 등 재해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은 국회가 막혀 있어도 하겠다. 그러나 재해추경이 분리되지 않으면 논의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원내대변인은 2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한국당이 민심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며 "국회 본관 앞에서 김태흠 의원 등 한국당 5명이 삭발식을 감행한데 이어 황교안, 나경원 지도부는 서울역 광장 등에서 거리투쟁에 나섰다"고 질타했다. 이어 "툭하면 개혁 입법에 딴지를 거는 한국당의 행태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음에도, 한국당은 '좌파독재' 운운하며 장외 투쟁을 더욱 가속화 하고 있다"면서 "엄중한 민심을 똑바로 읽었다면 장외 투쟁을 고집할 게 아니라 국회에서 추경 처리 및 탄력근로제, 최저임금 개편 등 시급한 민생현안 해결에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특히 "추경은 국회에 제출된 지 일주일을 지나고 있다"며 "한국당의 추경 발목잡기가 길어질수록, 미세먼지 해결과 강원 산불 및 포항 지진 복구대책 수립은 물론 한국당이 관심있는 경제 활력 제고도 기약 없이 미뤄짐을 명심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나 원내대표가 '미세먼지·산불·포항지진 등과 관련된 재해 추경'을 다른 사안과 분리해준다면 여당의 추경안을 받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른바, 국민들의 '민생경제 살리기'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여권에 대해서는 압박을 하는 양수겹장의 묘수로 해석된다.

이에앞서 정부는 지난 25일 6조 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국회는 국무총리로부터 시정연설을 청취한 뒤 기획재정·행정안전위원회 등 12개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 본회의 의결 등의 처리 절차를 밟게 된다. 그러나 여야4당이 한국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선거제·공수처법 패스트트랙'을 지정하면서 양측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라서 추경안의 국회 통과는 불투명한 상태다.

한국당이 끝내 추경안 통과를 저지하고 나선다면 여야4당으로서는 별다른 방책이 없어 보인다. 이는 '국회 선진화법'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이란, 국회의장 직권 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를 통한 법안 처리를 금지하도록 한 법안이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과 국회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2012년 5월 2일,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도입됐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의 경우나 교섭단체 대표와의 합의가 있을 때만 국회의장이 법률안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수 있다. 또한,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본회의에서 무제한의 토론(필리버스터)을 할 수 있다. 아울러,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없는 한 회기 종료 때까지 토론을 이어갈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국회 내 다수당이라 하더라도 의석수가 180석에 미치지 못하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의 강행 처리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나 원내대표의 '재해추경 분리'발언의 속내는 사실상 여당인 민주당에게 '패스트트랙 지정과 관련해 사과하지 않는 한, 국회 정상화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혀진다.

이로인해 난감해진 것은 민주당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이 같은 상황을 미리 예측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사법개혁법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세우는 아주 중요한 법이다. 선거법 문제는 한국당을 포함해 다른 당과 진지하게 논의해 좋은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아니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강원도 산불피해 종합복구계획 당정협의'에서 "추경안이 통과돼야 소방헬기 등 산불 진화 장비를 마련할 수 있다"며 "야당과도 적극적으로 논의해 빠른 시일 내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이에 대해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반(反)헌법 패스트트랙 7일간 저지투쟁' 기자회견에서 "국회를 파국으로 만들고 말도 안 되는 패스트트랙으로 우리를 겁박하면서 이제 와서 민생 추경을 얘기한다"고 일갈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정조준 해 "정책기조 안 바꾸고 추경으로 경제 살릴 수 있다고 하나"라며 "선거용 추경일 뿐이다. 정책기조 바꾸시라. 진정성 없는 이야기하지 마시라. 민생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쏘아 붙였다. 이에 더해 "추경 이야기하시기 전에 대통령 사과해주시라"며 "그리고 여당, 범여권 4당 패스트트랙 철회하고 사과하시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런 가운데, 오는 8일에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이 치러진다. 정치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8일까지는 민주당은 한국당에 대해 원론적인 문호개방만 얘기하고, 한국당은 장외투쟁에 주력하다가 결국 8일 민주당의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되면 의미있는 협상이 그때부터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민주당도 한국당도 민생을 방기한 채, 정쟁에 몰입하는 모양새로는 국민들로부터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므로 결국 민주당의 신임 원내대표 선출을 기점으로 추경 관련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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