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재갑기자
  • 입력 2015.09.01 10:24

한국의 대학들은 생존경쟁에 돌입해 있다. 존폐의 기로에 선 대학이 한두 곳이 아니다. 대학에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벌써 문을 닫은 대학이 나왔다. 앞으로 이런 대학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제 대학불사시대(大學不死時代)는 끝났다.

전국의 대학은 4년제 199개와 전문대 138개를 합쳐 337개나 된다. 학령인구에 비춰보면 양적으로 너무 대학이 많다. 학령인구가 급속히 감소하면서 대학이 정원 감축과 구조조정에 직면한 건 당연하다.

국내 고교 졸업자 수는 지난 2013년 63만1000여명에서 2023년 39만7000여명으로 10년 동안 37%나 줄었다. 2030년에는 그 수가 더욱 줄어 현재의 절반 정도밖에는 안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계산해도 정원 감축과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의 대학들은 그동안 양적으로 엄청나게 팽창했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했다. 국제 경쟁력이 형편없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계속됐다. 단적인 예로 세계 50대 대학은 서울대 한 곳뿐이다.

이렇게 된 것은 정부 탓도 크다. 정부는 1996년부터 대학설립 기준을 ‘허가제’에서 기본 요건만 갖추면 대학설립을 허용하는 ‘준칙주의’로 변경했다. 그 결과 대학이 무분별하게 설립됐고, 대학 교육의 질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어제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 평가결과를 공개했다. 2023년까지 정원 16만명을 줄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내년부터 일반대와 전문대 66곳에 대한 재정지원이 제한되고 정원감축도 추진된다.

교육부는 전국의 대학을 A~E 5등급으로 나눠 최상위 51곳을 제외한 대학들에 2년간 정원을 최소 4%(B등급)에서 최대 15%(E등급)까지 감축하라고 통보했다. 이 같은 조치를 따르지 않는 대학은 연간 수 백 억 원씩 배분되는 재정지원 사업에서 빼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4만7000명을 줄인 뒤 두 번 더 감축해 목표를 채운다는 방침이다.

이번 평가의 핵심은 하위 등급인 D(53개)·E(13개) 66곳에 대한 제재다. 제재의 핵심은 역시 대학에 지원하는 돈줄을 끊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지원에 연명하고 있는 경쟁력 없는 대학을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D등급을 받은 대학은 신규재정 지원과 국가장학금·학자금 융자가 제한된다. E등급은 사실상 퇴출 선고를 내렸다. 국고는 물론 신입생 장학금과 학자금 융자를 전면 중단한다. 여기에 해당된 대학들은 ‘부실’ 낙인이 찍혀 당장 9일 시작되는 수시모집부터 타격을 받는다.

교육부의 이번 대학구조개혁평가를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당장 국립대학인 강원대의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사퇴하고 집단 반발에 나섰다. 다른 대학들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 대학들은 행정소송과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재학생과 졸업생, 지역사회까지 나서서 교육부의 대학평가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재평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교육부가 ‘지방대 죽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지역거점 국립대인 강원대를 비롯해 고려대, 건국대, 홍익대의 지방캠퍼스 등 지방 대학 대부분이 하위등급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내 대학의 하위그룹 비율을 보면 전국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다. 평가대상인 도내 17개교(일반 8개교, 전문 9개교) 중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포함된 곳은 47.1%(8개교)다. 전국 22.8%(66개교)의 2배가 넘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번 교육부의 평가결과가 상식적으로 봐도 균형감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평가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하겠다며, 이번에는 정량평가에 정성평가를 대폭 반영했다. 하지만 공개된 평가결과에서는 되레 이것이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독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의 일방적 대학구조개혁에 문제점이 적지 않다. 대학의 자율성을 무시했고,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개혁을 강제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교육부가 대학 경쟁력 강화보다는 솎아내기에 치중한다는 우려도 있다. 또 교육부가 대학개혁에 나설 명분과 자격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제 대학불사시대(大學不死時代)는 끝났다는 점이다. 대학이 학문적 가치와 자율성을 지키려면 적극적으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정부도 통제보다는 지원에 역점을 둬야 한다. 대학의 위기는 국가 사회의 위기로 직결된다. 우리 모두 이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