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05.09 15:19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선거'에서 경선에 나선 이인영(왼쪽 두번째)·노웅래·김태년 의원. (사진= 원성훈 기자)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선거'에서 경선에 나선 이인영(왼쪽 두번째)·노웅래·김태년 의원. (사진=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집권 초기만해도 80%에 육박하는 국정수행 지지율을 보였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3년차를 맞아 50% 내외로 떨어졌다. 과거 정권과 비교하면 아직도 비교적 높은 지지율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40%~52% 사이의 박스권에 갇혀있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집권 친문세력'에 대해 국민들이 내린 가감없는 점수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한때 어지간한 정치인들이라면 너도나도 "내가 바로 친문이다"를 외치며 앞 다퉈 자신이 친문세력의 일원으로 각인되기를 원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회주변에서 자신이 친문의 일원임을 드러내놓고 강조하는 정치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문'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인영 의원이 당선됐다. 이인영 의원은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약칭,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이다. 친문세력의 일원이 아닌 민평련(민주평화국민연대)계로 분류되는 이 의원이 친문 주류 일각의 지지를 포함해 당내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어 상당한 표 차이(76:49)로 김태년 의원을 누르고 민주당의 신임 원내대표로 올라섰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인영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의 의미를 '친문 퇴조의 신호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인영 의원이 '친문 실세'이자 당 주류의 지원을 받았던 김태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친문세력의 결속력이 예전처럼 견고하지 않음을 증명해주었다는 분석에 따른 해석이다. 아울러, 더 이상 친문세력이 당내 최대주주가 아님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의원의 당선으로 민주당내 역학구도는 상당 부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당정청 관계가 '당 중심으로 전환되는 과정'이 추진될 전망이다. 이는 지난 4월 21일 그가 민주당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할 때의 발언으로도 확인된다. 그는 "당의 주도성을 높이고 당정청 관계를 빈틈없이 조율하겠다"며 "의원들의 집단생각에 철저히 근거하고, 지도부가 아니라 상임위 위주의 컨센서스 형성을 분명히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그동안 민주당에 대해 "사소한 것조차 당이 결정하지 못하고 청와대의 눈치를 살핀다"거나 "민주당이 청와대의 국회출장소냐"라고 비아냥거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 신임 원내대표가 야당들의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화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내년 4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이해찬 대표와 어떤 식의 관계설정을 하고 조화를 이뤄 총선 대비체제를 꾸리게될지도 관심사다. 사실상 내년 총선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자 민주당의 행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라는 성격을 동시에 지녔다. 그가 이해찬 대표 및 당내 친문세력과의 원만한 관계설정에 성공하게된다면 민주당의 총선대비체제는 순항하게 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민주당이 내홍에 휩싸이게 되면서 자유한국당에게 기회를 제공하게된다.

이 원내대표에게는 당장 더 골치아픈 숙제가 있다. '선거제·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형성된 한국당과의 극단적인 냉전기류를 풀어가야할 책무가 주어졌다. 이 부분은 의외로 잘 풀려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 원내대표의 당선을 계기로 한국당은 그동안의 '20대 국회 보이콧' 기류에서 출구전략을 모색했고, 이 원내대표도 '패스트트랙 문제'를 원만히 풀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지난 8일 김현아 원내대변인이 이인영 원내대표의 당선에 대한 논평에서 "더 이상의 시행착오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면서도 "민주당은 책임 있는 여당으로 돌아와 야당과 함께 국회를 정상화 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는 한국당이 이 원내대표의 당선을 계기로 국회 정상화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원내대표도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생긴 갈등을 어떻게 치유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정성껏, 예의 바르게 해법을 찾는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볼 때 조만간 민주당과 한국당은 국회정상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 나서게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이 원내대표의 당선이 친문세력의 '정점'으로 거론되는 이해찬 대표 체제의 힘을 약화시키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해찬 대표가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에서 대표를 맡고 있던 시절 김태년 의원이 그의 비서실장을 했을 정도로 이 대표와 김태년 의원의 사이는 돈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당내 친문세력의 '반란표'가 없이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이인영 의원의 76표 획득'이라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이 대표의 리더십도 크게 상처를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 나아가 '청와대의 약발'도 이제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섣부른 판단도 솔솔 풍겨온다. 76표라는 숫자는 이 의원을 평소에 지지해 온 민평련계 및 속칭 '부엉이 모임'의 표는 단단히 결속된 채 이탈표가 없고 친문세력의 상당수가 이 의원에게 '반란표'를 던져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당내의 비주류로 평가되던 민평련계와 '부엉이 모임' 측이 이 원내대표의 당선으로 일약 '신주류'로 부상하면서 '친문세력'들이 장악했던 정치적 기류에도 상당한 변화를 미치게될 지 아니면, 기존 친문세력이 좀 더 몸집을 불린 '더 커진 우리'가 되는데 성공, 기존 정치·정책 기조를 연장하게될 지는 이 원내대표의 향후 행보에 따라 크게 영향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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