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준영 기자
  • 입력 2019.05.28 15:01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이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 도입'에 대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박준영 기자)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이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 도입'에 대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박준영 기자)

[뉴스웍스=박준영 기자]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분류에 대해 법률적·정책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주제 발표를 맡은 임 회장은 "이번에 의결된 ICD-11이 바로 효력을 발휘해 한국에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게임중독' 내지 '게임이용장애' 문제가 산업계 등 각 분야 초미의 관심이니 만큼, 이후 한국에서 KCD-8 개정되는 과정에서 어떤 형식으로 국내법에 도입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소위 '신의진법' 등 게임을 마약이나 알코올 등과 함께 '중독'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치료의 대상으로 삼는 강력한 입법을 시도해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과거 사례를 비추어볼 때 이번 WHO의 의결을 계기로 강성 법률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갈등도 심화할 수 있다"라며 우려했다.

WHO 의결의 문제점과 법률적·정책적 문제점도 검토했다. 우리나라 헌법 제9조에 따르면 문화의 영역에 있어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할 것은 선언하고 있으며 국가에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또한 헌법은 문화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정신적 기본권으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을 규정하고 있는바 개별성·고유성·다양성으로 표현되는 문화는 사회의 자율영역을 바탕으로 한다고 할 것이고, 이들 기본권은 견해와 사상의 다양헝을 그 본질로 하는 문화국가 원리의 불가결의 조건이라고 임 회장은 강조했다.

임 회장은 "엘리트 문화뿐 아니라 서민문화, 대중문화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국가의 정책적인 배려의 대상으로 해야 한다"라며 "게임은 산업이기 전에 아주 오래 전부터 국민이 즐기는 대표적인 '놀이'의 하나다. 헌법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의 생활양식과 이를 형성하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조성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헌법 제10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헌법은 국가가 개인이 스스로 개성을 자유롭게 발현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것을 전제하고 있으며, 개개 국민이 일반적인 행동의 주체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다양한 인격을 만들어 가는 것을 인정한다.

임 회장은 "만일 게임 과몰입을 '중독'이라는 질병의 틀에 넣고 국가의 보호대상이나 후견 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 이념에 배치되는 것"이라며 "제도의 섣부른 도입보다는 개인이 게임이라는 여가활동 내지 직업 활동을 선택하는 것을 존중하고 다소 활동이 과잉되는 모습이 나타나더라도 스스로 치유방법을 찾고 다시 게임 문화에 피드백되는 자율적인 조정 기능을 기다리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주장했다.

WHO의 의결에도 문제가 많았다. 이번 의결은 치료 대상이 되는 '게임'을 '디지털 게임과 비디오 게임'으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게임과 비디오 게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치료 대상이 되는 기준 행위가 무엇인지 등이 불분명하다.

WHO가 의결의 근거로 가장 많이 쓰는 지표는 IAT다. IAT는 1998년 영이라는 학자가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 이는 인터넷 중독 여부를 진단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인터넷에서 게임으로 범위가 좁혀졌음에도 IAT를 기준으로 제시함으로써 중독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점을 임 회장은 문제로 삼았다.

임 회장은 "WHO 역시 질병으로서 중독을 판단하는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판단을 의식했는지,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대신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려 했고, 각 국가에서 자율적으로 기준을 설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라며 "게임중독이라는 '질병'을 인정하는 데 있어 판단 기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원성훈 기자)
한국게임산업협회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의실에서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원성훈 기자)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의 침해 가능성도 언급했다.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은 국가의 활동은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하는 내용의 법 원리로 '비례원칙'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헌법상 법치주의 원리와 헌법 제87조 제2항 등에서 근거를 가진다.

이번 WHO에 의해 추진되는 게임의 질병 인정, 국내법에의 적용 움직임을 헌법상 비례원칙에 따라 검토하면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는 것이 임 회장의 지적이다.

담당 부서인 보건복지부도 이번 결정으로 추후에 치료 대상이 되는 게이머는 전체 게임인구의 1~2% 정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게임과몰입을 하나의 질병으로 분류해야 하는지 국가의 개입이 필요할 정도로 부작용이 큰지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현재 게임인구가 국민의 절반 이상으로 집계되는 상황에서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과잉입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디지털' 혹은 '게임'의 정의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합의도 없는 상황에서 '중독'이나 '자제력', '지속성' 등을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규제의 범위가 1~2%가 아니라 훨씬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임 회장은 "교육적 게임이나 게이미피케이션 영역,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VR, AR, AI 등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이 확대될 위험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게임 과몰입과 관련해 기존의 게임산업법에서 건전한 게임문화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 진행 중이다. 기존 규제의 적용 및 확대를 통해 법적 규제가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에도 새로운 규제를 신설하는 것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에 대한 '최소침해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임 회장은 주장했다.

임 회장은 "질병으로 분류해 치료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중독성 환자 특히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강한 거부감을 고려할 때 자칫 개인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기록을 남길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헌법상 경제적 자유의 침해 가능성도 제시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콘텐츠 수출액 중 게임은 75억 달러로 과반(56.6%)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방탄소년단(BTS) 등 케이팝으로 대표되는 음악(6.8%)보다 8배 이상 큰 수치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12월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WHO 결정으로 우리나라가 2022년부터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취급하면 게임 산업이 위축돼 향후 3년간 11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임 회장은 "WHO의 게임에 대한 질병분류는 자칫 특정 인터넷게임이나 비디오게임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으며, 국내 사업자와 해외 사업자 간 차별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우리나라에서 게임 산업에 대한 불편한 선입견을 바탕으로 각종 규제를 앞다퉈 도입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한 임 회장은 "국내에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규제가 꼭 필요한 것인지, 다른 덜 위험한 방법이 없는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라며 "당사자뿐 아니라 게임산업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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