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05.31 16:35
멀리 국회의사당 본관이 보인다. (사진= 원성훈 기자)
멀리 국회의사당 본관이 보인다. (사진=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국회의원의 세비와 특권을 줄이더라도 의원 정수를 일부라도 늘려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국민이 전체의 60%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7일에 전국 19세 이상 성인 7,329명에게 접촉해 최종 502명이 응답을 완료, 6.8%의 응답률(응답률 제고 목적 표집틀 확정 후 미수신 조사대상 3회 콜백)을 보인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다. 리얼미터는 tbs의 의뢰로 조사했다.

선거제도 개혁의 목적과 국회의원의 세비와 특권을 대폭 감축하는 전제로, 의원 정수를 일부 늘리는 데 대한 조사에서 '반대'(매우 반대 37.2%, 반대하는 편 22.7%) 응답이 10명 중 6명인 59.9%로 집계된 것이다. '찬성'(매우 찬성 16.1%, 찬성하는 편 18.0%) 응답은 34.1%로 '반대'에 비해 큰 격차로 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모름/무응답'은 6.0%.

이 조사는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전화걸기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했다. 통계보정은 2018년 7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성, 연령, 권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으로 이뤄졌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이다.

한마디로,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을 상당히 불신하고 있고, 국회의원들이 별로 하는 일도 없이 고액의 세비와 상당한 특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야당들도 국민들의 이런 정서를 인식해 지난 4월 30일 지정된 '선거제·공수처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 속에도 현행 의원정수 300명은 그대로 유지한 채, 현행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을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국회의석 수를 줄이면 안 된다'고 강변하면서 심지어 '국회의석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거는 국회의원 수를 줄이면 '행정 및 사법부 견제를 비롯한 예산 심의와 감독에 있어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는 것'과 '해외 공관, 자치단체, 각종 공공기관 등에 대한 감사 등의 문제가 어려워진다는 것' 그리고 재벌 및 이익단체들이 줄어든 국회의원을 상대로 훨씬 수월한 로비전을 펼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 등이다. 이에 더해 '소수에게 권력 집중이 심화되므로 이에 따른 특권 강화의 폐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이 더 거센 모양새다. '언제 국회의원 수가 부족해서 일을 못했나, 일은 하지않고 정쟁만 일삼았기 때문이지'라는 생각을 가진 국민이 적잖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몇십명 줄인다고 하더라도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풍토만 조성된다면 의원 수는 현재도 차고 넘친다는 반론이 만만찮다. 또한, 현행 300명의 의원에서 30명 정도 의석수를 줄이더라도 사실상 재벌 및 이익단체들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훨씬 더 손쉽게 로비할 수 있을 정도의 숫자로 의석 수가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300명이 100명 이하 정도로 줄어드는 '현저한 의석 감소'가 아닌 한, 로비가 쉬워진다거나 소수에게 권력 집중이 심화된다거나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인식이 우세한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는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는 것이 과연 타당성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비례대표 의원을 두는 원래의 목적은 지역구 국회의원들만으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직능별 대표성'을 보완한다는 것이었지만, 적잖은 국민들의 눈에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직능대표'로 생각되기보다는  '특별한 전문성도 없이, 단지 유력 정치인들과 선이 닿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운 좋게 의원이 된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여기에다가 교묘한 방법으로 정치헌금을 한 덕분에 의원 배지를 단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조경태 최고위원은 "지난 28일 한국외식업중앙회장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꼭 주셔야 한다'며 비례대표 의석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며 "지금 대한민국의 비례대표는 이런 식의 매관매직의 대상으로 지금 전락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나라의 비례대표의 역사적 유례는 유정회에서부터 비롯됐다"며 "그동안 이 비례대표는 그 정당의 또는 그 정권의 거수기 노릇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금의 비례대표는 지역구 출마를 위한 발판으로 삼고 있다"면서 "여러분들께서 조사해보면 아시겠지만, 비례대표들이 80% 이상이 아마도, 거의 9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지역구 출마를 고려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유권자수 대비 국회의원을 환산해서 계산하면,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수는 87명이 된다. 그리고 100번 양보해서 일본의 유권자 수 대비 국회의원 수로 환산해 보면 194명이면 된다"며 "그런데 지금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300명"이라고 적시했다.

실제로 지난 5월 24일 한국당의 민경욱 대변인은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기존 비례대표 의석을 없애고 지역구 의석만 270석으로 하여 국회의원 전체 수를 10% 줄이는 자유한국당 안'에 관해 물은 결과 60%가 찬성했고, 25%가 반대했으며, 15%는 의견을 유보했다는 결과 발표를 토대로 "국민이 반대하는 선거법 개정안, 그래도 밀어붙일 것이냐"며 "300이면 충분하다. 이보다 적으면 더 좋다는 것이 오늘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국민의 목소리"라고 강조했다.

민 대변인이 인용한 '한국갤럽 여론조사'는 지난 5월 21~23일 전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된 것이다. 이 조사에선 '지역구 의석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 국회의원 전체 수를 현행 300석보다 늘리는 방안'에 대해 찬반 의견을 물은 결과 찬성은 17%에 그친 반면, 반대는 72%에 달했고 11%는 의견을 유보한 결과가 나왔다. 즉, 72%에 달하는 국민들이 비례대표를 늘려서 의원정수를 확대하는 방안에 반대하고 있다는 결과다.

한국갤럽의 이번 조사는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표본을 무작위 추출(집전화 RDD 15% 포함)해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3.1%포인트(95% 신뢰수준), 응답률은 15%(총 통화 6,489명 중 1,001명 응답 완료)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하면 된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의 의원정수 축소 움직임에 눈길이 간다. 지난해 4월초 마크롱 프랑스 정부는 2020년 총선 이전에 상·하원의원 정원을 30% 감축하기로 하는 개혁(하원의원은 557명에서 404명으로, 상원의원은 348명에서 243명으로 조정하는 개혁안)을 추진했던 이유를 우리 정치권도 곰곰히 새겨봐야 할 것이다. 또한, 6·7대 국회때 국회의원 정수는 5대의 291석에서 크게 줄어든 175명으로 정해졌으나, 국회운영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음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