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2.22 15:00
중국의 대표적인 신 세대 은막 스타 장쯔이(章子怡)가 주연한 영화의 포스터. 그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이른바 '바링허우'의 중국 신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요새 미국에선 버니 샌더슨이 돌풍이다. 미국 민주당 첫 경선인 아이오아 코커스에 이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 이르기까지 그를 지지해주고 있는 젊은 지지층이 있다. 바로 미국의 밀레니엄 세대라고 한다.

밀레니엄 세대라는 말은 1980년 이후 출생해 2000년대 들어 성인이 된 사람들을 일컫는다.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이들을 베이비부머 세대라 하고 1960~1980년생들을 X세대라 칭한다.

골드만삭스에서는 전통세대(1933~1945년), 베이비붐세대(1946~1964년), X세대(1965-1976년)에 이어 다음 세대를 Y세대로 규정하면서 노동력을 분류한다. 이 Y세대가 바로 밀레니엄 세대(Millennial Generation)를 칭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N세대(The Net Generation)또는 에코세대(Echo Boomers), 에코부머라고도 한다. 중국에도 이 밀레니엄 세대를 일컫는 말이 있다. 바로 1980년 이후 출생자들이라는 표현인 ‘바링허우(80後)’다.

원래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문단 작가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점차 1980년 이후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 바링허우들에게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1980년 접어들어 중국은 엄격한 계획 출산을 실행하면서 대부분 바링허우들은 독자다. 그리고 이들은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변화를 겪지 않았다. 1950~1970년대 출생한 이들이 문화대혁명과 각종 지방으로의 전출 등 시련을 겪었지만 이들은 개혁개방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엇보다 풍부한 교육을 받으면서 안정적이며 발전적인 분위기 아래서 자랐다.

그들은 또한 모든 집안에서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행복한 세대(幸福的一代人)’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인구분포로 보았을 적에 바링허우는 대략 2.28억명, 전체 인구의 약 16%를 차지한다.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인구(1990-2000년)는 이들보다 적은 1.74억명, 2000년 이후 출생한 인구는 1.26억명에 달한다. 중국 사회 과학원자료중 李春玲씨가 쓴 < 내륙의 바링허우 세대:경우와 태도>라는 리포트 중 바링허우가 자신들에 대해 평가한 내용의 글이 있다.

當我們讀小學的時候,讀大學不要錢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대학은 무료였지)

當我們讀大學的時 候,讀小學不要錢 (대학 다닐 때가 되니 초등학교가 무료가 되었습니다).

我們還沒能工作的時候,工作是分配的 (우리가 아직 일할 수 없던 때 직업은 국가가 줬지만)

我們可以工作的 時候,撞得頭破血流才勉強找份餓不死人的工作做

(우리가 일할 수 있는 시절이 되자 서로 머리 피 튀겨 경쟁하면서 굶어 죽지 않을 만한 일을 간신히 찾게 되었습니다.)

當我們不能掙錢的時候,房子是分配的 (우리가 돈을 벌기 전에 집은 나라에서 배당해주었지만.)

當我們能掙錢的時候,卻發現房子已經買不起了 (우리가 돈을 벌게 되자 집값이 너무 비싸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當我們不到結婚的年齡的時候 騎單車就能娶媳婦 (우리가 결혼 적령이 아닌 시절에는 자전거만 탈 수 있으면 결혼할 수 있었지만)

當我們到了結婚年齡的時候,沒有洋房汽車娶不了媳婦 (우리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적에는 서양식 집과 자동차가 없으면 결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當我們沒找工作的時候,小學生也能當領導的 (우리가 직업을 갖기 전에는 초등학교 나와도 지도자가 될 수 있었지만)

當我們找 工作的時候,大學生也只能洗廁所 (우리가 직업을 갖게 되었을 때 대학생은 화장실 청소만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바링허우가 급격한 대 도시화 과정 속에서 겪고 있는 취업난, 주택난, 결혼난 등을 말하고 있다. 이는 바로 우리의 젊은이들의 현실로서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많은 글이다.

이들은 지금 이미 3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사회 초년생에서 중년 간부로 성장해 변화하는 중이다. 중국내 이들 바링허우가 겪어온 여러 가지 환경을 많은 드라마가 다루고 있다. 지난 번 설명한 워쥐(蝸居: 달팽이 집) 등도 이들을 묘사하고 있다.

바링허우가 이렇게 많은 어려움과 경쟁을 겪었음에도 이들의 대학 졸업율은 높았으며, 또한 유학열도 높았다. Center for China and Globalization이 2015년 유학에서 돌아온 학생들을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1978~2014년까지 중국에서 외국으로 유학 간 학생이 351만 명에 이르고 귀국한 이는 약 180만 명에 이른다.

최근 들어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바링허우는 더 늘어나는 추세다. 2011년에는 18만 명, 2012년은 27만 명, 2013년은 35만 명, 2014년은 36만 명에 달했고, 2015년은 약 50만명에 이르리라는 추정이다.

2010년 이래 귀국하는 많은 유학생들은 바로 이들 바링허우다. 바링허우로서 기업 CEO에 오르는 이들도 부쩍 늘고 있다. Discus CEO 였던 다이즈캉(戴志康), 디디다처(嘀嘀打車)의 청웨이(程維), 게임 Majoy의 창업자 마오칸칸(茅侃侃) 등 IT업계에도 많이 포진해 있다.

그 뿐 아니다 스포츠 업계에서는 농구의 야오밍(姚明), 육상의 허들 스타 류샹(劉翔), 영화배우 장쯔이(章子怡) 등 바링허우 유명인들이 각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주(潮州)인들과 장사를 한 지 어느새 이미 24년이 흘렀다. 장사 시작 초기만 해도 카운터파트들은 대부분 1950년~1965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바링허우는 당시 10대 초반에 불과 했다. 그러나 이들이 20대 초반에 들어서자 대부분 호주 영국 등지로 유학을 떠났고 다시 귀국한 게 2000년대 초반이었다.

지금가지 ‘감’에 의지해 장사했던 1950~1960년대 출생 부모들에게 이들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사회적인 관시(關係)와는 거리가 먼 신세대로만 보였다. 그러나 2010년경부터 이들은 부모 세대를 대신해 구매 미팅 현장에 나섰으며, 앞 세대가 지니고 있던 외국어 장벽에서 자유로웠다. 아울러 SNS를 통한 소통을 선호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 바링허우 세대가 점차 무대의 전면으로 나서 중국 비즈니스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바링허우는 중국 중앙정부의 一帶一路(일대일로: 육상과 해상에 걸친 새로운 실크로드) , ‘2025년 중국제조(中國制造)’ 등의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서 실무의 주역으로서 더욱더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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