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6.07 18:30

약산 김원봉이 촉발 기제가 되어 정계가 또 다시 대립의 광풍에 휘말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6일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김원봉을 언급하며 보수나 진보의 이념과 무관하게 모든 애국을 존경하고 좌우 이념의 적대에서 탈피하자는 추념사를 한 것에 대해 일부 야당과 보수 세력이 문제 삼으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논란을 의식해 청와대가 빠르게 대통령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노력을 강조하며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통합으로 가자는 취지에서 역사적 예를 든 것이라며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필두로 하는 보수 세력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 파괴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번 논란의 정과 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김원봉의 어떠한 측면이 논란의 계기가 되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원봉은 일제의 강점시절 의열단이라는 무장단체의 단장을 시작으로 조선의용대 대장, 광복군 부사령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이자 군무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초기부터 사회주의 이념을 지향하여 독립운동 당시에도 임시정부와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분단 이후 월북하여 북한체제에서 요직을 차지했다는 사실 때문에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런 사실들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단편적이고 표면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과거의 인물인 김원봉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제반 사정을 참조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

우선 김원봉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립투사로서 확고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의열단 단장 당시 김원봉에게 일제가 내건 현상금은 현재가치 320억 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돈이었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일제가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양비론이 될지 모르겠지만 독립투사로서 위대한 가치를 지닌 김원봉이 친북적 태도로 인해 위인으로서 가치가 훼손된다면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들도 해방 후 반공의 기치를 내세운 경우 반민족적 친일 행위가 용서될 수 있다는 논리가 될 것이다.

또한 김원봉이 처음부터 월북을 한 것이 아니라 해방 직후에는 미군정 체제의 남한에서 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함께 남북 좌우합작을 추진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함께 좌우합작을 도모하던 여운형이 암살되는 것을 목격했고, 친일경찰의 상징이던 노덕술에게 온갖 모욕과 고문을 당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김원봉은 남쪽에서 자신의 소신을 달성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월북을 택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김원봉은 김일성에게 숙청됐으며, 북한의 대남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가 공표한 것처럼 북한은 김원봉과 광복군을 우파 무장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친북이라는 이념으로 거부하고 있는 인물이 정작 북한에서는 반공인사로 규정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김원봉에 대한 평가는 보다 신중하고 구체적으로 조사를 통해 내려져야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현충일 추념식 추념사의 내용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과거 보수 진영의 발전 공로를 치하하고, 5.16 쿠데타의 주역인 채명신 장군까지 언급하며 더 이상 보수와 진보의 이념 구분 없이 발전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자는 의도가 전체 맥락에서 충분하게 이해된다. 그리고 일각에서 우려하는 김원봉의 서훈 문제 역시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규정대로 진행해 결정될 것을 명백하게 밝혔다. 그런데도 단순히 김원봉을 거론한 것이 '친북'이고 심지어 차명진 전 의원은 '빨갱이'라는 표현을 운운하며 매도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려는 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전 국민 몇 백만이 본 영화와 드라마 몇 편에서 다루어진 김원봉은 모두 국민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선전 수단이라는 것인가.

김원봉을 언급한 이번 대통령의 추념사는 전체 맥락에서 오해의 여지를 남겼거나 명확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는 사안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상기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 추념사에 대한 오해의 여지는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김원봉에 대한 서훈이 이루어진 것도, 섣부른 판단이 내려진 것도 없다. 오히려 더욱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대통령 추념사의 원래 취지처럼 더 이상 의미 없는 소모적 비난을 멈추고 좌우 이념 논리가 아닌 국가 전체의 밝은 미래를 위해 정치권이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이재무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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