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2.22 17:14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실패한 뒤 다시 재기하지 못했던 수나라 양제의 모습이다. '철마'라는 단어는 그의 잠을 잘 못 이루던 황후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1950년 6월25일 발발한 전쟁, 우리는 아직 마음속에 그 아픔과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 그 전쟁으로 남북의 철도가 끊겼고 한반도 동맥을 잇던 기차들도 반도의 중부에 만들어진 비무장지대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강원도 철원에는 그 아픔을 상징하듯 녹슨 기관차가 60년 동안 운행을 멈춘 채 서 있다. 언론은 그를 보고 “철마(鐵馬)는 달리고 싶다”라는 카피를 만들어 민족의 분단을 생생하게 그렸다.

기차를 철마로 지칭한 것은 기관차나 전차(tank)를 일컫는 영어 ‘iron horse’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지금은 국어사전에도 ‘쇠로 만든 말, 즉 기차를 가리킨다’라고 나와 있다. 요즘 철도노조의 전면적인 파업으로 기차 운행이 크게 줄어들자 각 신문들도 ‘철마는 멈출 수 없다’ 식의 칼럼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철마는 그냥 우리가 아는 그 철마가 아니다. 원래의 뜻은 둘이다. 우선은 철갑을 두른 말, 즉 전장에서 펄펄 뛰며 공격을 주도하는 그런 말이다. 얇은 철갑으로 겉을 둘러 적진을 공격할 때 다치지 않도록 무장한 말이다. 다음은 풍경(風磬)이다. 절의 처마 밑에 걸려 있어 바람에 따라 은은한 소리를 내는 그런 풍경이다.

전쟁터를 누비는 철마의 뜻은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일찌감치 그런 중무장의 말이 전쟁을 누볐고, 중국의 고전은 그를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둘째의 의미가 문제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를 침공했던 수(隋)나라 양제(煬帝)와 관련이 있다.

양제의 황후에게는 묘한 습관이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를 들어야 잠을 이룬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나무가 모두 말라죽은 뒤에 문제가 생겼다. 황후가 잠을 못 이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양제가 옥으로 용(龍) 여러 개를 만들어 처마에 걸었다고 한다. 그 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의 소리를 닮았던가 보다. 황후가 쉬이 잠에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민간은 그를 흉내 내고자 했으나 감히 황제를 상징하는 용을 만들지 못하고 유리와 비슷한 물질로 각종 형상을 제작해 소리를 냈는데, 처마에 건 그 모습이 마치 전쟁터의 말과 흡사해 보였기에 ‘鐵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우리 사전에도 등장하는 풍경의 다른 이름인 ‘첨마(檐馬)’에 왜 ‘馬’라는 글자가 들어가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나중에 중국의 문인들이 이를 두고 바람에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뜻의 ‘풍금(風琴)’ ‘풍쟁(風箏)’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풍경의 별명은 그 말고도 ‘풍탁(風鐸)’ ‘풍령(風鈴)’ 등이 있다. 아름다운 이름들이지만 벌판을 달리는 쇠로 만든 말, 우리가 현재 사용 중인 철마와는 상관이 없다.

그래도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그 기차에 우리는 ‘철마’라는 이름을 달았고, 쉼 없이 달리며 일반 대중의 발이 되어주는 요즘의 ‘철마’에도 우리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절에 걸려 있는 풍경은 늘 깨어있는 수행자의 상징이라고 한다. 공익(公益)을 우선시해야 하는 코레일의 직원 모두 그런 수행자와 다를 게 없다. 대한민국 국민의 발인 철마와 그가 내닫는 철로(鐵路)가 하루 빨리 정상화하기를 바랄 뿐이다.

 

<한자 풀이>

鐵(쇠 철), 馬(말)

磬(경쇠 경): 고대 중국에서 돌로 만들었던 악기다. 편경(編磬)이라고도 하는데 돌판을 쇠로 두드려 소리 내는 악기다. 다양한 두께와 크기의 돌판을 만들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도록 했다. 편경과 함께 편종(編鐘)이 있다.

檐(처마 첨): 옛 가옥의 처마. ‘처마’라는 말이 첨하(檐下)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중국어&성어>

铁马(鐵馬) tiě mǎ: ‘기차’ 또는 ‘기관차’라는 뜻은 중국에 없다. 철갑을 두른 전쟁터의 말, 절 등에 걸려 있는 풍경을 이른다.

铁马金戈 tiě mǎ jīn gē: 위무가 당당한 군대와 또는 그 사병. 전쟁과 군사(軍事)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风筝(風箏) fēng zhēng: 본문의 風箏은 바람에 소리를 내는 아쟁(악기 이름)이라는 뜻. 그러나 이 단어는 요즘 중국어에서는 바람 부는 날에 날리는 연(鳶)이다. 춘추시대 이미 군사적 용도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飞(飛)檐走壁 fēi yán zǒu bì: 무협지 등에 많이 등장하는 성어다. 처마(檐)에 날아오르고(飛), 벽(壁) 위를 걸어 다닌다(走)는 뜻이다. 몸을 가볍게 해 높은 곳을 자유롭게 다닌다는, 이른바 경공(輕功)의 하나다. 그야말로 무협지 식의 과장, 실제 따라 하려 애쓸 필요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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