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06.24 14:15
김해국제공항 내부. (사진출처= 김해국제공항 홈페이지 캡처)
김해국제공항 내부. (사진출처=김해국제공항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미 확립된 정책을 뒤집을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몇몇 민감한 사항에 대해 잇따라 '재검토' 에 가까운 행보를 보이면서 당정이 고유한 정체성을 저버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 계산에 따른 '약속 위반'으로 대국민 신뢰도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게 된 상황이다. 최근 불거진 김해신공항 확장사업, 자사고 폐지, 4대강 보(洑) 해체 얘기다.

김해신공항 문제부터 보자. 지난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LS용산타워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산·울산·경상남도 시도지사들과 동남권 신공항 관련 면담을 한 후, 김해신공항 확장사업의 적정성 문제를 총리실에서 재검토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친문'이 총선에서 PK(부산·경남)를 교두보로 안고 가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친문의 적자'인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로, 이후 차기 대통령선거까지도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17년 대선 직전에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면서 '신문(新文)'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24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와 북방경제협력: 해양수도 부산과 동남권 관문공항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강연회에서 "관문공항 건설에 대한 지역민들의 이해도를 제고하고, 나아가 수도권을 비롯한 전 국민적지지 여론 확산에 본격적인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동남권 관문공항(가덕도 신공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송 의원의 이런 행보는 '문심(文心)'을 읽은 결과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앞서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동남권 신공항을 두고 지역 간 입장 차이가 크다"며 "그러나 지역이기주의가 아닌 국가 전체의 이익과 국토 균형발전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피력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북방경제 영토의 확장을 위해서도 부울경 지역의 역할은 필수적"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동남권신공항 문제에 관한 한, 당사자 격인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 20일 국토부와 부울경 지자체장의 합의 직후 "다음 주 월요일(24일) 부산에 가서 '해양수도 부산' 및 동남권 관문공항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 문재인 정부의 북방경제협력 전략에 대해 설명 드리는 자리를 갖는다"며 "이 자리를 통해 부산경남 지역의 생생한 민심도 듣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송영길 의원과 궤를 같이하는 발언이다. 즉, 동남권신공항을 추진하는 명분으로 '범 친문'의 주요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의 북방경제협력 전략'과의 연계성을 강조하면서 '동남권 신공항의 재추진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정책 번복 가능성이 커지자 TK(대구·경북)지역 인사들은 극렬히 반발하고 있는 모양새다.

24일 대구시에 따르면, 오는 27일 인도네시아로 출발할 예정이던 권영진 대구시장은 출장을 전격 취소하고 김해신공항 문제 협의를 위해 국무총리실을 방문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21일 경북 구미에서 지역 경제인을 비롯 기관단체장 등 180여 명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구경북 경제동향보고회에서 "통합 신공항 건설은 경북과 대구에 가장 큰 역사에 남는 일"이라며 "오랜 논란 끝에 영남권 5개 시·도가 합의하고 세계적인 전문기관의 용역을 거쳐 결정된 국책사업이 변경되거나 무산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을 비롯한 대구·경북발전협의회 소속의 21명의 의원들은 21일 오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도 재검증을 요구하면 그때마다 총리실이 다 들어주고 재검증에 나설 것이냐"며 "정치 논리로 뒤집히는 정책이 적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대한애국당 조원진 공동대표는 지난 23일 낸 성명에서 "문재인 정권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손바닥 뒤집듯 하더니 이제는 내년 총선을 위해 국가정책을 함부로 뒤집는 추악한 정치 술수를 부리고 있다"힐난했다. 이어 "지난 보궐선거 때 창원에서 후보도 내지 못할 정도로 국민 분노에 직면한 더불어민주당이 김경수 일병을 살리고, 내년 총선에서 경남 표를 얻기 위해 국가정책을 뒤집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친문'과 대척점에 서있는 조원진 애국당 공동대표는 민주당의 이런 행보를 내년 총선의 표심을 얻기위한 행보임은 물론이고, 김경수 경남지사를 살려내기 위한 일환으로 평가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심지어는 민주당 김부겸 의원과 홍의락 의원까지 가세해 "5개 광역단체장의 합의를 존중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다. 2016년 6월 국토부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계획을 발표하면서 가덕도와 밀양 두 곳 중에서 입지를 고심하다 김해공항에 활주로 1개를 더 넣는 김해신공항 안을 확정한 바 있다. 당시 공정성 문제의 논란을 피하고자 ADPi(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에 용역을 맡겨 객관적으로 검토한 끝에 내린 이 같은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자율형사립고 폐지 방침에도 변화의 기류를 보였다. 전북교육청이 지난 20일 상산고가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커트라인(80점)에 0.39점 못 미치는 79.61점을 받아 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에 정세균 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전북 출신 여야 국회의원 10여명이 21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청와대와 교육부는 자사고 지정취소에 '부동의'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24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설립 취지와 맞지 않게 운영되는 자사고는 고교서열화, 일반고 황폐화의 원인 중 하나이므로, 운영 성과 평가를 거쳐서 지정을 취소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자사고 지정취소를 놓고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총선에서의 득표'와 무관치 않은 행보라는 관측이다. 일각에선 "특정지역 학부모들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행보로밖에 볼 수 없다"면 "원칙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총선에서의 득표만 눈에 들어오는가 보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4대강 세종보 철거도 이와 마찬가지로 갈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비난이 나온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4일 조명래 환경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에 대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비록 이 대표 측은 "원론적 얘기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역시 총선을 의식해 보 철거를 보류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한 핵심인사는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모든 게 '기승전 총선승리'라는 절대절명의 과제 앞에서 나타나는 원칙 파괴현상이 아니겠느냐"며 "여야를 불문하고 총선에서 승리해야만 그 다음이 있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어 "단기적으로 유리해 보여서 선택한 선택지가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총선 승리에서 독(毒)이 될 수도 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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