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19.06.30 07:05

낮은 가격으로 버스 등 상용차시장에서 지자체 보조금 혜택 '독식'

북경자동차가 내년 국내 출시 예정인 EU5 승용전기차 모델 (사진=손진석 기자)
북경자동차가 내년 국내에서 출시할 예정인 EU5 승용전기차 모델. 기사내용과 사진은 관계없음. (사진=손진석 기자)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지난 2015년 디젤게이트와 매년 강화되고 있는 환경규제로 탈 내연기관 선언과 함께 그간 전기차 시장에 적극적이지 않던 유럽 자동차 브랜드들이 새로운 전기차 모델들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공세가 대단하다.

2016년부터 중국 정부는 자국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외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은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 그러나 3세대 전기차 시대를 앞두고 더 이상 보호정책을 유지할 경우 경쟁력 퇴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중국 정부는 보조금 정책을 2021년부터 폐지할 예정이다.

이러한 중국 현지 사정 변화로 인해 그동안 보조금 혜택에 의존해왔던 중국 전기차 관련 기업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그 중 일부 자본력과 제품 기술력이 충분한 업체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아직도 초기시장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에 대한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 최고 기술의 배터리 제작사인 LG화학과 삼성 SDI 등을 보유한 한국이 중국보다 기술력에서 우세한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국내에 진출하기 시작한 중국 업체의 국내 산업에 대한 침투는 무서울 정도다.

국내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준다. 중국 브랜드의 전기차 등록대수는 2017년 26대에서 지난해 286대로 약 11배 이상 증가했다. 그 중 220여대는 승용차로 중국의 썬롱(sunlong)사에서 제작하고 국내 업체 쎄미시스코가 판매했다. 또 승합차 60여대는 BYD 버스를 포함한 4종의 EV가 등록됐다.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 브랜드는 아직까지 미미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저렴한 가격과 긴 주행거리, 다양한 디자인, 높아진 품질 등을 앞세워 점차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중국 업체는 자국산 제품이 국내 소비자의 선입견으로 판매가 쉽지 않다고 판단되자 최근 우회 진출과 부품 판매 및 중국산 부품 수입 후 우리나라에서 조립해 ‘메이드 인 코리아’를 획득해 한국산으로 판매하는 등의 다양한 영업적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최근 국내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고 있거나 예정인 업체는 중국 완쌍그룹, 쑹궈모터스, 상용 전기차 회사 나노스와 최근 군산공장을 인수해 사업을 시작한 명신과 합작하고 있는 퓨처 모빌리티, 체리자동차 등이다.

중국의 완쌍그룹은 지난해부터 국내 법무법인 율촌을 통해 한국의 부품업체 인수를 추진 중에 있다. 쑹궈모터스는 국내 건원건설과 합작해 SNK 모터스를 설립해 새만금 산업단지에 연산 10만대 규모 전기차 반조립 공장을 설립한다.

중국 상용 전기차 회사인 나노스는 체리자동차와 새만금 산업단지에 연간 5만대 규모의 전기차 조립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또 최근 이목을 집중 받은 명신도 중국 업체와 합작해 한국GM 군산공장을 인수해 2021년부터 연간 5만대 규모의 전기차를 조립 생산한다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중국 업체는 국내 연구시설을 설치하기보다는 중국에서 생산한 부품을 반제품 형태로 수입해 조립·판매하는 방식으로 국내에 진출하기 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전방산업에 비해 후방산업 ,즉 애프터마켓에서 국내 전기차 관련 부품 및 완제품 업체들과 네트워킹을 통해 더욱 발 빠른 시장 장악력도 보여주고 있다.

2015년 체결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당시에는 중국 부품의 경쟁력에 대한 검증없이 주요 자동차 부품의 관세를 즉시 철폐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산 부품의 경쟁력은 급격히 커져 중국산 부품 수입이 지난 5월까지 12.4% 증가했다. 반면 한국 부품의 중국 수출은 23.4% 감소됐다.

서울시내를 운행 중인 전기버스 (사진=손진석 기자)
서울시내에서 운행 중인 현대차 전기버스. (사진=손진석 기자)

또 다른 중국 전기차 업체의 한국 진출 분야는 버스, 지게차, 공장청소차, 쓰레기 수거차량 등 B2B 제품군과 상용 전기차 사업으로 국내 업체보다 앞선 가격 경쟁력으로 보조금 혜택을 독식하기 시작했다.

버스, 화물차, 특수차 등에 대한 국내 전기차 시장은 그동안 친환경차의 사각지대였다. 환경 규제와 더불어 시장 형성되고 있는 상용 전기차 시장을 정부와 국내 기업들이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사이에 중국 기업들이 어느새 자리를 잡고 경쟁력 우위를 보이고 있다.

국내 상용 전기차 산업은 시작하는 단계부터 중국과 가격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해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단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친환경 버스의 국내 보급을 늘리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마다 디젤 시내버스를 전기 버스로 변경하는 사업에서 국산 전기 버스들은 중국산 모델보다 비싼 가격 때문에 선택받지 못하고 있다. 전기버스를 생산하는 업체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전기버스를 저렴하게 도입하는 부분에만 관심이 있지 정작 국내 산업을 살리기 위한 상생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지적했다.

소형 상용 자동차도 국내 개발 생산 보다는 중국에서 수입한 부품을 조립해 판매하는 방식의 제품들이 가격적인 측면에서 경쟁력이 높다. 또 초소형 전기차 부분에서도 중국 기업의 한국 투자와 합작 등으로 국내 시장 확보를 꾀하고 있다.

국내 중소형 상용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는 업체 중 일부는 전기차 부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조립 후 디자인만 변경해 생산하고 있다. 현재 관련 산업의 집계가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모빌리티 제품군, 전기오토바이 등 부분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제품의 내구성능 등을 무시한채 전방위적으로 국내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이로인해 국내 스타트업 기업 등의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군산공장 등 각종 일자리 문제로 정부와 일부 지자체에서는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국산 부품을 모터와 배터리 등 핵심 부품 일부 사용이나 중국산 반제품 수입 후 조립만 한다는 계획 아래 진행되는 이러한 사업들이 단순 조립 공정형태로로 이뤄진다면 결국 산업의 발전이 없이 중국 기술과 자본력에 종속되는 구조로 고착될 수 있다.

지난해 세계 10대 전기차 판매 회사 중 5곳이 중국 업체지만, 이들 업체는 대부분 자국 시장에서 소비되는만큼 신뢰할만한 지표로 삼을 수는 없다.  미국이나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전기차의 판매는 미미한 상황이다.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실력을 제대로 검증받지 못한 중국 전기차업체와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 기업이 손잡았다가 자칫 사업 실패로 이어질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전기차 관련 부품을 중국에서 수입해 국내 조립공장에서 완제품을 만들면 상표만 한국산이지 제품 자체는 중국산”이라며 “중국산 부품 수입이 늘어날수록 기술력이 낮은 한국 중소부품사들은 코너로 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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