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2.23 18:07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본능에 가깝다. 따라서 학습은 즐겁고 편한 분위기에서 이뤄져야 바람직할지 모른다. 강압적이며 억지식의 학습은 역효과를 부를 수 있는 법이다.

공자는 세 사람이 동행하면 그 중에는 반드시 배울 만한 스승이 있다고 했다. 황당하다. 친구 셋이 그냥 재밌게 놀면 안 되는가? 어디서든 꼭 배워야 한다는 건 강박이고, 남을 가르쳐야 한다는 건 꼰대의식이다. 그렇다. 공자는 어쩌면 강박이 풍년이요, 꼰대의식은 만발한 꼴통이다. 이런 광기어린 헛소리를 금과옥조로 받아 외워 가르치고, 기를 쓰며 배우려는 우리 도 꼴통이기는 매한가지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르치기와 배우기가 문화적인 행동이며 인간만이 이룬 위대한 문명의 산물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아프리카 아카 피그미 족의 행동을 관찰한 인류학자 휴렛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문명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중요한 본성”이라 했다. 가르치는 것이 본능이라면 배움도 본능이다. 그렇게 본능이니 가르치기나 배우기는 자연스러운 본성이자 생리작용이다. 왜 나는 이런 본능에 딴지 걸어 꼴통이라 매도하는가? 이 또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유동물은 놀이를 한다. 아니 놀이를 통해 배운다. 그래서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을 쓴 호이징하는 놀이란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라고 역설했다. 휴렛과 호이징하는 가르침과 배움이란 인간만이 이룬 위대한 문명이 아니라 포유동물이라면 개, 고양이에서 저 바다의 고래까지 놀이를 통해 즐기는 일이라 한다.

휴렛 교수도 아카 피그미족은 틈만 나면 단순한 놀이를 통해서 도구의 사용법을 가르치며 아이들도 놀이의 40% 이상을 어른이 가르쳐 준 것에서 익힌다고 한다. 달리 말해 아이들 놀이의 60%는 순수한 놀기라는 것이다. 아니 나눌 수 없는 100%가 모두 놀이이자 동시에 배움이라 해야 한다.

배우기가 즐거운 건 놀기라는 문화 안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가 아름다운 것은 몸에서 우러나온 놀이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배우려고 노는 게 아니라 놀이 자체가 바로 배우기이고 가르치기다. 하지만 이리도 간단한 진리를 잊고 우리는 놀이와 가르치고 배우기를 인위적으로 나누면서부터 억지춘향의 꼴통으로 변한다.

식욕, 성욕, 수면욕 그리고 소변 대변에 대한 배설욕은 본능이다. 개나 고양이도 아무 데서나 먹고, 자고, 똥오줌 싸지 않는다. 인간의 문명이란 바로 본능을 문화적으로 승화하려는 노력이기에 문화는 아름답다. 가르침과 배움도 본능이기에 섹스나 배설과 다를 바 없다. 문화적인 승화가 필요하다. 놀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본능은 쾌락과 이어져 있다. 본능은 생존과 이어지기에 쾌락을 통해 저절로 그걸 하게 만든다. 가르침과 배움은 인간 생존을 위해 필요하기에 식사나 배변 또는 섹스와 마찬가지로 쾌락을 가져온다. 하지만 우리 문화는 쾌락의 직접적인 표현을 금기시한다. 문화적으로 승화한 쾌락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가르치고 배우기가 주는 본능적인 쾌락을 문화나 도덕으로 착각한다. 때문에 더 위험하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베푸는 가르침이나 배움은 결코 아름다운 게 아니다. 그저 문화적으로 승화하지 못한 쾌락 추구일 뿐이다. 도덕이란 허울을 쓴 채 공공연한 장소에서 배변을 하는 일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아름다운 행위라도 아무 데서나 무분별하면 추한 본능일 뿐 아니겠는가?

우리는 여기저기서 가르침을 듣는다. 지하철 벽에 붙은 포스터부터 늙은이들의 연설까지 거리에 가득하다. 술집에서는 나라를 걱정한다는 우국지사들이 되도 않는 애국을 외친다. TV에서는 소위 선각자나 정치가라는 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계몽을 토해낸다. 배움의 욕구 또한 마찬가지다. 배우려는 자세는 아름답다며 어디서든 배우려 한다. 좋은 말이라며 여기저기서 퍼 날라 와서 감동을 강요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르침의 거부는 오만이고, 배움의 거부는 불경(不敬)이다. 한마디로 쓰레기 취급이다.

도시는 오물 구덩이다. 여기저기에 가르침과 배움, 더러운 욕망과 내 질러놓은 배설물로 가득하다. 곳곳이 가르침과 배움을 빌미로 서로를 능욕하는 몸짓과 조루, 방뇨 그리고 배변으로 악취가 가득하다. 가르침이나 배움 방지용 콘돔이 기다려지는 대목이다.

마려워도, 꼴려도 좀 참고 놀이라는 문명의 장소인 화장실을 이용하자. 우리가 흘리지 말 것은 눈물이나 오줌만이 아니다. 가르침도 배움도 흘리지 말아야 하기에 변기에 한 발 다가서는 모습이 아름답다. 이게 바로 이 문명 속을 살아가는 문화인의 참 모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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