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06.27 14:48

권정근 외무성 국장,"북남간 교류와 물밑대화? 그런 것 하나도 없다"
美에 '온전한 대안' 요구하며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해야한다고 강조

북한 인공기.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북한이 북미 정상의 친서 교환으로 대화 재개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우리 정부의 중재·촉진자 역할을 부인하고 개입 여지까지 차단하며 대남비판 공세에 나섰다. 미·북 대화을 중재하고 촉진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상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27일  "우리가 미국에 연락할 것이 있으면 조·미(북·미) 사이에 이미 전부터 가동되고있는 연락 통로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라며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앉아 하게 되는 것 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미국과 대화를 하자고 하여도 협상 자세가 제대로 되여 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야 하며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는 내용 등이 담긴 권정근 국장 개인 명의 ‘담화’가 발표됐다고 이날 보도했다.

권 국장은 "조·미관계를 '중재'하는듯이 여론화하면서 몸값을 올려보려 하는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며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말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 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권 국장은 "지금 남조선 당국자들은 저들도 한판 끼여 무엇인가 크게 하고있는 듯한 냄새를 피우면서 제 설자리를 찾아보려고 북남 사이에도 여전히 다양한 경로로 그 무슨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듯한 여론을 내돌리고 있다"고 남한정부를 비판했다.

이러면서 그는 "남조선 당국자들이 지금 북남 사이에 다양한 교류와 물밑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며 26일 공개된 서면인터뷰에서 이런 움직임을 전한 문재인 대통령까지 공격했다. 한술 더 떠 권 국장은  "조·미관계는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와 미국 대통령 사이의 친분관계에 기초하여 나가고 있다. 남조선 당국은 제집의 일이나 똑바로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북미 협상 과정에서 남측의 도움을 받을 일은 없으며, 현재 남북 당국 차원의 대화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발언은 4·27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미 정상의 ‘공동 여정’으로 진행돼온 한반도 평화 과정의 근본 흐름에 대한 공개적 반박이자 부인으로 해석된다. 

권 국장은 이날 담화에서 미국에 적대 행위 중단을 요구하면서, 협상 재개를 원한다면 '새로운 셈법'을 갖고 나오라고 촉구했다. 그는 "최근 미국이 말로는 조·미대화를 운운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우리를 반대하는 적대행위들을 그 어느 때보다 가증스럽게 감행하고 있다"며 "미국이 쌍방의 이해 관계에 다같이 부합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화 재개를 앵무새처럼 외워댄다고 하여 조·미대화가 저절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은 동지께서 이미 역사적인 시정연설에서 천명하신바와 같이 조·미대화가 열리자면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지금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있을 작정이라면 시간이 충분할지는 몰라도 결과물을 내기 위해 움직이자면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는 못할 것"이라며 "미국은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러면서 그는 "미국과 대화를 하자고 하여도 협상자세가 제대로 되여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야 하며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발언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부터 미국이 채택했던 입장을 수정하는 것은 물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대북 강경론자들의 교체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앞서 26일엔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을 “대조선 적대감이 골수에 찬 정책작성자”이라 비난하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된바 있다. 

권 국장이 협상 재개에 필요한 ‘3가지’ 요건으로 협상 자세, 말이 통하는 사람, 온전한 대안을 제시한 것도 주목된다. 이에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오후 공개된 통신사 합동 서면인터뷰에서 “남북 간에도 다양한 경로로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담화는 북한의 입장 발표 형식 가운데 언론매체 기자와의 문답보다는 수위가 높고, 성명보다는 한 단계 수위가 낮다. 하노이 정상회담 뒤 권정근 미국 담당 국장은 지난 4월 18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을 하는 형식으로 대미 메시지를 냈던 적은 있지만, 담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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