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19.06.28 05:30

"총수 때려야 얻는다"며 고공농성 마다 안해...'反삼성' 정서에 호소
국회·정부도 규제 강화로 대기업 옥죄기...시민단체도 때리기 가세
재벌개혁은 공정한 경제 질서를 세우는 것, 이재용 겨냥 지양해야

(사진출처=YTN 뉴스 캡처)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 설치된 철탑에는 '국정농단 범죄자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출처=YTN 뉴스 캡처)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삼성그룹에 복직을 요구하는 해고노동자가 얼마전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서 기습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철탑에는 '국정농단 범죄자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철탑에 오른 이는 삼성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소속 김모씨다. 올해 61세인 그는 1982년 창원공단 삼성항공(현 한화테크윈)에 입사해 24년간 근무했으나 노동조합 활동 중 부당하게 해고됐다며 원직 복직을 주장하고 있다.

10여년도 지나서 그가 정년을 불과 며칠 앞두고 복직을 요구하게 된데는 반 삼성 정서에 호소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총수를 때려야 얻는다"는 심정에서다. 이처럼 반기업 정서는 삼성의 발목을 잡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검찰은 내달 중순 이후 배임 혐의를 적용해 이 부회장을 소환,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규명하는 데서 더 나아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정까지 수사를 확대하며 무차별적인 삼성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반도체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숨가쁜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국정농단 사건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 수사 등에 발목을 잡히며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요즘 수사를 보면 정부가 삼성을 끌어내리고 이재용 부회장을 다시 감옥에 보내는 걸 경제민주화의 척도로 여기는 것 같다"라며 "특정 기업과 오너에 대한 집중적인 수사로 반기업 정서가 더욱 팽배해지면서 기업들의 투자 심리도 위축될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국내에 팽배한 잘못된 선입견이 기업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낙수효과 무용론과 기업이 전체 소득 중 가계 몫을 빼앗는다는 인식이 국민 전반에 퍼져 있고,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대기업의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려는 국회·정부의 움직임이 계속됐다.

(자료제공=한국경제연구원)
20대 국회 발의 상법 개정안 주요내용. (자료제공=한국경제연구원)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상법 개정안이 47개 계류됐는데, 이 중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36개로 대다수를 차지해 기업지배구조 관련 논의가 규제 강화에 치중된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4월 법무부도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집중투표는 자산 2조원 이상의 대규모 회사에 대해 의무화하고,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1명 이상을 분리선임하는 방안, 전자투표제는 상장사에 대해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러한 제도들은 해외 다른 국가에 도입하지 않거나 소수 국가만 도입하는 제도로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거리가 있다.

반면 대주주의 경영권 보호장치는 없다. 섀도보팅 폐지로 인한 상장사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한 주주총회 시 의결정족수 완화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고, 경영권 방어 수단 도입을 위한 제도 개선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자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을 입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법무부는 20대 국회에서 발의·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들의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출처=청와대 트위터)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4월 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출처=청와대 트위터)

시민단체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행보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를 목표로 한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발표를 한 지 얼마되지 않아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돕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 시민단체는 문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부적절한 의도와 경제현실 인식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한 시민단체는 "이번 비전 선포식은 그 내용에서 지난해 8월에 삼성이 크게 홍보한 3년간 180조 투자와 4만명 고용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며 "구체화된 내용이 적어서 그 실질적 의미가 적은 행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까지 직접 방문해 크게 호응하는 것은 지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최종판결을 앞두고 있는 지금 그 의도를 매우 의심하게 한다"라며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는 시민들의 바람이 무너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경제와 제조업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은 공유하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재벌개혁은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정한 재벌개혁은 공정한 경제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뉴스통신사 합동 서면인터뷰를 통해 재벌개혁의 의미를 재차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재벌·대기업은 한국의 고성장을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우리가 개혁하려는 것은 재벌 체제로 인한 경제의 불투명, 불공정한 측면"이라고 강조했다. 재벌개혁은 경제에서도 민주주의를 실현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더 넓고 깊은, 단단한 민주주의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말은 재벌·대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정한 경제질서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대한민국과 기업들이 건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본격적인 경영 행보에 나서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을 무작정 겨냥하는 행위를 지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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