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병도 기자
  • 입력 2019.07.02 05:00

이재용 부회장, 5년 전 삼성 맡았지만 수사받느라 경영능력 검증 기회 없어
'교각살우' 범하면 안돼...외환위기 당시 공중분해된 대우그룹서 교훈 얻어야
구조본이 주도한 'e 삼성' 실패 책임론은 무리...재창업 각오로 혁신 나설 때
올해로 창업 81년...5대 이어 160년간 존경받는 스웨덴 발렌베리家 참고할 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용(오른쪽 세 번째) 삼성전자 부회장, 현대, CJ, 두산, SK 기업 총수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사진=YTN캡처)

[뉴스웍스=문병도 기자]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숙소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국내 대기업 총수와 회동을 가졌다.

그런데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은 앞자리에 앉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 CJ그룹 손경식 회장 등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제가 언급한 기업들은 미국에 많은 투자를 했다.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라며 감사를 표했다.

이날 다소 요란하게 감사 인사를 한 것은 기업 총수들이 모인자리에서 적극적인 대미 신규 투자를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슷한 장면은 같은 달 26일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도 연출했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들을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 만났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의 왕위 계승자다.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맡고 있는 그는 고령인 아버지를 대신해 실질적인 정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인공지능(AI)과 정보통신 기술(ICT) 산업 위주로 국가 경제를 바뀌겠다는 ‘비전 2030’을 2016년에 발표한 뒤 565조원을 들여 ‘미래형 신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삼성은 관련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5대 그룹 총수와의 차담회가 끝난 뒤 이 부회장을 별도로 만난 것은 삼성과 협력에 관심이 많고 관련해서 그룹 총수와 할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우디는 막대한 오일머니로 스마트시티 등 첨단산업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하지만 관련 기술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빈 살만 왕세자와 5대 그룹 총수의 만남은 사우디의 대규모 투자 기회를 모색하는 의미있는 자리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게감이 남다른 그가 1박 2일간의 짧은 방한 일정 중 시간을 쪼개  5대 그룹 총수를 만난 것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의사결정권자인 오너를 만나야만 사업 얘기를 제대로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너는 결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때로는 바로 그자리에서 결단을 내릴 필요도 있다. 이는 곧 오너 경영의 장점이기도 하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한국의 기업이 몇 개의 1등 경쟁력을 갖춘 결과도 오너 체제가 경쟁력이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2월 5일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353일 만인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은 5년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지만 잇단 수사로 경영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사진=SBS 뉴스캡처)

삼성을 다시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으로 만드는 임무는 이 부회장에게 맡겨졌다. 이 부회장은 5년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삼성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 사이 삼성은 사업구조 개편을 진행했다. 2015년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그룹 지배구조 재편이 이뤄졌다.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며 공식적으로 '이재용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 동안 경영능력을 검증 받을 기회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부터는 약 1년간의 수감 생활도 했다.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해 8월 그는 그룹 총수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4대 미래 성장 사업에 3년간 180조원을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4대 미래 성장사업은 인공지능(AI), 5세대(5G)이동통신,바이오,전장이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처음으로 자신의 경영철학을 실현할 4대 미래성장 사업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이 장면은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10년 경영에 복귀하며 발표한 5대 신수종사업(자동차용전지, 바이오, 태양광, 의료기기, LED)을 떠올리게 끔 했다.

하지만 곧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사건이 터지면서 이 부회장의 다른 발목까지 잡고 있다. 

국정 농단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삼성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수사로 삼성그룹 임직원 8명이 구속됐다. 수사의 칼끝은 이 부회장을 겨냥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서 3심을 남겨 두고 있다. 대법원 최종 선고는 오는 7월이나 8월쯤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도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검찰 소환도 앞두고 있다. 

정의 구현이 아무리 중요한 가치라고 해도 그 실현과정에서 삼성을 억울한 희생양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결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재계의 공통된 우려다. 

일각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으면서 공중분해된 대우그룹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김우중 회장의 말과 함께 대우그룹은 99년 해체 직전 83조원의 자산에 62조원의 매출을 일으키며 41개 국내 계열사와 396개 국외법인을 거느렸다. 

잘 나가던 대우그룹이 해체된데에는 바로 '정치논리'가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우가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대 부도로 사라지면서 그 동안 구축한 옛 글로벌망도 함께 사라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투기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돈을 벌어 들고 나가는 것과 달리 김 전 회장은 국외에서 국부를 창출하려 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관건은 재벌 3세인 이 부회장이 과연 경영능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그에게는 실패의 낙인이 찍혀 있다. 'e삼성'의 실패 사례는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을 불신하는 근거로 주로 인용됐다. 

e삼성은 벤처바람이 아직 뜨겁던 2000년, 삼성 구조조정본부가 추진한 프로젝트다. 

당시 삼성 구조본은 이 부회장을 위한 성공신화를 만들려 했다. 아울러 벤처바람을 타고 'e삼성' 관련 주식 가격이 오르면 자금도 마련할 수 있다고 봤다. 이를 위해 삼성 계열사에서 다양한 인원이 차출됐다. 

하지만 벤처바람이 식으면서 함께 망했다. 이로인해 이 부회장에게는 실패의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e삼성' 관련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실행한 것은 삼성 구조본이었다. 더구나 이로부터 19년이 지나갔다. 2019년 지금, 이 부회장이 어떤 경영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근거로 삼기엔 무리가 있는 '옛날 얘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부회장이 삼성을 새로운 반석 위에 올리려면 재창업의 각오로 나서야 한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열사 사장단 및 임원 200여명을 앞에 두고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라고 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그룹) 

아버지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계열사 사장단 및 임원 200여명을 앞에 두고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혁신을 주문했다.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가전, 스마트폰 사업등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삼성이 재도약 하려면  무엇보다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서야 한다. 

이를 위해 삼성이 꺼내든 카드는 인공지능(AI) 반도체다. 사람 뇌의 신경망을 모방해서 한꺼번에 수십~수천개의 연산을 동시에 진행하는 신경망처리장치(NPU)를 독자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향후 10년안에 인공지능 반도체 인력을 지금의 10배인 2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필요하면 과감한 인수 합병도 시도해야 한다. 250조원에 이르는 보유 현금을 활용해야 한다. 스타트업이든 큰 기업이든 쓸만한 기업을 선점해야 한다.

발렌베리 가문의 역사는 1856년 해군장교 출신인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창업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에서 시작된다. 그는 미국과 영국의 최신 금융시스템을 도입, 많은 예금을 예치했고, 스웨던 산업 호황기에 과감한 투자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사진제공=발렌베리가문)

궁극적으로 삼성은 스웨덴 발렌베리가문과 같은 식으로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국가경제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시나리오다.

발렌베리 가문은 19개의 스웨덴 대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아트라스콥코, 일렉트로룩스, 에릭슨, ABB 등 스웨덴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은 모두 발렌베리가 소유다. GDP의 약 30%, 주식시장 시가 총액의 약 40%에 해당하는 돈을 이 가문이 움직인다. 하지만 이 가문은 160년, 5대를 이어오면서도 부패하지 않았다. 인베스터라는 지주회사를 통해 자회사를 지배하며, 가족 명의의 재단을 설립해 인베스터를 통제한다. 자회사들은 전문경영인을 통해 철저하게 독립 경영을 하며, 이익은 인베스터를 통해 재단으로 유입된다.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이 말은 웬만한 스웨덴인이라면 다 아는 발렌베리 가문의 좌우명이다. 

삼성은 지난해 창업한지 80년이 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발렌베리 모델은 이 부회장을 지나 4대, 5대로 바통이 넘어가면서 삼성이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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