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2.24 15:42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민둥산은 한자로 표현하면 禿山(독산)이다. 원래 건조해 식생이 자라지 않는 산이거나, 사람이 마구 해쳐 나무와 풀이 자라지 않는 산이다.

서울시 금천구의 중앙에 있는 동네 이름이다. 그곳에 뾰족한 산이 있는데, 지금과는 달리 예전의 이 산에는 나무가 별반 없었던 듯하다. 지금이야 산에 나무 등을 심어 숲을 가꾸는 산림녹화(山林綠化)가 잘 펼쳐져 우리 대한민국의 산야(山野)가 보기에 참 그럴듯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 전의 산과 들판 모습은 보기에 민망했다. 나무가 우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헐벗은 대지에서 보듯이 옛 조선과 대한민국 건국 전후의 산야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때의 산을 우리는 민둥산으로 부른다. 산에 나무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드문드문 있을 뿐인 그런 산이다. 그 민둥산을 부를 때 등장하는 ‘민둥민둥하다’가 바로 아무것도 없는 ‘대머리’를 가리킨다. 그 대머리를 가리키는 한자가 ‘독(禿)’이다. 그런 산을 가지고 있던 동네여서 독산동은 오늘날의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동양사회의 옛 풍수(風水) 관념에서는 산을 한 마리의 용(龍)으로 간주한다. 그 산의 흐름을 형성하는 전체의 모습은 그래서 용맥(龍脈)이라고 적었다. 저 멀리 백두산의 정기가 흐르고 흘러 서울에 와서 닿는 곳이 북한산이라는 식이다. 그 모두를 하나의 흐름으로 봤고, 그런 모양을 용맥이라는 말로 부른 것이다.

그 산에 있는 흙은 용의 몸체를 설명할 때 살을 가리킨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제대로 살집을 지니지 못하면 어딘가 춥고 가난해 보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산이 지닌 흙, 용의 살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살집만 갖춘다고 모양새가 나기는 어렵다. 튼튼한 골격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동양의 풍수는 산의 바위와 암석이 용의 뼈, 즉 골격(骨格)을 이룬다고 봤다.

살집에 골격까지 갖추면 다일까. 그래도 어딘가 부족하다. 살집에 아무것도 얹지 않으면 그야말로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준다. 피부에는 반드시 털이 나 있어야 한다. 모양에서도 그렇고, 습도 등을 조절하는 모발(毛髮)이 있어야 제 모습이다. 산을 용으로 볼 때 그 모발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나무와 풀이다. 수풀이 있어야 산을 타고 흐르는 용의 모습이 제대로 그려진다.

살집과 골격은 다 갖췄는데 피부 위에 얹어야 할 모발이 제대로 없는 산, 그게 바로 민둥산이자 독산(禿山)이다. 그래서 일찍 머리털이 빠져 유전적인 대머리를 지닌 사람들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젊어서 대머리에 이르면 혼사(婚事)마저 지장을 받을까 두려울 정도다. 그래서 모발 이식이 성행하고, 가발(假髮)산업도 꺾일 줄 모른다.

머리에 털이 제대로 나지 않은 수리를 우리는 ‘독수리’라고 한다. 수리는 사나운 조류, 다른 새를 잡아먹는 이른바 맹금류(猛禽類)의 하나로 하늘의 제왕이라 일컬어지는 새다. 그 독수리의 ‘독’ 역시 대머리를 일컫는 한자 禿(독)의 뜻이자 발음이다. 대머리는 흔히 독두(禿頭)라고도 적으며, 그런 모습의 나이든 사람을 독옹(禿翁)이라고 한다. 머리털 빠진 정수리라는 의미의 독정(禿頂)도 역시 같은 뜻이다.

물자가 귀한 옛날에는 붓도 마구 쓰기가 어려웠을 터. 계속 쓰다 보니 그 끝이 닳는다고 했다. 그런 붓을 독필(禿筆)이라고 했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문장 등을 낮춰 부르는 용어로도 쓰였다고 한다. 가을이 오면 나무는 잎을 떨어뜨린다. 그렇게 잎을 다 잃은 나무를 독수(禿樹) 또는 독목(禿木)이라고 적었단다. 머리털 없는 사내, 그런 의미의 독정(禿丁)은 불가의 승려를 낮춰 적은 단어다. 유교 성리학이 대세를 이루며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말이다.

민둥산이라고 해서 산으로서의 가치가 없을까. 그 바위가 우뚝하고 사나우면 골격이 뛰어난 산이다. 피부에 난 모발이 적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없을까. 역시 중요한 것은 사람의 내면이며 기품이다. 겉모습만 보고서 사람을 비웃고, 그에 빠져 그 사람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놓친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독산동은 우리의 거울이다. 우리는 그 머리카락 없었던 산을 어떻게 바라보는 사회일까. 그 점을 비추는 거울 말이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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