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7.05 08:30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출처= JTBC방송 캡처)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출처= JTBC방송 캡처)

아베 일본 총리가 '화이트 국가 리스트', 즉 일본의 외국환 및 외국무역관리법에 따른 우대 대상 국가 목록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할 것을 천명하면서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로 인해 반일 감정마저 극도로 나빠지고 있다.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는 이런저런 정황 상 지난 박근혜 정부와 합의했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문재인 정부가 수용하지 않고 연일 강제 징용과 같은 민감한 역사 문제 거론에 대한 보복 대응이 분명하지만 일본 측에서는 우대하던 자격을 일반 자격으로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복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왔던 일이 발생한 것이고, 그에 따라 조속하고 철저한 준비를 통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예정이며 허용되는 국제법 및 국내법에 맞춰 대응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론은 들끓고 있으며, '우리도 경제보복에 나서자',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하자', '일본여행을 금지시키자', '국내 일본 국적의 연예인들을 추방하자' 등의 여러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필자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이러한 분노가 충분히 이해되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 보복의 경우 자칫 WTO 제소와 관련하여 우리 측에 불리한 정황을 일부러 만들 수도 있다. 석유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는 대일 수출 현황을 냉정하게 보면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의 대체자들이 적지 않다. 딱히 상대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는 현실을 무시하고 굳이 시비꺼리를 만들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분명한 경제보복의 피해자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전략적으로 낫다는 뜻이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얼마든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라는 생각한다. 필자 역시 참여할 것이다. 다만 불매운동에 참여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하며 혹시 불참하는 사람에 대한 비난이나 질책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제도적 의무가 없는 행위에 대한 강요는 개인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한일 감정이 좋지 않았을 때 발생했던 일본 자동차에 대한 방화와 같은 그릇된 행동은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여행에 대한 여행금지는 강제하지 않더라도 아베 총리가 비자 제한도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시장논리에 따라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관광으로 일본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우리보다 훨씬 큰 상황에서 일본이 자승자박하는 것을 지켜보면 될 뿐, 우리가 억지로 국가 위상을 떨어뜨리며 별도의 조치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국내 일본 국적의 연예인을 추방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동안 비난해왔던 일본의 극우세력이나 기타 해외의 편협한 차별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가치관과 무엇이 다른지 반문하고 싶다. 국내에서 활동하며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의 국적만으로 추방하는 것은 심각한 차별이며 합리적인 우리나라 헌법 취지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아베 총리가 돌발적이고 무책임하게 저지르는 정치적 도박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장시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필자가 거론한 것처럼 감정적 대응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며, 우리가 일부러 보복하지 않더라도 일본 경제도 결국 타격을 입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화가 나지만 이럴수록 이성을 찾고 냉철한 판단으로 성숙한 대응을 해야 한다.

WTO에 대한 공식적 제소를 포함하여 이번 기회에 일본에서의 수입 목록에 관한 다원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강대강 대결구도만 유지할 것이 아니라 원만한 해결을 위한 대화도 제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어리석은 일본의 모습에 어른스럽게 대응하는 한국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단국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이재무
이재무 단국대 행정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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