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2.24 16:40
봄을 대표하는 식생 중의 하나가 살구나무다. 살구는 한자로 杏(행)이다. 杏林(행림)이라는 단어는 살구나무 숲, 나아가 병을 치료하는 의사, 공자가 학생들을 가르쳤던 배움 마당 등의 의미를 얻었다.

굳이 풀어 옮기자면 ‘살구나무 숲’이다. 이 단어는 ‘의사(醫師)’를 일컫는다. 제법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조조(曹操)와 유비(劉備)가 활약하던 중국의 이른바 ‘삼국시대’ 때 실재했던 사람인 동봉(董奉 221~264년)과 관련이 있는 단어다.

그는 화타(華陀), 장중경(張仲景)과 함께 중국 역사 속 3대 명의(名醫)로 알려진 인물이다. 동봉은 지금으로 따지면 중국 동남부의 푸젠(福建) 출신으로, 나중에는 경치가 아주 빼어난 인근 장시(江西)의 여산(廬山)에 들어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 중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했을 때는 돈을 받는 대신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심게 했고, 가벼운 병에 걸린 사람에게는 치료의 대가로 살구나무 한 그루를 심도록 했다. 그가 살던 여산의 언저리가 그 살구나무로 가득 채워졌음은 물론이다.

여산의 한 자락에 가득 들어섰던 살구나무에 살구가 달려 익으면 그는 사람들에게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와서 한껏 담아가라고 했다. 그 대신 곡식을 조금씩 담아 오라고 했다. 그렇게 쌓인 곡식으로 그는 전쟁과 재난에 시달리는 빈민들을 구제했다는 것이다. 그런 미담의 주인공 동봉은 마침내 중국 인술(仁術)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어짊을 실천하는 바른 의사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추앙을 받고 있다.

우리 지명이나 일부 학교 등에도 이 杏林이라는 명칭은 자주 등장한다. 이 杏林이 동봉의 그 杏林인지는 솔직히 자신할 수 없다. 공자(孔子)가 杏이라는 나무 밑에서 제자들에게 강의했다고 해서 공자의 사당, 또는 그 학당을 행단(杏壇)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나라 학교 등에 붙는 杏林이 살구나무를 뜻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은행(銀杏)이라고 할 때의 그 은행나무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는 얘기다. 공자와 관련이 있는 그 나무가 살구나무라는 사람도 있고, 은행나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차치하고 이 살구나무 杏은 운치가 있다. 두목(杜牧)이라는 당나라 시인이 비 흩뿌리는 청명(淸明) 때의 길가에서 “술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목동이 저 멀리 있는 ‘살구나무 꽃 핀 마을’, 즉 행화촌(杏花村)을 가리키더라는 대목 말이다. 이 杏花村 결국 ‘술 익는 마을’, ‘술집이 있는 곳’ ‘주막’ 등의 뜻으로 발전했다.

그래도 살구나무에 관한 화제로는 아무래도 동봉의 선행이 으뜸이다. 그는 살구로써 어짊을 실천했고, 그 바탕은 곧 의술(醫術)이었다. 의료계가 전면 파업을 예고한 요즘이다. 인술을 베풀고자 선서했던 의사들이 환자와 떨어져 길거리에 나앉게 할 수는 없다. 누구의 노력이 우선일까. 살구나무 숲속의 명의, 동봉이라면 어떤 처방을 적을까.

 

<한자풀이>

杏(살구 행): 살구, 살구나무, 은행(銀杏)나무.

林(수풀 림)

 

<중국어&성어>

*당나라 杜牧(803~852) 시 ‘청명(淸明)’

 

清明时节雨纷纷 qīng míng shí jiē yǔ fēn fēn

路上行人欲断魂。lù shàng xíng rén yù duàn hún

借问酒家何处有?jiè wèn jiǔ jiā hé chù yǒu

牧童遥指杏花村。jiè wèn jiǔ jiā hé chù yǒu

 

청명 시절인데 웬 비가 부슬부슬?

길 가는 행인들은 넋이 다 빠질 듯.

물어보자, 술집이 어디에 있느냐?

목동이 멀리 가리키는 살구꽃 동네. (『중국시가선』, 지영재 편역, 을유문화사)

 

杏仁 xìng rén: 살구씨, 약재로 많이 쓴다. 음식 재료로도 쓰인다.

杏眼 xìng yǎn: 살구 모양의 눈. 미인의 눈을 형용할 때 쓴다.

红(紅)杏出墙(墻) hóng xìng chū qiáng: 빨간 살구꽃이 담장 밖으로 머리를 내밀다. 이게 원래의 뜻. 화사한 봄의 경치를 일컫기도 한다. 달리 전의(轉意)해서는 ‘바람난 여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자주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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