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19.07.16 14:43

대만 TSMC 1분기 대규모 적자 원인은 '포토레지스트' 품질
한국 반도체 생산라인, 2~3일만 멈춰도 수천억원 손실 입어
문 대통령 말과 달리 경제보복 길어질수록 우리 기업들 피해 눈덩이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한 엔지니어가 설계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출처= 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한 엔지니어가 설계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출처= 삼성전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일본이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핵심소재 3종에 대한 대(對)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한 가운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경쟁사인 대만의 TSMC가 올 1분기에 공정 문제로 5억5000만달러(약 6500억원, 분기매출의 약 7%)의 손실을 내게 된 원인이 '포토레지스트' 품질 때문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업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있다.

TSMC가 포토레지스트를 '정상적으로 공급받아' 사용한 상태임에도 품질 문제로 분기에 6500억원이란 천문학적 손실을 낸 상황이라서, 만약 삼성전자가 일본으로부터 포토레지스트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할 경우에는 그 손실액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른바 '감광재'로도 불리는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 표면에 회로 패턴을 그리는 필수 소재다. 한마디로 포토레지스트가 없다면 반도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와관련, 업계의 엔지니어들은 "이 소재는 상당히 민감한 소재이므로 고품질로 관리되지 않으면 수율(YIELD)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이 소재를 생산 공급하는 업체는 일본의 신에쮸 화학(Shin-Etsu Chemical)과 JSR 등 일본 기업 2곳과 미국의 다우케미칼 정도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은 전세계 시장점유율의 9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이 소재에 관한 한,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을 통하지 않고 다른 나라를 통해 이 소재를 수입해 온다해도 물량 확보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품질 또한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지난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으로 출장을 떠난 것도 당장 재고 소진이 우려되는 포토레지스트의 대체 수입원 확보가 목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신에쮸 화학이나 JSR이 해외에서 가동 중인 생산공장을 통해 우회 수입을 하는 방법도 있다는 시각을 내비치고는 있지만, 일본 기업들의 속성 상 일본 본사에서 허락하지 않을 경우 물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는 게 정설이다. 게다가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한 수출규제를 묶어놓는다면 더욱더 그럴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공정의 연속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반도체 공정은 1년 내내 24시간 풀가동을 하고있는 산업으로 유명하다. 혹여라도 지진이나 정전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치명적이다. 수백단계의 가공작업이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제조공정의 특성상 어느 한 부분이 멈추면 다른 공정에도 줄줄이 피해가 발생한다.

만일, 여러 날 동안 공장 가동이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심각할 땐 전세계 반도체 가격은 요동친다. 필연적인 공급차질로 반도체 품귀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에 반도체 가격이 폭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 8월 15일 대만에서 828만가구의 5시간 정전 사태가 발생하자, 하루 뒤인 16일 국내 주식시장에서 동부하이텍 주가는 직전거래일보다 300원 올라 출발했고, 다음날에는 전일종가 보다 6.4% 오른 가격으로 거래를 마쳤다. 그해 8월 들어 줄곧 하락세를 보이던 주가가 대만 정전사태를 계기로 반등한 것이다.

10년 전인 지난 2007년 8월 초에도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변전설비 고장으로 21시간 동안 가동이 중단되자 낸드플래시 현물가격이 7% 가량 상승한 바 있다.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춰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가 관심사로 대두된다.

우선적으로는 수백가지 공정을 거쳐야하는 웨이퍼 작업 공정이 멈춰서면 처음부터 새로운 웨이퍼를 다시 걸어서 작업에 돌입해야 하므로 그에 따른 손실이 발생한다. 반도체 공정의 특성 상 이미 했던 작업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얘기다.

뿐만아니라 반도체 공장을 재가동하려면 온도, 습도, 압력 등을 처음부터 다시 맞춰줘야 한다. 이에 따른 손실비용이 천문학적이다. 최적화된 공정흐름을 회복하려면 길게는 몇 달의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발생한다. 따라서 반도체업계는 불황기에도 생산라인을 365일 24시간 가동하는 이유도 생산라인이 가동을 멈추면 그 피해가 워낙 막대하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전자의 모든 반도체 생산라인이 하루 동안 멈춰 선다면 그 피해는 얼마나 될지를 가늠해볼 중요 단서가 있다. 지난 2017년도를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그해 상반기 반도체부문에서 올린 매출은 33조원이었다. 하루 평균 1800억원에 달했다. 멈춰선 라인을 재가동하는데 2~3일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기회손실은 수천억원대로 추산된다. 이런 까닭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은 하루 3교대로 생산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소재, 부품, 장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수입처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며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는 발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반도체 업계의 한 현장 엔지니어는 "문 대통령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이번에 일본의 경제보복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훨씬 더 클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한편, 지난 14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일본투자 기업인, 증권사 애널리스트, 학계 등 50명의 일본 전문가를 대상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영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일본 전문가 10명 중 6명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장기화 할 경우 한국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결과를 내놨다.

특히, 일본의 수출제재에 대한 한국기업의 피해정도에 대해 응답자는 '매우 높다(54%)'거나 '약간 높다(40%)'고 응답해 그 정도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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