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19.07.22 04:55

N이라 명명한 이유…한국 남(N)양연구소서 태어나 독일 뉘(N)르부르크링서 담금질
뉘르부르크링 서킷 1만㎞ 주행…일반도로 18만㎞ 주행과 같은 ‘피로’ 누적 이겨내

i20를 개조한 고성능 랠리카는 WRC에서 현대가 높은 성과를 이루는 데 한몫했다.(사진=현대자동차)
i20를 개조한 고성능 랠리카는 WRC에서 현대가 높은 성과를 이루는 데 한몫했다.(사진=현대자동차)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자동차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브랜드 파워’를 반드시 확보해야한다.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방법 중 가장 극적인 것이 바로 고성능 자동차로 모터스포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고성능 차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처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 고성능 차 브랜드는 모터스포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현대차는 오래 전부터 고성능 차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었고, 고성능차를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모터스포츠 경기에 도전했다.

현대차는 2017년 9월 ‘i30 N’을 자사의 첫 고성능 모델로 발표했다. 고성능 브랜드 N의 첫 양산 모델을 발표하기까지 ‘죽음의 랠리’라고 불리는 WRC(World Rally Championship)에 출전해 실력을 길러왔다.

현대차는 지난 2012년 고성능차 개발에 돌입했다. 2012년 파리 국제모터쇼에서 ‘i20 WRC’를 공개하고, WRC 경기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때 국내에서는 고성능 자동차 관련 조직을 구성하기 시작했고, 해외에서는 2012년 12월 독일에 현대모터스포츠법인을 만들었다.

현대차는 이미 2000년에 베르나 3도어 헤치백(수출명 액센트)을 튜닝한 모델로 WRC에 도전했었다. 당시 너무 작은 차체로 인해 핸디캡을 안고 경기를 진행했고, 약한 서스펜션과 직진에서의 스피드 부족 등으로 인해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현대차는 고성능 브랜드 N의 개발을 위해 2012년 부터 인적, 물적 투자를 아끼지 않고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다.(자료 제공=현대자동차)
현대차는 고성능 브랜드 N의 개발을 위해 2012년 부터 인적, 물적 투자를 아끼지 않고 부단히 노력해왔다.(자료 제공=현대자동차)

액센트의 WRC 랠리 이탈 이후 10년만에 ‘i20 WRC’ 카로 WRC 재도전

고성능 자동차는 더 빠르고 더 강력한 파워를 보유해야 한다. 또한 운전자의 의도에 따라 즉각적으로 정확하게 반응해야 하며, 단순한 성능이 아닌 조화로운 성능을 구현해야 한다. 여기에 수치가 아니라 운전자가 느끼는 감성적인 즐거움을 먼저 생각해야만 고성능 자동차로서의 진가를 발휘 할 수 있다.

이러한 성능을 확인하기에는 모터스포츠를 통한 실차 테스트가 적격이다. 좀 더 극한의 상황에서 성능과 내구 테스트를 진행 할 수 있는 무대로 현대차에게는 아마도 WRC가 최적의 조건을 제공해 줬을 것이다.

WRC는 한 해 동안 유럽, 오세아니아, 북중미, 남미 4개 대륙에서 14번의 대회가 개최된다. 아스팔트, 거친 산길과 눈길은 물론 멕시코의 견디기 힘든 더위부터 스웨덴의 영하 25℃ 혹한의 추위까지 어떠한 환경에서도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우승을 할 수 있다.

WRC에 참가하는 차는 일반 도로 주행용 차체의 차량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또 특수한 차량이 아닌, 연간 2만5000대 이상 생산되는 양산차여야만 한다. 험난한 지옥의 레이스에서 견뎌내고 우승하기 위해서 참가하는 모든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일반 차량을 ‘랠리 머신’으로 만든다.

현대차는 모터스포츠 팀 런칭 전 2012년에 선보인 ‘i20 WRC’로 기술 축적을 시작했다. 액센트 WRC의 랠리 이탈 이후 10년 후 다시 WRC에 참가하는 첫 해인 2014년, 시즌 개막전인 몬테카를로 랠리에 등장한 i20 WRC는 최대출력 300마력, 최대 토크 40.78㎏/m의 파워를 발휘하는 세타 1.6T-GDi 엔진, 6단 시퀸셜 변속기의 4WD의 파워트레인을 보유했다. 

당시 시즌 개막전에서 1위를 4초 차이까지 추격하는 등 활약을 펼쳤지만 크래쉬(충돌)과 전자계통 트래블로 리타이어(기권)했다. 이후 3번째 경기인 멕시코 랠리에서 대회 첫 번째 완주와 3위로 포디엄에 올랐다. 

WRC 참가 랠리카는 연간 2만5000대 이상 생산되는 양산차로 개조한 모델로, 혹한과 혹서 등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야만 한다(사진=현대자동차)
WRC 참가 랠리카는 연간 2만5000대 이상 생산되는 양산차를 개조한 모델로, 혹한과 혹서 등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야만 한다(사진=현대자동차)

이후 2015년 시즌에는 세부적인 개선사항만 적용된 상태로 2014년 시즌 차량인 1세대 모델로 기어 시프터가 기존의 업다운 레버에서 패들 시프트로 변경되면서 좀 더 빠른 변속과 트랜스미션 반응속도를 구현했다.

2016년 시즌에는 2세대 i20를 베이스로 한 i20 WRC 경주차를 선보였다. 이전 시즌인 2014년과 2015년 시즌동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바디워크, 엔진, 변속기, 서스펜션 등 모든 것이 좀 더 효율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이를 통해 2016년 시즌에서는 2번의 우승과 포디엄에 12번 올랐다.

최대출력 380마력, 최대 토크 45.9㎏/m의 3세대 ‘i20 쿠페 WRC’로 4번 우승 

2017년 시즌에는 새로운 WRC 규정이 마련돼 3세대 ‘i20 쿠페 WRC’가 설계 및 개발됐다. 새로운 랠리카는 최대출력 380마력, 최대 토크 45.9㎏/m의 파워를 발휘하는 1600cc GDI 터보 엔진에 6단 시퀸셜 변속기의 4WD가 적용된 파워트레인을 보유했다. 또 WRC 랠리에 최적화된 서스펜션과 차체 비틀림 강성 보강, 에어로파츠 장착을 통해 주행 안정감을 개선했다.

그 해 시즌전에서 4번의 승리와 12번의 포디엄, 91회에 이르는 스테이지 승리를 기록하며 성능 개선의 효과를 체감했다. 또한 2018년 시즌과 올해에도 현대차는 변함없이 WRC에 도전하고 있으며, 이제 WRC를 임하면서 랠리가 아닌 일반 도로를 질주할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 모델의 주행성능 기술 기반을 만들기 위한 더 많은 노하우와 기술력을 축적 중이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의 첫 양산 모델인 유럽형 전략모델 ‘i30 N’은 270마력에 36㎏/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 2.0 T-GDi 엔진에 오버 부스트의 경우 38.5㎏/m의 토크 성능 향상으로 강력한 주행성능을 발휘한다. 제로백은 6.1초이고 최고 속도는 250㎞/h를 기록했다.

'i30 N'에는 구동 바퀴에 상황별로 엔진의 동력을 조절해 전달하는 '전자식 차동 제한 장치(E-LSD)', 노면 상태와 운전 조건에 따라 감쇄력을 제어해 주행 안전성과 승차감을 동시에 확보한 '전자 제어 서스펜션(ECS)' 기술이 적용됐다.

또, 기어 단수를 내릴 때 엔진 회전수를 조정해 변속을 부드럽게 해 주는 '레브 매칭(Rev Matching)', 정지 상태에서 출발 시 엔진 토크 및 휠 스핀을 최적으로 제어해 최대의 가속 성능을 제공하는 '런치 컨트롤(Launch Control)' 기술, 일시적으로 엔진 출력을 높여주는 '오버부스트(Overboost)', N 전용 고성능 타이어 적용 등 모터스포츠를 통해 습득한 다양한 고성능 차 기술이 반영됐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의 첫 양산 모델 ‘i30 N’의 주행 모습, 유럽형 전략모델로 국내에서는 출시되지 않고 유럽 현지에만 판매되고 있다.(사진=현대자동차)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의 첫 양산 모델 ‘i30 N’의 주행 모습, 유럽형 전략모델로 국내에서는 출시되지 않고 유럽 현지에만 판매되고 있다.(사진=현대자동차)

제로백 6.1초- 최고시속 250㎞ ‘i30 N’, 유럽시장에서 올 1분기 3000대 팔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에 대한 시장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i30 N은 유럽에서 2017년 3분기 첫 출시 때만 해도 겨우 100대가 팔렸다. WRC 성적이 향상되면서 그 해 4분기에는 1000대까지 판매됐다. 올해 1분기에 3000대를 기록했다. 유럽 전체 i30 판매량 1만5600대 중 약 19.2%를 차지하며 소비자들의 꾸준한 선택을 받고 있다.  

현대차가 처음 고성능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을 때는 응원보다는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는 핀잔을 들었지만 지금 현대차의 N 브랜드는 경주용 자동차 브랜드 중에서도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현대차는 또 한편으로 WRC만으로 부족한 차량의 성능 개선을 위해 독일의 뉘르부르크링 공략에 나서며 주행성능 강화에 정성을 기울여 왔다.

현대차는 2015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고성능 N 브랜드를 공개한 이후 i30을 개조한 차량으로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 참가해 완주 해 보이며 고성능 N을 한번 더 대중들에게 각인 시켰다. 이후 2017년에는 i30N, 지난해 5월에는 i30 N TCR로 참가해 완주했다.

올해 6월에는 i30 N TCR, 벨로스터 N TCR, i30 패스트백 N라인업 전 차종이 내구레이스에 참가해 녹색지옥(Green Hell)을 정복했다. 녹색 지옥이라고 불리는 뉘르부르크링은 1바퀴가 25㎞를 넘는 길이, 최대 300m의 고저차, 170개에 달하는 코너, 코스 앞쪽을 예측할 수 없는 블라인드 코너가 대부분이라는 점 등 복합적인 코스로 이뤄져 있어 차량의 성능을 시험하기에 가장 가혹한 서킷으로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포르쉐와 페라리, 맥라렌, 애스턴마틴 등 슈퍼카 업체는 물론 벤츠와 BMW, 아우디 등 고급차 브랜드들의 테스트 센터들이 이곳에 모여 있으며 신차들이 마지막 테스트를 위해 필수적으로 거치는 코스로 유명해졌다.

뉘르부르크링 서킷 주행은 현대차 고성능브랜드의 마지막 담금질 장소로 주행 및 내구성능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 레이스 중 차량 점검 모습(사진=현대자동차)
뉘르부르크링 서킷 주행은 현대차 고성능브랜드의 마지막 담금질 장소로 주행 및 내구성능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 레이스 중 차량 점검 모습(사진=현대자동차)

뉘르부르크링에서의 서킷을 고속으로 1만㎞ 주행한 차량은 일반 도로에서 18만㎞를 달린 것과 같은 ‘피로 현상’이 누적된다고 한다. 혹독한 주행조건을 오랜 시간 동안 견딜 수 있는 고품질의 가속·선회 성능과 내구성에 대한 테스트를 집중해서 짧은 시간에 진행 할 수 있는 장소다.

그 만큼 뉘르부르크링의 서킷에서 ‘살아남은 차’는 명예롭기에 홍보에도 유리한 고지에 선다.

현대차는 고성능 브랜드 N을 “한국의 남(N)양연구소에서 태어나 독일 뉘(N)르부르크링에서 담금질했다”는 의미를 담고 각 지명의 첫 글자인 알파벳 ‘N’을 사용해 브랜드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이어 “N은 높은 출력과 최고 속도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N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드라이빙에서 느껴지는 운전의 즐거움으로 이는 가속, 코너링, 제동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연속된 순간에서 균형 잡힌 성능의 발휘다”라며 “N 로고에는 ‘와인딩 로드에서 가장 짜릿함이 넘치는 운전의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N의 개발 의지가 담겨 있다”고 전했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은 현재 상품성과 역량은 훌륭하지만 아직 인지도와 입지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언더독(Underdog)’과 같은 상황이다. 점차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많은 포디엄에 올라가면서 인지도와 입지를 넓히며 빠르게 성장해 가고 있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은 레이싱에 초점을 맞춰 개발했지만 일반도로(공도)에서도 무리 없이 운용이 가능하도록 콘셉트를 설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처럼 레이싱 대회를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해 나가면 고객들의 마음과 고성능 자동차 분야에서 굳건한 입지를 다질 수 있을 것으로 현대차는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는 고성능 브랜드 N이 나오기 전만해도 평범한 대중 브랜드에 그쳤다. N 출시이후 럭셔리 퍼포먼스 브랜드로 변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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