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7.25 04:50

큰 강 르아도르(L’Adour)를 건너가면 작은 강줄기 라 니브(La Nive) 강가를 따라 아기자기한 구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큰 성당(Bayonne-Cathedrale Sainte- Marie)이 나타나고 그 왼쪽 골목 길에 숙소(Baionacoa Residence)가 성당벽 옆에 붙어있다. 낭만적인 강가 구도시 바욘(Bayonne)에서 참 편안한 밤을 보냈다. 토요일인 13일 아침 주말시장이 강가에 늘어섰고 그 사이 주민과 관광객들로 활기차다.  

필자(왼쪽)가  Michel과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박인기)

‘Baionacoa Residence’ 주인인 Michel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시 르아도르 강을 건너 신도시에 위치한 Gare de Bayonne에서 12시38분 Hendaye행 기차를 기다린다. 앤다예는 프랑스 남북부 국경도시다. 목적지 이룬(Irun)과 붙어있다고 한다. 

북쪽길을 걷고자하는 바쁜 일정의 순례자는 몽빠르나스역에서 얜다예까지 바로 갈 수 있다. 그러나 바욘(Bayonne)의 편안한 낭만 구도시에서 하룻밤 묶고 가는 것도 권할 만하다. 바욘의 구도시는 오래된 쇠락의 역사와 서민적 강촌문화 정서가 듬뿍 묻어나는 한적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창문패턴이 아기자기한 대리석 주거 건물 사이로 해넘김 잔광이 너무 예쁘게 걸려있는 오래된 고도, 빛바랜 바욘성당의 고풍스런 정취가 너무나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8유로를 지불하고 기차에 올랐다. 스페인 이룬(Irun)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까미노 박인기 몽유도'를 시작한다.

(사진=박인기)

기차를 타고 Ghuetary역에 도착하니 아~대서양 바다가 우측편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동해바다처럼 깊고 푸르른 바다, 아니 좀 더 깊은 느낌이다. 이 지역은  프랑스 남서쪽 끝 지역으로서 이미 대서양을 끼고 형성된 독특한 해양문화권, 프랑스쪽 바스크 지역이다. 한국의 경우 남서쪽 끝 해남과 같은 지역일텐데 그 독특함은 서양적인 문화권이니 동양인 객으로선 단지 짐작만 할 뿐이다. 분명한 것은 프랑스 남서쪽 어촌지역이라는 것이고 바욘 숙소 주인장과 카페 종업원이 생장쪽을 은근히 강조하는 애국심에서 프랑스인들의 민족적 우월감을 짙게 느꼈을 뿐이다.

“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여 그대는 어디쯤 있는가”

제국주의적 우월성이 드러나는 TGV와 달리 옌다예 일반기차는 많이 편하게 느껴졌다.우선 승객이 적고 탑승한 승객들 표정 역시 TGV쪽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큰 도시일수록 젊음은 인위적 열정으로 떨고 작은 타운일수록 나이듦은 자연적 발효의 울림이 큰 탓이겠지...

(사진=박인기)

이제 이룬이다. 약 30분 걸어 Albergue dePeregrinos에 도착했고 오후 4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숙소 제공, 크리덴시아 구입, 조가비 구입, 기타 인포메이션까지 모두 얻을 수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자코비(JACOBI)협회의 이룬 브랜치 공립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ASOCiON JACOBEA iRUN-BiDASOA/ JACOBi)이다.
 
하루 더 자고 일찍 출발할 것이냐? 아니면 상담을 끝내고 오후 5시 출발, 11시까지 6시간 산세바스티안까지 24㎞를 주파할 것이냐? 선택의 기로다. 그래, 선불 유심 추가구입을 위해서라도 오늘 잠은 이곳 이룬 공립 알베르게에서 보내며 약 30여명 순례객들로부터 정보도 얻어보자.

(사진=박인기)

스페인 북쪽 끝 해안도시 이룬은 프랑스 옌다예(Hendaye)와 붙어 있다. 사람들 옷차림에서부터 주거건물 외장의 느낌이 프랑스쪽과 많이 다르다. 베이지 벽면에 돌출 창문부분을 짙게 칠한 강렬한 색채대비 장식, 군데군데 나무질감 장식 등에서 동양문화 투르크족의 지배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느껴진다. 그런 관점에서 이곳은 비록 다리 하나 건너지만 프랑스쪽과 많이 다르다. 비록 세련미는 있다고 할 수 없으나 나름 동양적 분위기가 이국적으로 드러난다. 역사적 환경, 즉 정치 문화 사회적 환경이 많이 다르니 그에 따라 사람들 기질 또한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사진=박인기)

 
이제 정말 시작인가? 이룬 공립 알베르게를 나와 14일 아침 7시, 비로소 진짜 순례길에 접어들어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까미노 델 노르테(Camino del Norte)의 현실적 첫 걸음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약  약 550km에 이르는, 고독한 대서양의 해안선 북쪽길이다. 

 지금 내가 짊어진 약 25kg Backpacking 장비는 그래서 실질적 내 삶의 무게다. 걸으면 단순해지는 내 생각, 돌이켜 보자. 걷다 보면 살다 보면 또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종종 나는 늘 엉뚱한 곳으로 빠지곤 했었다. 지나온 시간의 마른 질감을 뒤로 하고 내 나이 올해 70, 오늘 순례 첫 길을 걷는다. 

나는 걷는다. 새 길을 걷는다. 내가 걷는 이 길도 누군가 몸으로 걸어 만들어 낸 길이다. 그 길이 왕래길이 되고, 관습이 되고 지식이 되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간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또다시 새로운 길을 부르기 마련, 내게 있어 새로운 길은 ‘걷는 길 사는 길,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나는 이 길을 ‘ 박인기 산티아고 몽유도’라 부르겠다. 

(사진=박인기)

도(道)는 길이다. 몸으로 걷는 길. 지식으로 사는 길, 마음으로 걷는 소풍 길이  바로 그것이다.

꿈꾸듯 즐거운 산길을 생각해보면, 산행에서 난 특히 야영을 즐겼다. 호젓한 산길에서 혹은 경치 좋은 구릉에서 새벽에 맞는 텐트 속 여명은 천국의 빛이요, 새소리의 재잘거림은 천국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지금 대서양이 삼면으로 펼쳐보이는 산 능선길을 약 4시간 걸어 마을길을 따라 내려 오니 탁 트인 곳, 오른쪽 바다를 낀 환상적인 항구풍경이 펼쳐진다.

(사진=박인기)

이곳이 ‘파사이(Pasai Doniban)'라는 어촌마을이다. 가지런히 묶인 요트가 눈 밑에 정박해있고 오른쪽으로 대서양 바다길이 시원하게 뚫려있다. 낮은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더욱 정겨운 느낌을 주는 조그마한 어촌이다.

(사진=박인기)

80센트 유로를 건네고 소형 배에 올라 강 같은 바다를 건넌 뒤, 또 산으로 한참을 오르고 내려기를 반복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도노스티아 산 세바스티안(DONOTIA SAN SEBASTIAN)에 도착했다.

(사진=박인기)

해안관광도시 산 세바스티안, 넓고 시원하게 펼쳐진 풍광 좋은 해수욕장에는 넘치는 피서객들로 만원이다. 그 옆 해안가 도로에는 왁자지껄 웃고 소리치는 젊은 사람들과 꼬마 아이들, 북적이는 그들 속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정답게 눈에 띈다. 관광지라는 명성답게 크고 작은 금빛 모래비치가 연달아 펼쳐지는 해안선을 잘 갖추고 있다.

우리 순례객들에겐 알베르게를 찾는 일이 급선무, 방이 없을수 있다는 불안한 느낌...피서철 주말에 오늘은 일요일 아닌가? 
결과는 이렇다. 이태리에서 온 순례자 3명과 함께 동행하며  Kantauri Itsasoa 푸른바다를 향한 Zurriola hondartza의 긴 해변을 터덜터덜 지나고 또다시 다리를 건너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았다. 그런데 이곳에 알베르게는 없고 피서객들이 많아 방도 구하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가르쳐 준 안내에 따라 다시 지루한  Kontxahondartza 해변을 지나니 또 다른 비치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Ondarreta hondartza라는 아담한 해변인데 다행히 그 초입에서 좌측 주거단지 쪽으로 걷다가 오른쪽으로 꺽어 어렵게 도착한 ONDATRETA YOUTH HOSTEL. 1박에 25유로, 간단한 아침식사 4.3유로까지 지불하고 8인용 방 윗침대에 배정받을 수 있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 된 것이다.

고마운 사람들, 미소로 위로하며 힘을 준 길 위의 사람들...오늘 하루 첫 순례 길 위에서 인생 잘 살았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룬(Irun)~파사이 산 페드로(Pasai San Pedro)~도노스티아, 산 세바스티안(Donostia, SAN SEBASTIAN), 27.9km  43,410걸음  9시간18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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