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8.03 05:00
빌바오 대성당.(사진=박인기)

알베르게의 호스트, 지나칠 만큼 친절한 나이든 할머니는 21일(일요일) 오전 6시가 되자 전등부터 켠다. 아침은 커피와 비스킷이다. 7시 10분 길을 나서는 상쾌함은 어제와 똑같다. 다만 오늘은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어제 저녁 레라리츠에 도착하자마자 이어지는 동네 축제를 목격했다. 흥을 돋구는 축제의 전염성은 우리 일행에게도 영향을 주어 '까미노 매직'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일행 한두 명 골목길 카페에 모여들어 한두순배 술이 들어가자 결국 각자 편한 대로 영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를 교차하며 거침없이 섞어 쓰는데 신기하게 소통이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건배~! 즐겁게 맥주 4잔, 햄버거 안주 그리고 자리를 옮겨 진토닉까지 한잔 더 걸쳤으니 다국적 친구들이 모인 어울림은 흥이 넘칠 수 밖에 없었다. 

(사진=박인기)

오늘처럼 구름 낀 날씨 속에서 얼굴에 스치는 기분 좋은 안개비는 산에 자주 다니는 백패커들에겐 반가운 단비와도 같다. 일주일 만에 느끼는 최상의 걷는 길, 최상의 순례길을 지금 걷고 있다. 어쩌면 이 촉촉한 안개비가 오늘도 까미노 길을 매직으로 풀어 놓을 것 같다.

"어메이징~ 어메이징~!" 한 번 들여놓은 스페인 까미노(camino) 길은 매직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오스칼, 까미노 모든 길이 어메이징~, 어메이징! 사랑에 빠질 거라고 미국 친구 오스칼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강조했다. "I agreed!" 그는 네 번째 까미노 길 위를 걷는단다. 살고 즐긴단다.

그래, 지금까지 일주일 동안 내가 느낀 까미노 길도 참 예뻤다. 놀라웠다. 친절했다. 그리고 맛있었다. "I agreed with you." 오스칼!

(사진=박인기)

25살, 30살, 36살, 44살, 60살, 그리고 70살 나까지 그룹으로 함께 수백년 다져진 돌바닥 골목길에서 하룻저녁 동화되는 까미노 순간은 정말 어메이징하다. 오스칼, 나 진짜 몽유병에 걸린 것 같다. 

전쟁에 쓰이던 화살도 까미노 위에선 감동의 언어가 된다. 노란 화살표시 까미노, 일상의 경쟁 속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맑은 영혼, 본질로 인도하는 울림이 된다.

몽유병과 몽유도, 그 차이점이 무의미함은 출입문의 지도리와 같다. 보는 위치에 따라 이름이 달라질 뿐이다. 예를 들어 밖의 길 속세에서 보면 몽유는 ‘병’, 안길 산길에서 보면 그것은 하나의 ‘도’다.  

사람들의 잠재력은 무궁한데 고작 10% 남짓 쓰다가 일생을 끝마친다고 한다. 무의식 무차별로 연결되는 잠재력 현상을 몽유병이거나 몽유도라 동일한 의미로 부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인가?

그렇지 않음을 확신하고 싶어 오늘 나는 걷는다. 나는 꿈꾼다. 나는 즐겁게 살아간다. 까미노에서...어쩌면 지금 여기 매 걸음 매 순간의 걷는 길이 새 길을 찾는 화광동진의 길임을 몸소 느끼기를 소망하며...

10시30분, 빌바오 카페에서 어제 저녁 함께 어울렸던 일행을 다시 만났다. 모두 날 일본인으로 오해한다. 오스칼이 날 대신 소개하면서 백팩 25㎏, 70살이라고 말하니 모두 다시 놀란다. 그리고 왜 25㎏를 들고 다니냐고 독일 친구가 묻는다. 글쎄, 왜 나는 백패킹할 생각에 25kg까지 짊어지게 되었는가? 처음 길이고 백패커(Backpacker)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난 아직 아마추어다. 비우고 비우고 더 비워야 한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아니쉬 카푸어의 '큰 나무와 눈'. (사진=박인기) 

다음에 또다시 찾게 될 까미노를 위해 한번 정리해보자. 캡과 캐라반 모자 하나씩, 겹양말 두 세트, 상하 반팔 반바지 두 벌, 우의, 방한 파커, 텐트, 매트리스, MSR 버너, 1ℓ 수통 둘, 등산화와 슬리퍼 추가 한 켤레씩 그리고 정보수집 및 정보교환 등을 위한 무제한 데이터 등 인터넷을 원활하게 사용가능하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한 품목이다.

쇳 소리 나는 스틱은 버리자. 길 위에 지팡이가 놓여져 있다. 비상식량은 필요없다. 마을과 바(Bar)를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여벌 옷도 불필요하다. 알베르게마다 수돗물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입 클라인의 '용암 분출(Fire Fountain)'. (사진=박인기)

다만 열린 마음은 필요하다. 까미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열린 마음으로 울림을 주고 또 받고자 길을 나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처럼 웃고 다가가서 말을 나누고 함께 울림을 나누자, 상실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특별히... 여긴 까미노 데 산티아고~부엔 까미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제프 쿤스의 '퍼피(Puppy)'. (사진=박인기)

빌바오는 스페인에서 다섯 번째로  큰 규모로서, 바스크 지방 까미노 델 노르테에서 만나게 되는 제일 큰 도시이기도 하다. 한 가운데 강이 흐르고 대성당을 중심으로 5층 건물들이 아기자기 조화를 이루며 참 예쁘게 들어섰다. 무엇보다 도시관광활성화 차원에서 마련한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의 아름다운 모습이 강과 어우러져 특히 눈에 띈다. 꽃으로 형상화해 놓은 설치작품, ‘퍼피(Puppy)’ 앞에서 일행은 분주히 사진을 찍고, 놀다가 12시30분경, 알베르게부터  찾기 위해 일행은 발걸음을 돌렸다.

'퍼피'와 필자.(사진=박인기)

빌바오에서 저녁시간은 특별하다. 바스크 지방의 대표적 간단음식 ‘핀초스(Pintxos)’는 아무래도 전통 중앙광장 ‘New Plaza’에서 먹고 마시는 경험이 각별하다. 스퀘어 광장은 3~4층 건물로 둘러쌓여 있고, 건물 아래 통로를 따라 줄지어 형성된 바에는 특별한 핀초스가 즐비하다. 모두들 한 곳 두 곳 돌아가며 즐겁게 먹고 마시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사교적 전통관습이라고 한다. 그 관습 속으로 일행 또한 흠뻑 빠져들었다. 양파를 다져 만든 ‘세비야(tortilla con cebolla)’와 몇 가지 핀초스 경험의 맛은 매우 특별했다. 아주 맛있고 즐겁다.

(사진=박인기)

바스크 지방 대표도시 빌바오에는 NEW PLAZA를 중심으로 판초스, 와인 비어를 파는 바의 전통적 설렘과 그에 따른 울림이 즐비하다. 웨일즈 파리사, 벨지움 비트리스, 프랑스 로만, 스페인 아드리아나, 마드리드 다나, 나비, 독일 블러트, 벨지움 야나 그리고 미국 오스칼까지 모두 깊은 떨림과 울림이 있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빌바오에서 천국을 노닐었다.   

우리는 삶의 길 위에서 과연 몇 날을 본성대로 떨고 울리고 있는가? 까미노를 걷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박인기)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LARRABETZU, Aterpetxea Albergue Hostel→LEZAMA→BILBAO, 14㎞, 23,358걸음, 5시간 (까미노 참고용 : LARRABETZU, Aterpetxea Albergue Hostel →BILBAO 13.6㎞)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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