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2.26 16:26
금천에 있는 유명 전통사찰 호압사 전경이다. 무학대사와 조선의 서울 도읍 지정 무렵 설화를 안고 있는 절이다. <사진=금천구청 홈페이지>

원래의 역명은 시흥(始興)이었다가 2008년 12월 지금의 역명으로 바뀌었다. 지금 역명인 금천(衿川)에 관한 소개는 우리가 곧 닿을 금정(衿井)역에서 차분히 알아보기로 하자. 따라서 이번에는 원래 역명이었고, 아울러 역 주변의 주요 행정 명칭으로 등장하고 있는 始興(시흥)이라는 한자 조합을 살펴보자. 이 이름의 유래를 보면 제법 흥미를 끄는 대목이 있다. 원래 이 동네 사람들이 있던 자리는 말죽거리를 넘어 서울로 향하던 길가의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접한 청계산 일대에 있던 도적의 피해가 아주 심해서 현재의 위치인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남부로 마을 전체가 옮겨 왔다는 설명이다. 도적놈들의 행패가 너무 심해 이주의 설움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 그래서 옮긴 터전에 ‘새로 일어서라’는 뜻의 시흥(始興)이라는 한자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순우리말의 지명으로는 이들을 길가의 마을에서 이주시켰다고 해서 ‘보낸말’이라 불렀고, 그것이 다시 ‘모랜마’로 변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서울에서 멀지 않은 청계산에 도적들이 몰려 있었다니 흥미롭고, 그들의 폐해로 인근 마을이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는 점도 관심을 끈다. 치안이 좋지 않았던 상황, 또 산속에 들어가 도적질을 하며 연명했던 유민들의 경우가 다 관심거리다.

始興(시흥)이라는 한자 이름의 앞 글자 始(시)는 영어로 start(스타트)를 뜻한다. 우리가 뭔가 일을 벌이면서 ‘시작(始作)한다’라고 할 때 우선 이 글자를 쓴다. 마찬가지로 쓰는 단어가 개시(開始)다. ‘열다’라는 의미의 開(개)와 ‘처음’ ‘시작’의 새김인 始(시)가 한데 몰려 있으니 영락없는 start, 그 뜻이다.

시발(始發)이라는 글자 조합도 재미있다. 열차가 운행을 시작하는 곳이 바로 시발역(始發驛)이고, 어떤 현상이나 작업 등이 벌어지는 곳이 시발점(始發點)이다. 현대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제 세계적 수준에 올랐지만, 사실 1960년대 들어서야 겨우 걸음마를 뗐다. 괄목할 만한 성장이긴 해도 당시에는 그저 자동차를 조립해 생산하는 정도였다. 그때의 자동차 이름에 ‘시발’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이 시발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기가 좀 뭐하다. 아무래도 쌍스러운 욕과 발음이 아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자 단어로서의 뜻은 크게 나무랄 데가 없다. 무엇인가 막 움을 틔워 펼쳐지는 그런 상황을 가리킨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를 따지기 힘든 가치중립적인 단어에 해당한다.

‘시작하다’라는 말에서의 한자 단어 始作(시작)은 원래 무엇인가를 만드는 첫 걸음을 가리킨다. 공자(孔子)가 아주 매섭게 비판한 사람들이 있다. 무덤에 묻는 인형(人形)을 만든 사람들이다. 죽은 자를 위해 사람의 모습을 띤 목제 또는 흙으로 빚은 인형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인형을 우리는 한자로 俑(용)이라고 적는다. 중국 최초의 제국을 형성한 진시황(秦始皇)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그가 남긴 대규모 유적이 중국 산시(陝西)에 있는 병마용(兵馬俑)이다. 아주 많은 수의 병사(兵)와 말(馬)을 흙으로 빚어 구웠는데 중국은 이를 兵馬俑(병마용)으로 적었다.

그런 인형을 만든 사람에게 공자는 아주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는데, 무덤에 사람 인형을 넣는 나쁜 풍속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랬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인형을 처음 만든 사람이 바로 ‘시작용자(始作俑者)’다. 처음(始) 인형(俑)을 만든(作) 사람(者)이라는 의미인데, 지금은 ‘아주 나쁜 선례를 만들어낸 사람’을 가리키는 성어로 쓴다.

‘사물에는 뿌리와 가지,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다’는 가르침은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에 나온다. ‘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 事有終始)’다. 핵심과 주변을 잘 가르고 정리하며, 일을 할 때는 처음과 끝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시작과 끝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시종(始終)이라는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잘 관철하는 일이 시종일관(始終一貫)이다. 처음과 끝(始終)을 하나로써(一) 펼쳐나간다(貫 뚫을 관)는 얘기다.

始興(시흥)이라는 지명의 다음 글자 興(흥)은 우선적인 새김이 ‘일어서다’다. 아울러 기분이 좋아지는 상황도 가리킨다. ‘일어서다’의 의미로 자주 쓰는 말은 우선 흥망(興亡)이다. 일어서거나 망하는 일, 국가나 사회 나아가 개인이 발전하거나 거꾸러지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런 역사가 흥망사(興亡史)이고, 흥망이라는 단어와 같은 뜻인 성쇠(盛衰)를 갖다 붙이면 흥망성쇠(興亡盛衰)의 성어로 작용한다.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에 쓰는 興(흥)도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글자다. ‘흥분하다’의 흥분(興奮), 어느 일에 호감을 느끼거나 재미를 들이는 게 흥취(興趣)다. 어느 일이나 대상에 입맛이 당기면 그게 바로 흥미(興味)다. ‘입맛(味)+일어나다(興)’의 구조다.

우리는 숙흥야매(夙興夜寐)라는 한자 성어를 한동안 자주 썼다. 이른 새벽(夙)에 일어나고(興), 깊은 밤(夜)에 잠잔다(寐)는 말이다. 부모님을 잘 챙겨드리기 위해 자식들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과거의 효도(孝道)에 관한 구호에 가깝다. 그런 가르침의 핵심인 어른 잘 모시기는 과거와 현재가 다를 게 없을 테다.

일어나서 계속 발전해 아주 좋은 상황을 이루는 일이 흥성(興盛)이고, 점점 기울어가다가 종국에는 망하는 일이 쇠망(衰亡)이다. 자연의 섭리에서는 달이 보름달의 상황을 늘 유지할 수 없듯이 모든 사물과 상황은 언젠가는 기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 민족은 흥성의 흐름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쇠망의 내리막길에 들어서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잘 해야 할까. 중요함과 변변찮음의 본말(本末)을 잘 가리고,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하는 그런 ‘기초’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일어섬과 무너짐의 인류역사 속 끝없는 부침(浮沈)의 이야기, 始興(시흥)을 지날 때 한 번쯤 생각해 보자.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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