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⑬] 8살 소년이 준 떨림과 울림이란 선물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⑬] 8살 소년이 준 떨림과 울림이란 선물
  • 최승욱 기자
  • 승인 2019.08.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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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오늘은 출발이 늦다. 와이파이 덕분에 밀린 자료를 전송하고 충전 후 떠난 시간은 오전 10시. 예정거리는 약 27㎞. 아침 햇볕이 뜨겁다

까미노 산길 옆에 엊저녁 투숙하려 했던 Camping de Castro 간판이 보인다. 아쉽지만 어쩌랴~. 또 새 날, 새 아침, 새 길이다.

(사진=박인기)

유칼립스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길을 지난 숲길은 서늘하다. 불 같은 나무 성질을 잠재우려는 듯 서늘한 숲길로 맞불을 놓았다.

(사진=박인기)

호주 The PROM 내셔널 파크에서 보냈던 백패킹 길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유칼립스 나무는 양(陽)의 기운, 끈적끈적한 기름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산불에 취약하고 타기도 잘 탄다. 누군가의 배려로 서늘한 음(陰)의 기운을 담은 숲길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천년 순례길의 지혜는 이미 득도의 단계다.

우리는 일생동안 수많은 길을 걷는다. 독립을 위하여, 성공을 위하여 그리고 사랑을 위하여 걷고 또 걷는다.

배낭을 메고 쉬고 있는 필자.(사진=박인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요즘 젊은 청춘들이 걷고 있는 길에서 홀로 서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삶의 경제적 수준이 최소한으로 평준화되는 사회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대적 불평등의 욕구불만인가? 사회 문화적인 삶의 차별화를 위해 도전하다 부딪치게 되는 만만치 않은 현실과 경쟁사회에 대한 총체적 욕구불만인가? 과도경쟁 속에 인과적으로 피로해진 환경 속에서 사회적 동료이자 개인적 동반자일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마음까지도 점점 순수성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진=박인기)

홀로 서는 독립은 누구나 가야할 길이지만 그 길의 근거는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사랑이다. 그 사랑을 토대로 독립을 하고 길을 걸으며 그 속에서 사랑의 능력을 또다시 확장하는 것이다. 사랑 속에서 성장한 우리는 지금 모두 그 독립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비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사랑을 위한 길이라면 나는 바로 나의 길, 독립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박인기)
(사진=박인기)

성공의 길은 객관적이며 또한 주관적이다. 성공의 척도는 다양하다. 권력, 재물, 명예의 길은 그 끝이 없다. 유한한 삶의 길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심리학자 매슬로가 욕구단계에서 말했듯 생존의 단계를 넘으면 사회적 욕구가 커지지만 그 끝이 없음으로 마지막 자아만족·자기실현의 욕구단계로 얼버무렸다. 자아만족은 자기떨림의 길이다. 채워서는 떨 수가 없다. 빈 곳을 남겨두는 자족의 척도는 곧 떨림과 울림을 준비하는 생명의 길이다.

(사진=박인기)
(사진=박인기)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다. 다양한 만큼 준비되지 않은 미숙한 사랑도 많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우정으로 사랑하고 애정으로 사랑하며 인정으로 사랑을 한다. 인정은 상실을 경험하고 독립을 이룬 후에 나타나는 책임과 이해의 성숙한 사랑이다. 영적 성장을 통해 나타나는 성숙한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울림을 준다. 그 울림은 곧 자기 자신과 상대방의 생명과 행복을 담보하고 성장과 자유를 향해 내딛는 힘찬 인생 순례길을 의미한다. 순례길 위엔 항상 떨림과 울림이 있다.

(사진=박인기)

한 낮 온도 약 29도, 습도를 머금은 태양 빛은 그러나 참아내기 어렵다. 게다가 오늘 거리는 예상을 훌쩍 넘긴 30.3km...

(사진=박인기)

차가 달리는 도로변, 햇볕을 피하고자 걷고 걷다가 두 번씩이나 길을 놓쳐 운행거리가 늘어났다. 길은 여러 갈래다. 마을 우회길, 혹은 차 도로를 벗어난 자갈길...그런데 대개 그런 길은 더 멀게 돌아가는 길이기 쉽다. 좀 더 안전하겠지만...

(사진=박인기)

라레도에는 캠핑싸이트가 세 곳이 있다. 가까운 Carlos V 캠핑싸이트에 텐트를 치고 쉬는 늦은 밤 11시. 어둠 속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있는데 하루종일 비치에서 놀고 왔는지 옆 텐트 사람들이 돌아 왔다. 젊은 아빠와 어린 소년이다. 대뜸 내가 앉아 있는 텐트 어둠 속으로 다가 와 스페인어로 말을 거는 소년, 내가 영어로 말하자, “오케이, 유 니드 어 라이트?” 그리고 손전등을 가져온다. 와인을 마시기 위해 코르크 따개가 필요하다고 하자, 이번엔 따개까지 건네고 쿨 하게 돌아선다.

(사진=박인기)

아~ 어떻게 처음 보는 어둠 속의 옆 텐트, 어둠 속 낯선 사람에게 선뜻 다가와 도움주려 스스럼없이 말을 걸 수 있는가?

오늘 난, 8살 쯤으로 보이는 소년으로부터 살아있는 떨림과 울림을 선물받았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Castro Urdiales→Allendelagua→Cerdigo→Istares→Nocina→Laredo 30.3㎞, 44,973걸음, 10시간47분 (까미노 참고용 : Castro Urdiales→Laredo 26.6㎞, 6시간 30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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