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19.08.03 05:00

브랜드 인지력 낮은데다 시장 특성에 안맞아 수출 실패…독일산 브랜드만 선전

일본 현지 도로를 주행 중인 자동차 대부분이 일본산 자동차다. 일본은 수입차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사진=Pixabay)
일본 도로를 주행 중인 자동차 대부분은 일본산 자동차이다.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일본 정부가 2일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서로 교류를 통해 발 빠른 발전을 이뤄왔다. 하지만 이번 일본 정부의 무역제재로 인해 양국 자동차업계에 먹구름이 끼게 됐다. 

올 상반기에 인지도와 기술력을 인정받아 좋은 실적을 기록했던 일본 수입차는 이번 조치로 국내시장에서 판매가 더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제품 불매 운동이 시작된 7월 초부터 일본차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감소했다. 일본차 신차 구매 상담 건수도 6월에 비해 41%가 줄었다.

토요타·렉서스·혼다·닛산·인피니티 등 일본 자동차 5개 브랜드는 올해 1월에서 6월까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지난해보다 10.8% 증가한 2만3850대를 판매했다. 일본차는 2010년 이후 9년 만에 한국의 내수시장에서 수입차 판매 점유율 20%대를 넘겼다. 그동안 디젤 엔진으로 승승장구하던 독일 브랜드를 상당부분 밀어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특히 국내에서 판매된 하이브리드 차량 10대 중 8대가 일본차일 만큼 인기를 끌었다. 주요 모델은 렉서스 ES300h, NX300h, RX450h, UX250h, CT200h와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 아발론 하이브리드, 프리우스 C,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 등이었다.

이처럼 일본차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불거진 초대형악재로 일본차는 한국 시장에서 지탄의 대상으로 내몰릴 처지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일본차는 5만3000대 가량 한국에서 팔았다. 통상 연말을 앞두고 연식 변경을 감안, 자동차업계는 대대적인 할인마케팅에 나선다. 하반기 판매가 상반기보다 많은 이유다.

◆일본에서 철저히 외면받는 한국차 

올 상반기 일본차는 국내 시장에서 신장세를 보였지만 한국산 차는 일본시장에서 아예 팔리지 않는다. 

일본자동차수입조합(JAIA)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현지 수입차 판매대수는 30만7682대로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2년 연속으로 30만대 이상 팔렸으며, 일본 내 신차 등록 중 수입차의 비율이 9.2%로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일본 수입차시장에서는 럭셔리의 상징인 독일차 강세가 두드러진다. 벤츠가 6만6948대로 일본 내수 시장에서 4년 연속 1위를 고수하고 있다. 2위는 디젤 게이트 여파를 벗어나고 있는 폭스바겐으로 전년보다 8.1% 증가한 5만2044대를 판매했다. 3위 BMW, 4위 미니, 5위는 아우디가 차지하는 등 독일차 브랜드가 상위권을 싹쓸이 하고 있다.

한국산 브랜드는 순위에서 보이지 않는다. 일본에서 한국산 승용차 판매량은 0대다. 일본 내 54개 수입차 업체 중  일본 내수시장에 진출해 있는 한국산 브랜드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2001년 일본 승용차 시장에 진출해 2004년 2524대를 판매하며 정점을 찍었다. 2009년 연간 900여대 판매에 그치자 같은 해 결국 일본시장에서 완전 철수했다. 당시 현대차는 관세 등의 영향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데다 좁은 길과 주차장 사정으로 소형차 수요가 큰 일본에서 그랜저, 쏘나타 등 중·대형차를 판매한 것을 실패 원인으로 꼽는다.

이후 일본 현지에서 한국산 브랜드의 판매는 ‘0’대인 상태다. 그나마 일본에서 운행되는 한국산 자동차는 재일 한국공관이나 개인적으로 수입해 사용하는 차량뿐이다. 

일본 내수시장 외산차 판매량 변동 그래프(자료 제공=일본자동차수입조합)
일본 내수시장 외산차 판매량 변동 그래프. (자료 제공=일본자동차수입조합)

◆일본 시장은 왜 한국차의 무덤이 됐나

세계적인 자동차 강국인 일본은 토요타, 닛산, 혼다 등 대형 자동차 제조업체를 보유하고 있어 자국 자동차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벤츠와 BMW와 같은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면 잘 선택하지 않는다. 게다가 독특한 경차 위주의 시장이 형성돼 있어 수입차 브랜드는 시장에 침투할 여지가 사실상 없는 곳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특성으로 '수입차의 무덤'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일본의 자동차 시장은 차량의 배기량은 물론, 크기와 무게까지 세금을 책정하고 있는 조세제도와 엄격하게 적용하는 차고지 증명제 등 도로 및 여러 요인으로 인해 자기들만의 독특한 자동차 문화와 성향을 갖고 있다.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요구도 높은 편이다. 2013년도부터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다. 최근 몇 년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수요가 매우 높은 시장이다.

한국 자동차 브랜드의 경우 일본 내수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려고 해도 인지도에서 떨어지는데다 유럽차에만 관심있는 일본 소비자의 시선을 잡아 끌만한 '특별함'도 부족한 상태다. 또한 한국의 내수시장에서 익숙한 세단과 SUV는 비중이 높지 않다.

일본에서는 경차와 박스카 스타일의 차들이 인기를 끈다. 현대차 모델 중 유럽 모델인 i10, i20 등이 그나마 일본 시장에 판매될 수 있는 모델일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팔리는 현대차 모델들 중에서는 일본 시장을 노릴만한 모델이 없다는 것이 자동차전문가들의 평가다.

세계 시장에서 인기 브랜드인 독일차도 일본에서는 다른 국가와 달리 큰 힘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독일차는 지난해 한국에서는 7만여대가 넘게 팔린 반면 4년 연속 독일차를 주축으로 수입차 시장이 큰 성장을 한 일본에서는 6만8000여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1920년대 일본에 진출해 토요타 자동차의 모토가 됐던 미국의 포드 자동차도 수익성 악화로 2016년 일본에서 철수했다. 지난해 미국 정부는 일본 자동차 시장의 불공정한 면과 폐쇄성에 우려를 표하며, 미국산 자동차 판매를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산케이신문은 “미국 자동차가 팔리지 않는 것은 독일차와 비교해 브랜드 경쟁력이 낮은 것이 원인"이라며 "미국차는 연비가 낮다는 이미지가 있고, 길이나 주차장이 좁아 대형차 구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 브랜드는 고급차라는 인식이 확산됐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소형차 등 미국차와는 다르게 일본 시장에 잘 맞는 차종을 갖추고 있다”고 빍혔다.

현재 일본 현지에 남아 있는 수입차 브랜드는 54개이다. 유럽계 브랜드가 강세로 일본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약 9%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판매량이 높은 (좌)렉서스 ES 300h, (우)아발로 하이브리드(사진=손진석 기자)
국내에서 잘 팔리는 일본차. (좌)렉서스 ES 300h, (우)아발로 하이브리드.(사진=손진석 기자)

국산차 브랜드가 일본 시장에서 토종 및 세계적 브랜드의 자동차 회사와 경쟁을 펼치는 것은 결코 쉽지않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손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최근 독일 유명 자동차 전문지인 아우토모토&슈포트는 2019년 15호 잡지에서 미래차는 현대차가 독일차 보다 좋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수소전기차와 전기차의 기술력은 현대차가  독일차보다 앞선다는 점을 인정했다. 친환경 및 전기동력차로 일본 진출을 노려 볼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는 월드베스트 기업으로 평가 받기 위해 일본을 반드시 넘어야 할 시장으로 보고 있다.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도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의 흐름과 동일하게 친환경차가 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차는 수소전기차 ‘넥쏘’와 클린 모빌리티 기술을 앞세워 일본 현지 시장에 재도전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자동차산업 관계자는 “일본시장은 개방이 완료된 국가"라며 "단지 일본은 자국의 자동차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소비자가 특별히 수입차를 원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일본차는 연간 한국에서 5만대 가량 판매가 되고 있다"며 "일본 내수시장에서 한국차의 초기 진입을 위해 일본 정부가 쿼터를 정해 한국 브랜드가 일본 현지 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제공해야하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역전쟁 조장하는 일본

일본은 자국의 기술력을 무기로 무역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 이번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결정은 한국·중국·일본 등이 활발히 교류하면서 발전해오던 ‘글로벌 벨류체인’을 와해시키는 행동과 다를 바 없다. 그간 일본은 소재·부품을 판매하고, 한국과 대만은 이 재료로 반도체를 제조·수출하고 중국, 일본, 미국은 IT 완제품을 제조했다. 이런 방식으로 제품 설계, 부품·원재료 조달, 생산,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각 과정이 국가·지역에 보유하고 있는 특화된 산업군을 활용하는 '분업체계'를 통해 상호이익을 올려왔다.

일본은 경차를 선호해 차급이 큰 수입차 브랜드는 시장에 정착하기가 쉽지않다. 일본의 거리에 주차한 자동차들 (사진=pxhere)
일본은 경차를 선호해 차급이 큰 수입차 브랜드는 시장에 정착하기가 쉽지않다. 일본의 거리에 주차한 자동차들. (사진=픽스히어)

일본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것은 전 세계가 오랫동안 구축해온 이 무역 질서를 무시하는 처사로 무역 분쟁을 유발할 수 있는 조치다. 한국이 담당했던 분업의 일정부분을 진행할 수 없게 만들어 단기적으로 전체 공정이 무너질 우려도 있다. 결국 일본도 리스크를 감수해야하는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일본은 한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 기업은 당장 시련을 겪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일본에 집중되어 있던 수입선을 중국·대만·독일 등으로 다변화를 추진하고, 국산화율을 높여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나갈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

일본 언론도 이같은 점을 알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무역 분쟁에 대해 “길게 보면 한국이 이번에 (수입규제를)당한 소재를 필사적으로 개발해 내거나 다른 나라와 합작으로 대체 수입처를 만들어 낼 것이다. 장차 반도체 공급에서 일본에 복수하지 않겠느냐. 국제적으로 자유무역 수호자라 해놓고 성공하지도 못할 괴롭힘을 왜 벌이느냐?”고 비판했다.

올해 상반기 한국 시장에서 실적을 회복해 판매량을 늘리고 있는 일본차 업체들도 이번 일본 정부의 조치로 일본차의 국내 판매도 급감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제재 수위가 더 높아진다면 어쩌면 수십대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자동차업계 관계자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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