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손진석 기자
  • 입력 2019.08.07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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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석 기자.

[뉴스웍스=손진석 기자] 한국 GM이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가입해서 국산차가 아닌 수입차가 되겠다고 통보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고 판매만하는 업체가 회원으로 있는 조직이다. 협회의 성격을 감안하면 한국 GM이 국내 공장에서의 향후 생산을 포기하고 수입업체로 살아남겠다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 GM이 KAIDA에 가입해도 실질적인 특별한 혜택은 없다. 협회비를 내고 얻는 장점은 수입차 브랜드라는 점을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GM 측은 KAIDA에 가입한 이유를 “쉐보레 브랜드의 이미지를 제고해 수입차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수입 모델에 대한 판매를 증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 GM은 KAIDA 가입을 통해 국산차 브랜드에서 수입차 브랜드라는 부분을 분리, 수입 모델임에도 가격면에서 ‘국산차가 왜 이렇게 비싸?’라는 인식을 바로잡아 ‘수입차인데도 비싸지 않네!’라는 이미지를 심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또 KAIDA에 가입함으로써 수입차 통계에 자료가 잡히게 돼고, 이것이 점차 소비자들에게 쉐보레는 수입차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점도 노린 것으로 읽혀진다. 이를 통해 점차 KAIDA 내에서 GM의 발언권이 확대되면, 이 영향력을 이용해 KAIDA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인 인증 및 무역 관련 조정에 자사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반영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 GM의 이번 조치로 국내 연구개발과 생산보다 수입 차종 판매에 집중하기 위한 행보가 아닐까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KAIDA 가입 후 시장에서 수입차 회사로 인정받으면, 국내 생산 비중을 줄여나가며 국산차에서 벗어나려는 계획을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국 GM은 국내에 공장을 보유하고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다. 지난해 산업은행과 2023년까지 5년 동안 지분 매각을 할 수 없으며, 이후 5년 동안도 35% 지분율 이상을 지닌 1대 주주 지위를 유지해야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GM은 10년 동안의 설비투자도 약속했다. 2027년까지 신규설비에 대한 투자를 매년 2000억~3000억원씩 해야 한다.

그동안 생산기반을 국내에 가진 브랜드로 고용 등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한국 GM은 한국 정부로부터 다양한 혜택과 지원을 받아 왔다. 대신에 향후 10년 가까이 국내 투자를 통해 현재 지위를 유지해야한다.

한국 GM에 있어 이같은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기실 부담스러울 것이다. 한국 GM의 국내 생산모델은 현재 스파크, 트랙스, 말리부가 전부다. 그 외에는 대부분 수입이거나 수입품으로 기획되어 있는 모델이다. 한국 GM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자동차 모델의 비중으로 보면 제조보다는 수입이 많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제조사에서 수입차의 판매는 모델 라인을 늘려주어 신차 개발에 드는 막대한 재정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해외 모델을 들여와 판매하기에 초기 시장에서 집중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 GM은 그동안 다국적 브랜드로서 국산과 수입차의 모델 믹스를 통해 제품 라인업을 구성해 내수 시장에 판매해 왔다. 하지만 국내 판매는 그리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가 해외 생산모델을 잘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격 경쟁력에 있다. 수입차라는 이유로 국내 생산보다 물류·보관 등에 따른 추가 비용이 발생해 판매 가격이 경쟁차 대비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출시된 이쿼녹스(2987~4000만원)는 미국보다 약 300만원 저렴하게 책정됐지만 경쟁 모델인 현대차의 신형 싼타페 디젤(2895~3635만원)보다 가격이 100~400만원 가까이 비쌌다.

쉐보레의 출시 예정 차량인 대형 SUV 트래버스 (사진=쉐보레 홈페이지 캡처)
쉐보레의 출시 예정 차량인 대형 SUV 트래버스 (사진=쉐보레 홈페이지 캡처)

한국 GM이 기대를 걸고 있는 대형 SUV 트래버스는  5000만원대 초반 가격에 출시가 예상된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4000만원대의 인기 경쟁모델인 현대 펠리세이드와 가격에선 경쟁하기 힘들다. 국산차가 아닌 수입차이며 5000만원대 중반에 파는 포드의 익스플로러보다 다소 싼 수입차라는 것을 부각시키기위해 KAIDA에 기입한 것일 수 있다. 계속 국산차로 대우받으면 이쿼녹스와 같이 흥행에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런 위험을 해소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한국 GM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꼼수'에 불과하다. 한국 GM은 국산과 수입차의 모델 믹스를 통한 다국적 브랜드 라인을 구성해 판매하고 있는 회사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공연한 오해만 불러일으킨다. 국내 생산시설에 대한 비중을 줄여나가기 위한 큰 그림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 GM은 고객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회사의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브랜드 위상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또 국내 생산을 지속적으로 늘려 나가겠다고는 강조하고 있지만 그간의 행태를 되돌아보면 신뢰를 받기 힘든 실정이다.

한국 GM은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이어오는 국산차 이미지가 강한 브랜드다. 일부분만 수입차로 변경한다고 해서 과연 이쿼녹스와 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KAIDA 가입은 군산공장 폐쇄, 생산과 연구 법인분리 등의 행보에 이어서 한국을 떠나기 위해 뒷정리를 하는 신호탄으로 읽혀지고 있다.

한국 GM은 산업은행과 협약을 통해 2027년까지는 한국에서 철수할 수가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 GM의 행보는 한국에서 떠나겠다는 시그널로 보이고 있어 우려가 된다. 이를 해소하려면 수입모델에 의존하는 모습이 아닌 한국 내 자동차 생산을 늘리고 신차 개발을 통해 국내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노조와의 불협화음을 빠르게 정상화시켜야 한다. 로마에는 로마법이 있듯이 한국 노동자에게는 그들만의 성향이 있다. 이를 인정하고 노조와 협의를 통해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 노조가 파업 움직임을 보이는 데에는 회사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바탕에 깔려 있다. 노조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회사에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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