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의 산티아도 몽유도⑰] 요양병상 아닌 길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열망
[박인기의 산티아도 몽유도⑰] 요양병상 아닌 길위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열망
  • 최승욱 기자
  • 승인 2019.08.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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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인기)

어머니, 나의 어머니 정귀실 여사, 7월 28일 오늘은 꼭 일년 전 7월 28일, 병상에서 소천하신 어머니의 기일이다. 어머니는 90세 되시어 천국 하늘길로 돌아가셨고 세상에 풀어 놓은 70살 자식은 오늘 순례길에서 그 이름을 부르며 새 길을 걷는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달관의 평정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도 없다. 맨 몸으로 살고 살아내신 그 분의 살아있는 역사와 현존하는 사랑의 깊이를 가슴에 새기고 기억하며 새 길을 걷고 살아가는 것 밖에는...

순례길에 나선 필자. (사진=박인기)

기일이라고 불러모아 함께 무거운 분위기 만드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못 다한 불효의 회한을 반복해 되새겨봐야 어쩔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어머니는 죽음으로 자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일구어 놓으셨다. 그 정신적 유산에 기대어 이제 자식된 아버지로서 나 또한 묵묵히 나의 길을 걸으며 그분의 사랑을 자녀사랑의 일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나의 길이다. 그것이 그분의 소망이고 그분의 기도이며 그분의 미소이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사진=박인기)

평소 후배들과 산행을 하며 나눴던 대화 중에 장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사랑하며 즐겁게 건강하게 상수(上壽)까지 살아 낼 것이라는 ..." 그래서 백수까지 함께 산행하자는 나의 희망다짐에 대해 50대 후배들은 "경사났네, 경사났어~"라며 겉 마음 속 마음 섞어 웃음으로 받아 넘겼었지.

(사진=박인기)

요즘 대한민국도 노인세대가 많아지는 실버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노인요양병원의 수 또한 비례하여 증가하고 있다.

요양병원은 죽음을 기다리는 지루한 회색공간이다. 장모님, 어머님 모두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셨고 그 과정에서 짙게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산행을 하고 순례길을 걸으며 ‘걷는 길 사는 길, 즐겁게 꿈꾸며 몽유하고자 하는 것’도 사실 회색빛 요양병상이 아니라 길 위에서 숲속에서 푸른 자연으로 나의 생을 마감하고 싶은 열망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집 가훈을 ‘즐겁게 사랑하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로 정했다. 취업의 길, 성공의 길, 지식과 명예의 길 모두 사랑의 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사랑의 실천이 바로 궁년(窮年)까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근거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엊저녁 마시다 남은 130년 전통맥주 Mahou Clasica, 일본 260g 비상식과 빵 쪼가리로 아침을 해결하고 3일 만에 나타난 햇빛을 감사하며 서둘러 텐트를 말린다.

(사진=박인기)

90세 평생을 그리스도 믿음을 위해 3대째 크리스천으로 사셨던 어머니와 달리 나는 오늘도 스페인 까미노, 내겐 아직도 속세의 길인 이 길을 걷는다.

믿음의 교회길과 속세의 세상길... 어렵다. 하지만 ‘유위이무위(有爲而無爲)’ 스페인 유위길이 당신이 소망하던 교회의 무위길과 같음을 온 몸으로 증명하고도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지상을 당신이 믿으셨던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내가 꿈꾸고 실천하는 일임을 다시 다짐하면서…

(사진=박인기)
(사진=박인기)

나는 크게 욕심이 없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내 꿈이 노욕이 아니길 바란다. 노자의 무위(無爲)란 곧 인간의 무욕(無欲)한 삶이라고 이해함이 옳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얻고자 욕심을 부린다. 그리고 좀처럼 그 결과에 만족할 줄 모른다. 그러나 애써서 이루고자 하는 성취 길에서도 한편 한발 물러서 만족할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있어야 큰 화를 면한다고 했다.

‘만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큰 화는 없다. 얻어 가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큰 허물은 없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만이 영원히 만족한다.(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노자 46장)

(사진=박인기)

3일 만에 햇빛 받는 선명한 순례길을 걸으며 난 무슨 말을 준비하고 있는가. 모든 길은 결국 생명을 살리는 사랑으로 통한다? 아니 통해야 한다?

강렬한 태양 볕에 드러나는 세상의 빛은 힘차고 건강하다. 베이지색 벽에 붉은 기와, 늘어선 자동차, 그 사이 엄마와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기는 소녀의 얼굴까지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다 선명하고 강렬하며 흰 구름처럼 평화롭다. 그 장면울 생명울림의 자연 씨앗으로 저장하고 돌아보니 빛나던 소모 라타스 비치가 물결너머 멀리 사라진다.

(사진=박인기)

빌바오에서 만난 스페인 젊은이가 휴가 장소로 찾아갈 예정이었던 그 Santander, 또 어떤 떨림을 준비하고 있을까? 페리에서 바라보는 건물 풍광은 태양 빛에 크고 강렬하다.

지척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Church of Santisimo Cristo(IGLESIA DEL SANTISIMO CRISTO)성당을 소개받고 두 번째 크리덴샬을 구입하기로 했다. 4시에 문을 연다고 소개한 성당이 실제는 5시에 열 거라고 수녀가 말한다.

(사진=박인기)

천 년 까미노 길은 급하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 쉬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두 시간 여를 휴식하며 Santander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Santander에서 21㎞ PIELAGOS로 계획한 거리를 11㎞ SANTA CRUZ DE BEZANA로 절반 단축하면 그게 하늘의 뜻일 것이다.

Santander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울 갖춘 클럽’에 속해 있다고 자랑하는 칸타브리아 지방의 수도로서 약 20만 명이 거주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도시다. 풍부하고 다양한 전통 문화예술을 유산으로 갖추고 고급스런 쇼핑거리, 고급 호텔, 위락시설 등의 편의성까지 마련되어 특히 은퇴한 노부부들이 좋아하는 현대화된 휴양관광 도시다.

(사진=박인기)

무엇보다 이 도시의 특별함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암각화와 동굴의 유적지가 지척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두 개의 세계적인 이벤트, ‘Menendez Pelayo International University’와 ‘International Festival of Sandander’를 통한 세계화의 홍보에도 적극적이라고 한다. 걸어가는 저녁 시간, 걸어오는 잘 차려 입은 노부부 신사 숙녀분들이 넘쳐나게 많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사진=박인기)

밤 9시30분, Santa Cruz de Bezana에 있는 ‘La Santa Cruz Albergue’에 도착한 마지막 순례객은 내가 되었다. 문을 열어 줘 들어가니 이미 먼저 도착한 20여명이 화기애애하게 만찬 중이었다. 샤워 먼저 하고 밀렸던 빨래 끝내고 나니 와인 곁들인 독립 밥상이 나왔다. 참 잘 먹었다.

여주인과 기념촬영하는 필자. (사진=박인기)

땀 냄새 풍기는 사람, 마다않고 순례객으로 존중해주는 여주인의 환대가 눈물겹다. 침대 여유가 없어 걱정했는데 내가 텐트 들고 다닌다고 말하니 너무 좋아하며 반갑게 맞아 들인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먼 거리의 상세 정보까지 설명해준다. 지난 3주 동안 까미노를 걸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감동했지만 정말 숨어 있던 천사가 얼굴 내밀 듯 어메이징한 순간이었다.

뒷 뜰에 텐트가 한 동 더 있어 인사 나누다 보니 어제 빗 속을 뚫고 강행하던 순례길에서 만났던 그 프랑스 처녀였다. 까미노에선 꼭 다시 만나게 된다는 얘기가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Somo, Camping Latas—>Santander—>Santa Cruz de Bezana 25㎞, 23,519걸음, 10시간 45분 (까미노 참고용 : Somo—>Santander 14㎞, 2시간 54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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