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8.12 05:00
뒷 마당 텐트에서 편한하게 7월 28일 밤을 보냈다. 아마도 여주인의 진심이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29일 8시 출발 전 미국 처녀 테슬라와 재회기념 사진 찍고, 다음 목적지 산틸라라나로 향했다. 약 25㎞ 거리다. 환대해 준 여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한국에 돌아가면 감사엽서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진심이 느껴지는 환대는 늘 감동을 준다.
사실 모든 인연은 그래서 소중한 것 아닌가? 인연은 진심으로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가슴으로 느꼈던 하룻밤이었다.
출발 전 여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가다보면 오피셜 로드가 있단다. 왼쪽길, 특히 철길을 조심하며 약 25㎞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자칫 우측 도로로 들면 롱웨이, 40㎞를 넘길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어젯 밤 식사 후 모두를 불러 놓고 다음 목적지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A3 두 장을 이어붙여 직접 약도까지 그려 넣은 그림을 짚어가며 불어,스페인어,영어를 번갈아 설명하는 그 배려심과 적극성, 한 마디로 그녀는 ‘세인트 마리아’ 위대한 모성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니에베스 라벨라. 꼭 기억하고 싶다.
사람의 친절에도 질감의 밀도가 다르다. 선천적이거나 본인의 의도적 근육형성에서 오는 것이거나... 그러나 본인의 삶을 통하여 얻어진 것은 분명한데 근육형성에서 온 것이라고하기 보다는 극한에 다가서는 주도적 활동 끝에 드러난 탈진, 거듭된 피로현상 후 나타나는 고요, 혹은 거듭된 탈진과 고요 끝에 찾아오는 마음의 평정, 평화, 무심, 고요함 아닐까?
무심에서 오는 고요함은 충동을 제어한다. 제어된 움직임은 빈 여백의 울림으로, 그 내공의 울림은 더 큰 울림으로 팽창 확장되는 것이 생명의 원리다. 그것이 주는 울림은 중심을 잃지 않는 깊은 사색으로 우리 모두를 인도한다.
거칠게 짖어 대는 개의 본성을 통해 인간의 심성을 생각해 본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도 탁함과 맑음으로 나뉘어 태어나기 때문에 탁함은 교화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교화시킨다는 것도 목적을 갖는 일종의 제도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용이 무엇이든 목적하는 바대로, 방향으로...
묶인 셰퍼드(shepherd), 좁은 마당의 불독, 아침 저녁 산보시키지 않는 집주인을 닮은 검둥이는 특히 심하게 사람 보고 짖는다. 제도화된 사람의 경우는 결코 이와 같지 않다고 믿고 싶지만 개 같은 경우 속박으로 제도화된 개는 분명 심하게 본능적으로 광폭하고 타인에게 위협적이다.
쉐프라고 자기를 소개한 25살 청년 약굽(Jakub)은 체코에서 왔단다. 한 번은 알베르게에서, 또 한 번은 아무 곳이든 빈 공간에서 노숙한단다. 행색은 못 속이는 법, 약 38㎞ 거리에서 해안가를 돌며 하루에 40㎞씩 열흘을 걷고 있는 중이란다. 남들은 알베르게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할 때 그는 바닷바람에 떨며 샤워한 게 분명해 보인다.
암튼 그가 진정한 백팩커다. 그가 가는 길에 분명한 울림이 있으리라.
5일 전 포루투갈래에서 만났던 카스티나 19살 독일 처녀는 건축학 공부를 앞 두고 까미노의 의미를 알고자 걷기 시작했단다. 그 앞 날에도 분명 울림을 위한 빈 여백을 준비하는 것이리라.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니 제도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분명 타고 난 본성대로 자유롭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Santa Cruz de Bezana, La Santa Cruz Albergue→Mortera→Bareda→Viveda→Queveda→Santillana Del Mar, Albergue Municipal Jesus Otero 24.6㎞, 32,904걸음, 5시간 40분 (까미노 참고용 : Santa Cruz de Bezana→Santillana del Mar 25.5㎞, 5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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