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8.14 05:00
7월 30일 텐트에서 자고 7월 31일 오전 11시 출발했다.
까미노를 걷다보면, 길 위에 살다보면, 지금 내가 걷는 길이 내가 선택한 마이 웨이이고, 그래서 내가 사는 이 길이 곧 나의 순례길이 된다.
매일 다양한 모습으로 울림을 주던 프랑스, 미국, 스페인, 벨지움, 체코, 헝가리 사람들은 물론 풀냄새 나는 산소 숲길과 툭 터진 바다, 푸른하늘에 풀어놓은 솜사탕 구름과 불어오는 바람까지 모두 내 삶의 소중한 은인이 된다.
잊는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살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걷는 모든 길이 바로 내 삶을 형성시키는 인연의 순례길이라는 사실이다. 순례길은 반성과 참회의 눈물로 얼룩진 천 년 역사의 길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한 가지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보물상자를 하나씩 갖고 태어나는 것 같다. 순금으로 예쁘게 장식한 철제상자든 목재를 다듬어 만든 나무상자든 겉모습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보물상자는 보물을 담으라는 것, 담겨있는 내용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 아니면 집안 대대로 소중하게 간직해 온 희귀한 것 등을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보물상자 속에 들어있는 보물의 진정한 의미는 한 사람이 한 평생 걸어가면서 남긴 삶의 흔적, 질감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진실이 않을까?
진실은 살아있음이다. 죽었으나 살아있음이다. 그것은 한 평생 살아 낸 왕성한 활동과 깊은 사색의 떨림이고 그렇게 우려내며 마련한 영적 울림이다. 울림은 떨림이 있어야 울린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선대로부터 보물상자의 유산을 받는다. 비록 빈 상자일지라도 그 속엔 선대 평생의 떨림이 들어있다.
살아있음으로 떨고 있는 그 보물상자는 곧 후손에게 감동의 울림으로 천년동안 이어질 것이다. 순례길에서처럼...
우리가 우리의 삶을 본성대로 진실하게 살아내면서 자신의 보물상자 속에 떨림을 채워 넣어야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제 남은 거리 약 451km.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Camillas→Rubarcena→La Rabia→Camping Oyambre Beach→La Revilla→Gerra, Restaurante Gerruca→Playa de Gerra→San Vicentede la Barquera→Serdio, Albergue de Municipal 21㎞, 31,623걸음, 7시간 10분 (까미노 참고용 : Comillas→Rupuente→San Vicentede la Barquera 18.2㎞, 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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