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9.08.17 05:00
8월 3일 오전 11시 길을 나서는 모퉁이, 실속없이 몸뚱이만 굵은 캠핑사이트 '팜 트리'가 눈에 띈다. 아니, 실속없다는 내 표현은 잘못 된 것 같다. 그 팜 트리는 다양한 생명체를 그 몸 여기저기 무심하게 품고 있었는데...
솔직히 내 실속있는 삶의 모습은 이웃을 품어 본 적이라도 있었던가? 눈에 보이는 모든 이웃이 다 인생길의 스승인데... 소위 선진국의 품격은 내가 느끼기에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인간적 관계를 형성해 나아가는 것 같다. 누구나 상대를 이해하고자 존중하는 기본적인 친절이 몸에 배어 있으니 말이다.
Po에서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 이 길은 강원도 동해안 국도길을 닮았다. 조금 거추장스럽다 싶으면 빵빵거리며 손가락질하기 일쑤인 7번 국도길이다. 그 왕복 2차선 길을 사람, 싸이클, 그리고 차가 함께 걷고 달린다.
어제 지나왔던 야네스부터 느꼈던 느낌이지만 목적지 히혼(Gijon)으로 향하는 이 길은 좌측에 산맥, 우측에 바다를 끼고 있어서 마치 강원도 삼척에서 동해를 지나 강릉, 주문진, 대포항 속초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길과 닮았다.
길은 찻길이자 외길인데 사람이 길을 걸으면 차들이 비켜간다. 당연히 이길에 사이클도 달리고 사람도 뛴다. 이곳은 모든 길에서 사람이 우선이다. 건널목에서 사람이 걸으면 우선 기다려 주거나 창을 내리고 눈 먼저 마주쳐 손짓하고 차를 굴린다. 따라서 사람길이 따로 마련돼있지 않은 왕복 2차선 시골길에서도 특별히 긴장하지 않아도 안전한 편이다. 운전하는 차가 사람을 먼저 의식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경험은 그런 것이었다.
차는 문명의 이기이자 흉기다. 나날이 늘어나는 교통사고가 그것을 증명한다. 사실 차 오토바이 자전거 모두가 우리들에게 이기이자 흉기이다. 아아러니하게도 극구 말리는 치과전문의 아들 말을 거역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사이클부터 장만하고자 한다. 그 속도성이 한편 부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토바이도 장만하고자 한다. 와이프를 뒤에 태우고 캠핑사이트에 늦게 들어와 텐트 잠을 자고 커피 마시고 훌쩍 쿨하게 떠나는 모터바이커족이 그렇게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랴, 향후 10년 동안 집보다는 바깥 이웃도어를 더 좋아하게 될 나의 인생 운명길인 것을… 길으면 30년, 혼자는 너무 이기적이지 아니한가?
나는 지금 순례길을 걷고 있다. 그간 3주 동안 경험한 순례길은 다양했다. 산길, 해안길, 돌길, 자갈길, 그리고 숲길 골목길... 모두 한 가지 순례길이다. 나는 그 길에서 오늘도 걸으며 살고 있다.
생각해보자. 우리도 다양한 길을 걷는다. 탄생길, 입시길, 취업길, 출근길과 퇴근길, 만남길 사랑길 그리고 요단강길.., 그 길의 공통점은 사실 모두 위험한 길이라는 것이다.
세상길 모두 안전한 길이 아니다. 모두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불안한 길을 실제 불안하게 느낀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사람의 탄생, 일생 자체가 뜻하지 않게 만들어진 존재일 수도 있다.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 있겠나? 사실 100년도 못 사는 한 번뿐인 인생, 길을 걷고 길 위에 살며 생명의 떨림을 확인하는 자유·자율·자존의 길로 나서보자. 어쩜 그 길이 매일매일 삶이 경이롭게 눈부신, 즐거운 삶의 길이 아닐까?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Po, Camping Las Conchas→Barru→Nueva 24.6㎞, 32,209걸음, 10시간 00분 (까미노 참고용 : Po, Camping Las Conchas→Barru→Nueva→Guergu→Pineres de Pria→Ribadesella/Ribeseya 26.6㎞, 9시간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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