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8.19 05:00

 

(사진=박인기)

집 떠난 지 한 달이 지났다. 남은 기간은 60일 중 30일도 안 남았다. 생각해보니 그간 참 잘 살았네. 나머지 한 달도 즐겁게 걷고, 살며, 꿈꾸자, 박인기의 산티아고 몽유도!

8월 5일 오전 10시 히혼(Gijon) 방향으로 향한다.

 스페인 옥수수 밭.(사진=박인기)

강원도 옥시기(옥수수의 방언)는 이미 피서철이 지나면서 파장일 텐데 여긴 이제 여물기 시작한다.

사과나무. (사진=박인기)

코룬가 시내로 향하는 뜨거운 언덕길에는 옥시기와 함께 사과가 특히 잘 자라는지 사과 과수원이 참 많다.

부엉이 장식품(사진=박인기)

그 사과의 단 맛을 지키려는 듯 과수원 집 대문기둥 장식품도 눈 부릅 뜬 부엉이다.

(사진=박인기)

시드라(Sidra)는 사과원액으로 만든 6% 알콜 도수의 주로 바스크, 컨타브라아, 아스투리아 등 북쪽 지방에서 즐겨 마시는 전통적인 서만술이다. 바, 레스토랑 어디서든 쉽게 따라 마시고 흥겨워하는 우리네 막걸리와 비슷한 술이다. 내겐 처음 시금털털했던 기억이 컸지만 차겁게 냉장한 시드라는 남녀노소 누구든 마시기 딱 좋은 술이다.

(사진=박인기)

이곳 와인 또한 그 종류가 수없이 많다. 마트나 바에서 부담없이 주문하고 살 수 있도록 가격 또한 저렴하다. 순례객의 피로를 풀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시드라, 와인, 맥주 등의 하루 평균 부담가격은 알베르게 숙박료가 평균 10유로인 것처럼 비슷한 가격에 충분히 하루를 즐길 수 있다. 나름 술을 즐기는 사람 경우에는 순례길 바에서 마시는 한 잔 맥주, 한 잔 와인 술은 에너지 충전에도 좋은 수단일 수 있다.

(사진=박인기)

보통 철정(七情)을 희노애락애오구(喜怒哀樂愛惡懼)로 배워 알고 있다. 그 중 즐거움의 정이란 어떤 것일까? 개인적인 견해지만 적어도 즐거울 락(樂)의 감정은 희노애(喜怒哀)의 단계를 넘어선 성숙한 세월의 감정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락의 감정은 그 단계도 넘어서는 것이라고 본다. 희노애애오구를 초월해서 나타나는 지난한 세월의 떨림이 그리고 울림이, 곧 풍상의 세월 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감정이라고 본다. 따라서 락의 희노애애오구~락(樂)이다.

(사진=박인기)

인간의 진화는 쾌락을 쫓고 쾌락을 선택하도록 적응,조정,발전해 왔다. 일종의 자기초월적 생존전략이다. 생존과 번식을 우선하는 본능이라는 것도 끌림과 설렘이라는 쾌락의 동인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즐거울 락(樂)속에는 나머지 육정의 감정이 모두 들어 있다. 그냥 들어 있어서는 시금털털 떫고 쓴 맛이 난다. 잘 숙성된 대중 술 시드라 혹은 와인 맛은 오랜 세월 비우고 덜어내며 한 몸으로 발효된 중화된 맛이다. 그 속에는 육정의 맛도 모두 들어 있지만 그냥 즐거운 맛으로 느낀다. 그 맛에 우리는 환호하며 밤을 지샌다. 이것 또한 쾌락추구 본능으로 살아가는 일종의 시드라현상이다.

(사진=박인기)

순례길에서 약 한 달째 보내고 있는 삶의 여정, 노자 할아버지는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智 自知者明) 승인자유력 자승자강(勝人者有力 自勝者強)’이라고 했다. 타인을 의식하는 자, 힘은 가졌으나 그것으로 희노애락애오구 칠정에 빠져 들고, 자신을 아는 자, 스스로 강하니 오늘도 시드라처럼 락락락(樂樂樂)이라는 말씀 아니겠나?

(사진=박인기)

비야비시오사(Villaviciosa) 호스텔에 여장을 풀고 나왔다. 오늘의 즐거움을 비야비시오사 광장 번화가에 있는 호텔 부속 래스토랑 El Charran에서 1. Castranon 시드라 Cider와 Traditional Asturias Streisand with White vean, chorizo, han and ablack pudding, 2. Entrecorte of beef 주문과 함께 충분히 마쳤다.

스페인 스튜. (사진=박인기)

스튜는 상상으로 음미하는 몽골 맛이다. 좀 짜고 순대, 삼겹살 한 두 덩이에 흰 콩을 지천으로 삶어냈다. 태양 빛에 부족해진 음기를 보충하는데 짭짤한 게 아주 그만이다.

앵뜨레 비프. (사진=박인기)

오랜만에 앵뜨레 비프 맛도 음미했다. 배가 빵빵해졌다. 집에서나 길에서나 우리는 즐거워야 한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Colunga, Hostel Marejada→Colunga→Pernus→Sebrayu→Villaviciosa 27.1㎞, 37,432걸음, 9시간 20분 (까미노 참고용 :  SebrayuColunga, Hostel Marejada→Sebrayu→Villaviciosa 21㎞, 6시간00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