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최승욱 기자
  • 입력 2019.08.20 05:00
(사진=박인기)

오늘은 8월 6일. 까미노 델 노르테를 걷는 길의 마지막 날이다. 25㎞ 정도 걸어 히혼(Hijon)에 도착하기 위해 아침 7시 알베르게 비야비시오사 호스텔을 나섰다. 

‘만물에게 도움을 주고 다투지 않으며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라, 상선약수(上善若水)'. 오늘의 화두다.

(사진=박인기)

히혼으로 빠지는 길을 묻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가만히 다가와 오른쪽으로 가라고 일러준다. 휴가 일정 때문에 서쪽 끝 피스테라에서 남쪽으로 약 30㎞ 떨어진 멋진 곳으로 3일 정도 더 걸어가 거기서 버스 타고 빌바오에 간 뒤 체코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곳의 이름은  M, U, X, I, A... 스펠링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그는 체코에서 온 여성이다. 도움을 주고 미소를 보이며 쿨하게 앞서 가는 ‘상선’ 아줌마, 그녀는 분명 ‘약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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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들은 특히 자기 방어본능이 강하다고 한다. 모든 부문에서 경쟁해야 살아남는, 과도하게 피로한 사회환경 탓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인생이 서글프다. 나 또한 ‘잘 살아보세’가 산업사회적 화두이었던 시절, 내 젊은 직장시절의 일년 휴가일은 평균 2박3일이었다. 요즘은 많이 나아져 일년에 두 주 정도는 찾아 쉴 수 있도록 직장 휴가문화가 많이 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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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인기)

순례길에서 만난 독일 친구 얘기에 의하면 그나라 직장인들은 일년에 평균 30일 정도 휴가를 갖는다고 한다. 그에 비해 아직도 열악한 우리 사회환경이 한국 남자들을 ‘한남’ 소리 듣게 만드는 것 같다. 남이 싫어하는 소리 자주 하고 툭하면 싸우려고 달려드니 ‘벌레’ 같다는 말을 듣는 건 아닌지, 나부터 반성할 건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사진=박인기)

그러나 환경을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부터 점차적으로 환경을 바꿔 나갈 수는 없을까? 나도 엄연히 사회환경울 만들고 있는 인적요소이니 말이다. 사회환경이 기대치에 미흡하다면 사실 나부터 환경을 고치고자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와 같은 명상호흡 할 순 없을까? 그렇게 한다면 적어도 사람같다는 소리는 듣지 않겠나? 한남은 '달창'을 부른다. 이것이 상대를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의식구조다. 이것은 이데올로기 지평의 문제가 아니다. 한번 삶의 지평으로 넓혀보자. 

(사진=박인기)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분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어색해 하지마라. 색깔 있는 옷을 좋아하면 칼라풀하게 패션을 즐겨라. 음식도 소화에 지장 없으면 다양한 나라, 신기한 재료의 음식들도 맘껏 즐겨라. 주거 환경도 본인 좋아하는 것들, 혹은 좋아하는 색채를 듬뿍 써서 나름대로 독창적 예술세계를 창조해 봐라.

(사진=박인기)

의식주의 문제는 쾌락적 삶을 영위해가는 최소한의 보편적 수단이다. 따라서 본인이 하고 싶은 그 세계에서 마음껏 즐겁게  몽유하는 것, 그것이 인생은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 눈을 감고 들어보라. 하나님 같고 주님 같은 생명정신 대우주가 우리에게 경계초월의 떨림파장, 울림신호를 통해 끊임없이 가르쳐 주고 있지 않은가?

(사진=박인기)
(사진=박인기)

‘자지자명自知者明)’이라 했는데 나의 경계는 어디인가? 나의 현실경계는 대한민국, 이상적으로 꿈꾸는 이상천국이다. 그러나 까미노에서 보고 배우며 익힌 나의 이상경계는 더 이상 이상세계가 아나라 실현 가능한 세계민국, 즐거운 지상천국이다. 만나면 반갑고 어려우면 도움 주려하고 다투기는 커녕 웃으며 격려하는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처럼...스스로 걷고 함께 걸으며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스페인, 독일, 폴란드, 체코, 프랑스, 미국계 세계시민들처럼, 그렇게 모두가 즐거운 까미노 천년왕국처럼 즐거울 수 있는 지성천국을 말이다. 

(사진=박인기)

해발 404m, 피온(Peon)으로 넘어가는 언덕길 꼬불꼬불 산길에서 비 오듯 떨어지는 땀을 흘리며 나는 꿈꾼다, 전쟁터 같은 서울 출근 퇴근길, 그래도 만나면 미소 짓고 반갑게 도움 주려하고 다툼없이 양보하며 나이불문 모두가 가족처럼 평등한 세계시민 서울천국을... 그런 하늘정원같은 서울출퇴근길을 만나기 위해선 먼저 마음 짐을 내려놓고 여백을 찾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피온으로 내려가는 길, 젊은 순례객들의 걸음은 더욱 빠르다. 지나치더니 그림자도 안보인다. 그러나 나는 걷는다. 내 길을 걷는다. 천천히 차근차근 끝까지 가면 또다시 만날 사람들.., 그리고 나에겐 텐트가 있다.

(사진=박인기)

처음 스페인 까미노 길을 나설 때 , 화두는 ‘내려 놓자, 비우자 ’ 였다. 70년을 짊어 지고 걸어왔던 삶의 무게가 항상 어찌할 수 없는 태생적 혹처럼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박인기)

딸 아들 시집 장가 보내고 난 지금까지도 그 무게는 좀처럼 떠나지 않던 숙환과도 같았다. 그러나 나 또한 달리듯 앞서 가는 그들의 냅색(knapsnack)처럼 모든 짐을 내려 놓아야 겠다. 틀림없이 프리미티보 까미노 끝내고 한국에 돌아 가면 마음 짐을 모두 내려 놓을 것이다.

(사진=박인기)

천천히 걷는 길에선 많은 것이 보인다. 흰꽃,빨간꽃,노랑꽃, 보라색꽃, 숨어 있는 도마뱀까지...그리고 감춰진 그들의 삶도 보아는 듯 하다. 걷다 보니 마침 점심 때가 되었다. 히혼으로 가는 갈림길, Bar Pepito에서 Sidra 한 병을 주문했다. J. TOMAS가 브랜드명, 70ℓ 한 병에 2.5유로 정도, 커피 한 잔까지 3.8유로 지불했다. 그리고 나무의자에 걸터앉아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필자(오른쪽)가 마르코스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박인기)

독일처녀 유라Jule), 프랑스 툴루즈에서 온 잉그리드Ingrid),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온 문신애호가로 키가  2m 훌쩍 넘는듯한 마르코스(Marcos) 등...모두가 세계시민 길을 걷고 있는 즐거운 젊은이들이다.

"내푸 따루~"스페인어인가?) 예상치 않았던 파리 사건을 얘기하자 마르코스는 그렇게 표현하더라. 아직도 정확한 뜻은 모른다.

(사진=박인기)

히혼까지 16㎞, 마지막 고개 하나 더 남았다. 또 만나~ "아스타 누에고, 마르코스!"

드디어 산골마을 고개를 또 하나 지나니 갑자기 훅~ 터진 히혼, 칸타브리아 바다 해안선... 아~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물인가? 히혼의 너른 지상천국 신천지가 새롭게 펼쳐졌다. 한참 걸어 평지로 내려오다 보니 히혼으로부터 약 6㎞ 떨어진 곳에 캠핑 데바(Camping Deva)가 있다. 필그림순례자)에게는 1박 7유로란다.. "오케이~! 짐짓 흐뭇해 하고 있는데 1박만 제공되는 것이고 아침 10시까지 떠나 달란다.

(사진=박인기)

여기까지 경험한 대략적 캠핑사이트 관련 가격 시세와 체크아웃 시간은 할인을 적용하면  6유로에서 7, 8, 13, 15유로, 그리고 오전10시까지, 오전 12시까지, 알아서 등 제각각이다. 시설 규모도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좋다. 캠핑사이트에서 느끼는 공통적 해방감은 알베르게, 호스텔과 비할 바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내 앞을 지나쳐 간 독일 유라, 프랑스 잉그리드, 스페인 마르코스 등 여러 사람을 여기서 또 만났다. 그들은 알베르게와 같이 별도 마련된 이중침대 병동에 배정되어 내일 아침까지 숨도 크게 못 쉴 것이다. 

(사진=박인기)

혼자 흐뭇하게 6시쯤 텐트 치고 8시쯤 누우니 마침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그 소리 듣는 것도 큰 축복이고 낭만이구나 싶다. 비는 오다 그쳤다 한다.

(사진=박인기)

마트에서 구입한 Vina La Higuera 화이트와인을 마시며 지금까지 걸어 온 까미노 댈 노르테를 생각해본다. 그래, 예상치 않았던 일주일간 파리에  머문 삶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큰 즐거움이었다. 오늘로써 24kg 짊어지고 24일 만에 히혼까지의 까미노 델 노르테 순례를 모두 끝냔 셈이다. 몸에 문신처럼 남아있을 24일 간의  까미노 댈 노르테 몽유도! 참 감사합니다,

◇오늘의 산티아고 순례길=Villaviciosa, Albergue Hostel Villaviciosa→Barcena→Curviellu→Camping Deva 25.3㎞, 38,864 걸음, 10시간 00분 (까미노 참고용 :  Villaviciosa→Gojon 25㎞, 7시간00분)

*편집자 주=박인기는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디자인을 가르치다가 정년 퇴임한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우그룹 제작부, 애드케이 종합광고대행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한뒤 대학 강단에 섰다. 강원대 철학과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과정도 수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에 심취했던 그는 올해 70살이 되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산악부 OB들과 종종 산을 찾아 마음을 비우곤 하던 그는 지난 겨울엔 여름 호주 ‘The Prom’에서 4박 5일 백패킹을 했다. 이번엔 60일 동안 숙박을 겸한 산티아고 백패킹에 도전한다. 내년 겨울엔 호주에서 6박 7일간 ‘Overland Track’에서 백패킹하기로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 즐겁게 80살까지 세상 트레킹하는 것이 '걷는 삶', '꿈꾸는 삶'의 소망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꿈꿀 수 있고 살 수 있으면 그게 모두 산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7월 6일 13시20분 대한항공 여객기로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발했다. 뉴스웍스 독자들도 그와 여정을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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